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가 감사원이 문책 요구한 직원에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무자격 업체에게 ‘2007 마권용지 제작 및 구매’ 건을 발주했다가 감사원에 덜미를 잡힌 직원에 대한 징계가 정작 ‘주의’였던 것이다. 해당 직원은 무자격 업체라는 타 업체의 지적마저 ‘고질민원’으로 외면했던 것으로 알려져 빈축을 사고 있다. <시사신문>이 마사회의 부당발주에서 처벌까지 문제점들을 짚어봤다.
감사원 문책요구 직원 경미한 주의처분, 식구 감싸기?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5월 마사회는 자격이 없는 업체에게 ‘2007년 마권용지 제작 및 구매’ 발주를 준 것이 감사원에 들통 났지만 정작 감사원의 문책요구 처분요청도 ‘주의’정도로만 끝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5월 감사원의 지적은 마사회의 안일한 일 처리에서 비롯됐다. 마사회가 ‘마권용지 제조·구매 입찰’ 과정에서 입찰한 업체가 자격요건에 적합한지조차 확인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안일한 업무처리로 물의
지난해 5월 마사회에 ‘마권용지 제조·구매’에 낙찰된 M기업이 바로 그 화근이었다. M기업은 입찰등록 당시 M기업이 보유한 공장등록정명서를 제출했는데 이 공장위치는 서울 강서구에 위치했지만 정작 그 부지는 2006년부터 임대해 사진관이 운영되고 있었다. 당시 M기업이 공장폐업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공장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를 검증하는 마사회의 태도였다. 마사회는 입찰 적격심사에서 견본채취 및 견본테스트를 위해 공장소재지 위치도를 제출하게끔 했는데, 정작 제출된 것은 서류와 달리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공장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사회는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평소에 안면이 있던 마사회 총무처 모팀의 A과장은 M기업 관계자에게 “서울 공장에는 인쇄기만 있고 나머지 UV건조대 등은 황성시 공장에 있다”는 답변을 듣고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M기업은 입찰자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낙찰까지 받을 수 있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평소에 안면이 있던 M기업 대표의 말만 믿고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M기업은 공장등록증명상 공장이 없음에도 낙찰을 받은 셈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사회의 안일한 업무처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M기업으로 인해 낙찰에서 떨어졌던 B기업은 마사회에 민원을 제기했다. “M기업이 제출한 공장부지에는 사진관이 운영되고 있다”면서 “M기업이 입찰공고를 위반했다”는 것이 바로 그 골자.
하지만 이 역시 마사회는 묵살했다. A과장은 허위공장에 대한 B기업의 문제제기를 “고질 민원 사항”이라고 일방적으로 단정지은 것이다. 민원 사항의 사실여부 확인조차 안했음은 두말할 것 없다.
‘2007년도 마권용지 제조·구매’의 계약금은 7억1900만원.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공기업 자본이 고스란히 ‘엉뚱한’ 업체로 넘어갈 뻔 한 셈이다. 인쇄업계에서는 마사회의 안일한 업무처리 태도가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한 인쇄업계 관계자는 “당연히 확인해야 할 것 조차 확인하긴 커녕 민원마저 외면하는데 누가 마사회를 믿을 수 있겠냐”라고 질타했다. 마사회는 감사원의 지적 이후 M기업과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입찰공고를 열었지만 진정으로 반성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마사회 신용 회복될까
현재 인쇄업계에서는 감사원이 ‘징계처분’ 요구가 고스란히 ‘변죽’으로 그쳤기 때문에 뒷말이 나돌고 있다. 해당 문책이 경미하기 그지없다는 이유에서다. 마사회에 따르면 A과장은 타 부서로 인사 이동됐지만 책임자 B팀장은 고스란히 자리에 남아있다. A과장의 인사이동도 공식적으로 감사원 지적사항과는 무관한 인사이동이라는 것이 마사회 측의 설명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지만 업무량이 많아 벌어진 사건으로 판단됐다”면서 “해당 인사의 고의성이나 악의가 없었기 때문에 경미한 처분이 내려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감사원 지적이 이미 시정된 탓에 ‘큰 이슈’가 되거나 ‘치명적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쇄업계나 소비자들 사이에서 마사회의 이런 태도를 그대로 받아드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최근 마사회 직원이 불법경마 관련 여부로 기소됐고, 장외발매소 신설 과정에서 농림수산식품부(옛 농림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혐의로 검찰이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꾸준히 신뢰에 금이 갈 의혹이 잇따른다는 점에서 마사회의 행보가 좀더 신중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벌백계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행동을 보여줘 신뢰를 쌓아야 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