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공법으로 갈아엎어야 산다”
“정공법으로 갈아엎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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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나선 이명박 특단조치 셋

▲ “살 길 열어라”이명박 대통령이 장고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각종 대책에도 수습되지 않는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려 한다는 시각이 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구명줄을 고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불붙은 민심에 ‘물러가라’는 구호가 등장하자 수렁을 벗어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선보이고 있는 해결 방안은 우선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 문제가 된 30개월 이상의 소를 수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 또한 청와대 조직과 인적 쇄신을 준비하고 있다. 물가를 잡을 민생대책도 내 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방안은 거센 민심의 물결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악화된 사태를 한번에 해결할 ‘종합감기약’ 처방에 당정이 또다시 충돌하고 있으며 야권 설득에도 실패했다는 것. 당 일각에서는 “‘종합감기약’은 없다”며 “모든 것은 순서가 있다. 병의 근본부터 치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공법’을 선택하라는 것이다.

인적쇄신, 전면쇄신 의견 분분…정치 정공법을 마스터 하라
조직쇄신에서 대규모 인적쇄신으로 방향선회 “다 바꿔라”
한나라당 흔드는 문제의 시작 ‘친박’ 품안으로 끌어안는다
초선의원·당 소장파 총 출동 ‘새로운 피’로 이미지 변신 중

촛불을 든 국민들의 뜨거운 목소리에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한걸음 물러섰다. 당정은 ‘미국과의 통상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불가’를 내세웠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풀기위한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급한 불’ 누르고 ‘근본’부터

정부는 미국과의 쇠고기 수입 재협상 요구에 완강하던 자세를 바꿔 문제시됐던 30개월 이상 쇠고기에 대한 수출 중단을 미국에 요청했다. 또한 미국과의 추가협의 결과 등 종합대책이 나올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및 쇠고기제품 수입 위생조건에 대한 관보의 게재’를 잠정적으로 유보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는 ‘사실상 재협상’에 가까운 추가 협의”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수출자율규제 방식을 도입, 한·미 수출입업계의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입중단 ‘결의’를 추진하고 있다. 미 업계가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중단과 관련, 자율결의를 하면 이를 계기 삼아 수입위생조건을 고시한다는 방침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재협상 대신 WTO 등 국제통상규범에 어긋나지 않도록 민간업체가 주도하는 방식에서 해법을 찾겠다는 계산이다.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계가 월령 구분표시(라벨링)를 한 뒤 국내 업체들이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기로 결의하고 미국 업체들이 수출하지 않기로 결의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막을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재협상이지 강제력이 없는 업계의 결의가 아니다”라는 냉소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업계의 결의는 미국 정부의 보증이 없을 경우 구속력이 없는데다 수출중단기간조차 한시적이어서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일단 검역 주권을 사용해 빗장을 걸어뒀고 앞으로 국민이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검역을 중단하겠다”면서 “검역 중단 조치를 취한 만큼 진정성을 알아 달라”고 말했다.

미국 업계의 자율 결의가 나오면 그대로 인정할 것이냐는 질문에도 “아니다. 국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이해할만한 내용이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 측과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여러 가지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협의가 끝나면 발표하겠지만 국민의 우려를 실질적으로 해소하고 국제 규범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결과 발표 시기도 쉽게 예상할 수 없다”고 사안 해결의 힘겨움을 전했다.

그러나 시민들과 정치권은 여전히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이 대통령이 쇠고기 재협상을 선언할 때까지 국회 등원을 거부키로 했다.

꼬인 매듭 어디부터 풀까

▲ “생각들 좀 말해봐”이명박 대통령이 각계 원로와 인사들을 만나 ‘쇠고기 정국’을 풀 해법을 찾고 있다.
‘재협상 불가’에서 한 발 물러섰음에도 사태가 악화일로에 치닫자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사태 해결방안에 당정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청와대는 대규모 인적쇄신 없이 조직개편을 통해 손발을 맞추겠다는 의견인 반면 한나라당은 인적쇄신 없는 조직개편으로는 국민들에게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일 수 없다며 ‘깜짝 놀랄’ 인사를 단행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당 초선의원에서 중진까지 이러한 주장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부분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며 대대적인 내각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강경론도 일고 있다. 장관뿐 아니라 한승수 총리, 류우익 대통령실장 등 이명박 정부를 움직인 주요 인사들까지 바꾸는 대대적인 내각쇄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각이나 대폭 수준의 인적쇄신 방침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정치권은 청와대의 이 같은 발표에 CEO시절 초고속승진으로 견제가 심했던 탓에 ‘믿을 수 있는’ 자기 사람을 기용하고 실수를 했더라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지켜보는 이 대통령의 인재기용 특성상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에 새로운 사람들로의 대대적 물갈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했다. 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조직개편만 논하고 인적쇄신에 대한 발언은 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풀이 됐던 것.

그러나 6·4 재보선 참패로 인적쇄신에 대한 청와대의 인식도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권에 도전한 박희태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정권 초기에 여러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해 지지율이 많이 떨어졌다”며 “대통령의 인적쇄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출범한지 석 달밖에 안된 정부이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서 인적 쇄신이 이뤄지면 좋겠다”며 부분개각을 주장하는 한편 “정치인이 내각에 들어가면 당정 소통이 원활히 되고 민심전달을 잘하게 될 것”이라며 정무기능 강화를 강조했다.

여권 소식에 정통한 정치권 인사들은 “한나라당에서 생각하고 있는 인적쇄신의 범위는 장관과 청와대 수석 등 7명 정도”라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국회 첫날부터 파행을 겪고 있는 국회가 장관의 전면 교체를 소화할 능력이 없다며 ‘전체’보다 상징성을 가진 ‘부분’을 교체하는 방안이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정치권 한 소식통은 “국민과 야권은 장관이나 청와대 사람 한두명을 갈아치우는 게 민심이반을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후임자 선임에 곤란을 겪을 대대적인 개각보다는 이명박 정부 인사를 총괄한 이를 실각시키는 게 국민에게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인선 작업을 도맡았으며 청와대를 움직이는 실세로 분류되는 이는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라며 “특히 인사 문제의 경우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실질적인 권한을 쥐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부 단결’이 선결 과제

▲ “동상이몽”한나라당에서 내 놓은 사태 수습방안은 ‘쇠고기 재협상’과 ‘인적쇄신’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쇠고기 재협상은 통상마찰을 이유로 힘들다는 입장이며 인적쇄신에도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외 친박인사들의 복당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정부출범 100일 만에 어려움에 처한 것은 정부 출범 초기 인사파동과 당내갈등 심화, 여야 갈등이 풀리지 않은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친박 복당 갈등을 ‘일괄 복당’으로 풀고 지난해 대선 당시 통합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민·형사상 고소를 취소하는 해법을 내놓았다.

박근혜 전 대표측의 생각도 일정부분 홍 원내대표와 맥락이 같다. 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박 전 대표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당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중심을 확실하게 잡고 당의 정치 발전에 어떤 역할이든지 협조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20%미만 지지율에 대해 “당내 내분으로 보수세력의 분열을 초래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당내 화합을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은 친박 복당을 서두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친박인사들의 복당을 심사할 ‘복당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복당 절차에 착수했다. 당원자격심사위원장인 권영세 사무총장은 “질질 끄는 것을 피하고 최대한 빨리 끝낼 생각”이라며 “7·3 전당대회 전까지는 해야 한다”고 시일을 못박았다.

또 심사기준에 대해 “당의 확실한 화합을 이뤄내기 위해서 더 이상 복당 문제가 논의되지 않기 위해 대승적 해결을 원칙으로 한다”면서도 “그러나 국민 눈높이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최고위원회에서 ‘즉각 복당’에 대한 원칙이 세워진 만큼 ‘깐깐한’ 심사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모든 문제는 근본부터 해결해야 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상처가 생기고 곪기까지 그 중심에는 친박계와의 불화가 자리하고 있다. 당 내 화합이 되지 않을 경우 작은 문제도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친박계와 손잡고 그들과 협조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기본적인 방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이 친박계를 온전히 끌어안을 경우 절대과반을 넘는다. 그렇다면 주요 현안에 대한 일괄처리가 가능해진다. 친박계와의 화해는 이를테면 종합감기약”이라며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의 질병도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평했다.

‘책임정치’ 새 물결인다

청와대의 개혁 뿐 아니라 당 내 분위기도 변할 것으로 보인다. 신임 원내대표가 된 홍준표 의원이 내세운 ‘실명정치론’ 혹은 ‘책임정치론’ 때문이다. 홍 원내대표는 “당·정·청 소통을 강화하고 당내 갈등 해결과 대야 관계 개선 등 당면과제에 적극 나서겠다”며 “내 이름으로 정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꼬집은 부분은 ‘차명정치’다. 홍 원내대표는 “한나라당에 참으로 잘못된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차명정치’”라며 “대통령과의 만남을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쪽으로 삼으려 하고, 또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자기 위상을 높이려 하는 것, 그리고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내세워 자기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3가지 차명정치가 한나라당의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홍 원내대표의 ‘실명정치론’ 혹은 ‘책임정치론’과 더불어 18대 초선의원들이 당 내 쇄신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실세’라 분류된 이들도 전면에 나서는 등 당 내 기류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초선의원들은 정국이 파국으로 치닫는데 대해 서슴없는 개혁의지를 불태우고 있고 소장파 주축인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은 실질적인 쇠고기 재협상과 전면적인 국정 쇄신책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투쟁으로 청와대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한 정치분석가는 “누군가의 측근이라는 인식에서 탈피, 정국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내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자연스레 계파정치도 소강될 뿐 아니라 정부와 협조하거나 견제하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거대한 민심 이반을 초래할 정부의 정책들이 줄줄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 뿐 아니라 한나라당도 야당 10년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여당으로 정부와의 상호작용 구조를 체득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진중권 중앙대 교수는 “이 대통령에게 진짜 위기는 시작도 안됐는데 지지율이 19%”라며 “단순히 버틴다는 안이한 생각으로 정국을 수습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앞으로 더욱 심각한 민심 이반이 현 정권에 닥칠 것이라는 경고를 전했다.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19%를 지나 16.9%로 하락,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지지율이 ‘바닥’일지 더 큰 하락이 있을지는 전적으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손에 맡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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