
국제 유가가 연일 최고치를 돌파하면서 1980년 석유 파동 때의 악몽이 부쩍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제유가가 지난 5월29일(현지시간) 석유 소비 감소 조짐 및 미 달러화 강세로 다소 감소했지만 배럴당 125달러가 넘는 고유가의 부담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지난 5월23일에는 국제 유가가 사상처음으로 130달러를 돌파한 바 있다.
유가급등에 업계의 비명도 끊이지 않고 있다. 유가 인상에 따른 원자재 가격 폭등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고, 특히 유가에 민감한 운송업체 등은 아예 “일할수록 손해”라고 한탄할 정도.
직격탄은 물류업계에

기름을 직접적으로 소비하는 물류업계는 여느 다른 산업보다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유류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바로 항공사다. 대한항공은 오는 6월부터 7월 중순까지 인천-괌 등 12개 노선을 감편하고 부산-시안 등 5개 노선의 운항을 잠정 중단한다고 지난 5월27일 밝혔다.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우선 청주발 제주행 항공기의 화물운송 사업을 중단하고 비수익 여객 노선에 대해서도 감편 등을 검토 중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각각 300억원,70억원의 연간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이 올초 경영계획을 짜면서 반영했던 유가는 배럴당 83달러, 아시아나항공은 85달러 선이다. 국제유가가 120달러를 돌파하면서 이 같은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이미 감당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유류할증료를 적용받지 못하는 국내 제주항공, 한성항공 등의 저가항공 등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적자를 보면서 운행하는 중”이라며 “얼마나 유가가 폭등할지 알 수 없는 만큼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 속속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던 일부 저가항공사의 취항도 불투명해졌다. 업계는 고유가에 대한 비용 보전을 위해 유류할증료 시스템 손질을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유류할증료 최고 단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유가로 인한 손실의 30%도 채 보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물연대의 ‘6월 파업설’이 팽배해 자칫 ‘물류 대란’에 대한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가 상승분을 상쇄할 수 있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하소연했다. 정부는 일부 유류세를 보존해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유가 상승이 끝이 보이질 않는 만큼 미봉책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표정관리 들어간 일부 업계
한편 이런 악재속에서도 상대적 수혜로 꼽히는 업종도 있다. SK에너지. GS칼텍스, S-Oil 등의 정유업체가 바로 그것이다.

그밖에 자동차 역시 고유가의 반사이익을 얻는 업종으로 자동차 업계가 지목되고 있다. 항공사와 달리 환율 상승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CJ투자증권은 “현대차는 지난해 총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8%에 달했고, 현대차 환헤지 비율을 감안할 때 실제 환율 등락에 노출되는 달러 규모는 50억달러대로 환율이 10원 올라가면 5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내수 시장에서도 경차, 소형차가 인기를 얻으며 상대적으로 수익을 보는 업종에 속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시각이다.
다만 업계관계자는 “유가급등이 계속 된다면 하반기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수혜업종으로 꼽기보다는 피해를 덜 봤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지난 오일쇼크 때도 그랬듯, 유가폭등에 대한 피해는 재계 전반에 미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계속해서 상승한다면 경제성장률과 소비, 그리고 경상수지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위기라는 가능성이 부쩍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유가급등을 바라보는 재계의 다양한 표정 속에서도 불안이 섞인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다. 지난 5월22일 배럴당 135달러까지 올랐던 유가는 30일 126.72달러로 소폭 하락했다. 이를 두고 ‘상승 위한 준비단계’라는 해석부터 ‘유가 안정세 돌입’이라는 낙관론까지 다양한 추측이 잇따르고 있다. 향후 유가가 재계의 울고 웃는 표정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시선이 집중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