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NO! 노래?춤은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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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같았던 ‘6·10 촛불집회’

▲ 지난 6월10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34번째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지난 6월10일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34번째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세종로 사거리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서부터 남대문 앞까지 도심은 온통 촛불로 넘쳐났다. 주최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이날 70만 명 가량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은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21년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민주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는 이날이나 21년 전인 1987년이나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과거 체류탄과 폭력이 난무하던 시위 문화와 오늘의 촛불집회 문화는 달랐다. 온가족이 손을 잡고 집회에 참석하는가 하면 일행이 삼삼오오 모여 둥글게 앉아 노래와 춤을 추는 등 모두들 이날 집회를 하나의 축제처럼 즐겼다. <시사신문>은 뜨거웠던 이날의 촛불집회 현장을 취재했다.

평화시위 정착, 가족·친구·연인끼리 삼삼오오 모여 춤추고 노래해
풍물패의 사물놀이, 통기타 연주 등 곳곳에서 거리 문화 행사 열려

저녁 7시. 해가 길어진 탓에 아직 날은 환했다. 지하철 시청역과 광화문역은 집회장으로 가기 위해 몰린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밖으로 나오는 출구에 줄을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소 격앙돼 보였다. 한 남자 고등학생은 “경찰이 폭력을 휘둘러도 일선에서 물러나지 말자”라며 동료들의 사기를 돋우며 흥분된 기색을 보였다.

▲ 명박산성 - 컨테이너 박스 위로 올라간 시위대가 플래카드를 펼치고 있다.


속속 모여드는 사람들

밖으로 나오니 각 대학에서 모인 학생들이 단체로 집회장으로 입장하는 등 사방에서 속속 사람들이 모였다. 일찌감치 돗자리를 펴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먹었다. 아직은 모두가 촛불집회를 위해 배를 채우고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이날은 대규모 인원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 만큼 주최 측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이동식 화장실이 설치됐고 집회를 위한 무대가 광화문 광장 중앙에 놓였다. 촛불 특수를 노린 먹거리 노점들도 눈에 띄었지만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집회장에 모인 시위대들은 광화문 중앙 무대 앞부터 차곡차곡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중앙 무대 뒤로 빼곡히 세워진 대형 컨테이너 박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경찰측이 시위대들이 청와대 쪽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컨테이너 박스로 세종로를 차단한 것이다.

주요 도로는 컨테이너 박스로 막았고 사이사이에 전경차를 배치해 좁은 틈도 남기지 않고 모든 도로를 봉쇄했다. 혹여 사람들이 차와 차 사이로 빠져 나올까 그 사이는 폐타이어를 끼어 놨다.

키를 훌쩍 넘는 컨테이너 박스의 높이는 5m는 넘어 보였다. 컨테이너 박스 뒤로는 성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보였고 그 뒤로 평온해 보이는 청와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인파로 진퇴양난

컨테이너 박스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붙인 ‘이명박 정부를 탄핵’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외치는 글귀의 종이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는 이명박 대통령 ‘해고통지서’ 까지 붙어 눈길을 끌었다. 일부 시위대는 스프레이 락카를 준비해와 “꺼지지 않는다”, “고시철회” 등의 문구를 새겼다.

장벽처럼 버티고 서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바라보던 일부 시위대들은 답답한 마음에 컨테이너 박스를 거세게 발로 차기도 했다. 하지만 컨테이너 박스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소리만 냈다.

이날 집회를 주도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경찰이 컨테이너 박스에 기름을 칠했다. 화재의 위험이 있으니 컨테이너 박스 근처에서는 불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연신 방송을 통해 당부했다.

저녁 8시. 촛불집회는 점차 무르익었다. 도로 곳곳의 통로까지 가득 찬 수많은 인파로 인해 집회장은 진퇴양난의 모습까지 연출됐다.

시청 앞 잔디밭에서는 일부 보수단체들이 모여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는 노래를 불렀다. 경찰들의 이?삼중 경호로 다행히 촛불 시위대와 큰 다툼은 없었지만 이들 사이엔 미묘한 긴장감이 나돌았다. 한 시민은 “더 크게 불러야지. 그래서야 어디 들리겠어”라며 보수단체를 도발하기도 했다.

광화문 쪽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던 반면 남대문 쪽의 집회분위기는 차분했다. 오토바이 시위대들이 행진을 하는가 하면 퍼레이드를 연상케 하는 노란 옷과 젖소무늬 옷을 입은 키다리 청년들은 집회장을 돌아다니며 촛불에 불을 붙여주는 모습을 보였다.

▲ 촛불집회에 유모차를 끌고 나온 아줌마 부대


노란 중앙선 따라 촛불향연

이날 집회장 곳곳에선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시위 현장이라기 보단 축제 현장을 방불케 했다. 풍물패는 태평소 가락에 맞춰 사물놀이 공연을 펼쳐 시위대의 사기를 돋았고 통기타를 매고 온 동호회는 거리에 모여 앉아 시위노래를 불렀다.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도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집회장에는 눈에 띄는 의상을 입고 자신만의 시위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 시민은 온 몸에 피켓을 달고 “집회도 중요하지만 질서정연하고 깨끗한 시위문화를 이끌자”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날 집회에는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함께 온 가족단위의 시위대도 많았다. 이들은 잔디밭이나 도심 모퉁이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집에서 마련해온 도시락과 간식, 맥주 등을 먹으며 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가벼운 소풍을 나온 가족처럼 보였다.

저녁 9시. 드디어 시위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몇 부류로 나뉘어 세종로에서 벗어나 종로와 서대문 등으로 가두행진을 진행했다.

풍물패의 진가는 이때도 발휘됐다. 괭가리, 장구, 북 소리에 맞춰 시위대는 가두행진을 진행했고 박자에 맞춰 “고시철회”를 외쳤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인 시위대들의 얼굴에선 힘든 기색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또 하나의 진풍경도 펼쳐졌다. 시위대가 지나간 도로에 노란 중앙성을 따라 수많은 촛불들이 놓여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촛불에 맥주를 마시며 시위대를 따르던 외국인 기자들도 이 모습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저녁 11시. 아직 집회는 끝나지 않았지만 곳곳에 쓰레기 봉지를 들고 다니며 청소를 하는 시민들이 보였다. 촛불 시위대가 지나간 자리엔 그들이 흘린 촛농만이 남았다. 당초의 우려와는 달리 다행히 무력진압이나 폭력시위는 없었다. 이날 집회는 큰 마찰 없이 모두가 즐긴 축제의 장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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