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 로열패밀리들의 분가(分家) 움직임이 활발하다. 창업세대가 하나 둘 세월의 무대 뒤로 사라지면서 2세, 3세, 4세 오너 등장이 가속화된 재벌기업들이 주인공이다. 그룹을 형성했던 사업별 기업들을 로열패밀리 간 나누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미 형제자매 간 사업을 분리하고 각각의 대그룹을 형성한 곳도 여럿이다. 재벌기업 로열패밀리들의 분가 움직임을 <시사신문>이 따라가 봤다.
SK가·LG가, 사촌형제 계얄사 나눠먹기 중!
두산가, 사업은 독립경영-지분은 공동분할
한진가, 독립과정서 갈등의 골 깊어져
창업세대가 지면서 후대의 로열패밀리간 분가가 성공적으로 정착한 대표적인 재벌가는 삼성가와 현대가다.
삼성가는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지병으로 일찍 별세하면서 그룹을 이건희 회장에게 맡겼고, 이후 이 회장의 형제자매들이 하나 둘 각각의 사업을 몫으로 떼어 받았다. 2세 맏형인 이맹희씨와 그룹 오너가 된 동생 이 회장의 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찌됐든 현재는 로열패밀리간 큰 잡음없이 분가와 정착, 그리고 3세 오너경영의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재벌가 속도 내는 계열분리
한때 한국경제의 중심을 이끌던 재계 대표주자 현대가 역시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 세대의 형제간, 그리고 대를 이어 2세 로열패밀리간 성공적인 분가가 정착됐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등 재계 각 분야 대표적인 기업이 현대가를 이끌어 가고 있다.
나아가 현대가는 최근 3세 오너경영인이 속속 등장하면서 ‘3세 분가’라는 이른 관측까지 이끌어낼 정도다. 단적으로 현대가 3세 중 눈에 띠는 곳은 현대백화점그룹이다. 정몽근 명예회장의 두 아들이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하고 형제간 지분정리나 사업별 경영을 맡은 이유에서다.
장남인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은 유통부문의 경영권을 확고히 다지고 있고, 차남인 정교선 현대백화점 부사장은 비유통부문의 경영권을 강화하고 있다. 그룹 차원에서는 경영승계 과정에서 형제간 교통정리를 하는 것이라고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선 훗날의 분가를 염두한 포석 아니겠느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고 최종건 창업회장의 직계인 최신원-창원 형제와 고 최종현 회장의 직계인 최태원-재원 형제간 주요 계열사 분배와 지분정리가 마무리 국면이다. 최종건-최종현 형제가 세운 SK의 브랜드와 이념은 공유하되 사촌간 완전한 독립그룹 선언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실제 최종현 회장이 타계한 이후 가족회의를 거쳐 최태원-재원 형제가 그룹 중심을 맡고, 최신원-창원 형제가 계열사를 맡아 독립경영을 해왔지만 분가설과 갈등설은 끊이질 않았다. 소버린 사태 이후에는 옛 LG그룹 분리 때와 흡사한 양상을 띠면서 최태원-재원 형제가 SKC, SK케미칼 지분을 줄이고, 최신원-창원 형제가 지분을 늘리는 등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사촌형제간 경영권 분쟁의 소지를 줄이면서 분가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
현재 최태원 회장은 SK(주)를 중심으로,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은 SKE&S(옛 SK엔론)를 중심으로 SK그룹을 움직이고 있다. 독립경영이 완전히 정착된 상태다. 최신원-창원 형제도 SKC와 SK케미칼의 회장과 부회장을 맡아 독립경영을 하고 있다.
지분정리도 거의 끝났다. 단적으로 얼마 전 최태원 회장은 보유 중이던 SK케미칼 지분 5.86%를 전략 매각한 바 있고, 반면 최신원 회장은 SKC 지분(2.78%)을 꾸준히 늘리고 있는 상황이다.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과 함께 SK건설을 이끌고 지분이나 경영 모두에서 SK그룹과 한발 떨어져 나와 있다.

단적으로 구본걸 LG패션 사장(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LG패션 지분을 늘리고 있다. LG그룹에서 LG패션을 떼어내는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구본걸 사장이 구본준 부회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는 LG상사 지분을 줄이는 것도 이런 맥락. 구본무 회장은 이미 LG패션 지분 전량을 처분한 상태다.
완전한 분리는 아니지만 로열패밀리간 확실한 사업나누기가 진행 중인 곳도 있다. 바로 두산그룹이다. 현재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등 3세 형제들이 주축돼 그룹을 움직이고 있지만 각각의 4세 경영인들이 계열사 경영일선에 전진배치되면서 독립경영 형태를 띠고 있다. 계열사를 쪼개 분가하는 것 대신 사업은 로열패밀리간 분리해 운영하고 지분은 공동분할해 갖고 있는 가족경영의 지배구조 틀을 유지하고 있다.
창업주 후대의 분가는 적잖은 갈등도 만들어 낸다. 선대에서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각각의 몫이 다르다보니 그럴 만도 해 보이는 대목. 현대가의 그룹 대물림 과정에서 벌어진 이른바 ‘왕자의 난’도 사실 이런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