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사태로부터 약 6개월이 지났다. 당초 우려되던 ‘검은 바다’는 현재 옛 모습을 많이 회복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도 해변 곳곳에 존재하는 기름의 흔적처럼, 현지 주민들의 생활과 심경도 예전 같지 않다. 그들이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은 바로 삼성중공업의 ‘책임’이다. 이미 삼성중공업이 1000억원의 지역발전기금을 출연했지만 이 자금은 현재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삼성중공업 등지에서 시위를 벌이며 거센 반발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정부의 외면 속에 보상대책으로 시름 앓는 주민들
지난해 12월7일은 태안 주민에게는 각별한 날이었다. 삼성중공업의 예인선이 현대오일뱅크의 유조선과 충돌해 기름이 대량 유출된 날인 탓이다. 그로인해 불거진 생태 파괴와 태안 주민의 생계 악화는 두말할 것 없다.
이 기름유출이 벌어진지 이제 반년이 넘어가고 있다. 하지만 태안 기름유출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삼성중공업의 심기는 아직도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1000억원을 환원을 내걸었지만 주민 달래기는 커녕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미 태안 주민들은 5월말 삼성본관을 비롯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자택, 거제의 삼성중공업 정문 등에서 강도 높은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삼성중공업에 불신 팽배
삼성중공업이 주민들의 반발을 사는 것은 결국 보상, 책임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현재 태안 주민들은 각종 시위를 통해 삼성중공업이 “완전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장 생계도 타격이 크지만 피해규모도 정확히 집계되지 않아 생계비 지원이 막막하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중공업이 출연한 1000억원 사회발전기금도 아직 미제로 남아있다. 주민에게 전달돼 사회 발전의 기회를 모색하기는커녕 아직 관계 부처에 전달도 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국토해양부에서 집행하게 되는 이 자금은 현재까지도 쓰임세도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인근 주민들과 지자체의 의견수렴 결과 1000억원의 지원금을 받지 말라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며 “주민들 의견이 그런데 마음대로 집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밝혔다.
결국 주민들을 달래기 위한 삼성중공업의 지역발전기금을 주민들이 거부하는 격이다. 태안의 주민들은 “지금 1000억원을 받는다면 삼성중공업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있다”면서 “완전책임을 져야지 지역발전기금으로 생색을 내는 것은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태안의 보상관계에 있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는 3월 태안기름유출사고 피해액을 3500~4200억원으로 사정하고, 선주보험사인 P&I의 보험금 1400억원과 IOPC의 보상금 1800억원 등 모두 3200억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보상이 중복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중공업이 주민들에게 1000억원의 보상을 내놓는다면 IOPC와 P&I에서 보상하는 액수가 그만큼 감면되게 된다. 따라서 삼성중공업의 직접보상은 3200억원이 넘어가지 않는다면 주민으로선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삼성중공업의 1000억원 사회발전기금도 IOPC와 P&I의 보상금 이상으로 보상을 하지 못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드려지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1000억원을 사회발전기금으로 출연하게 된다면 보상액이 감면되지 않기 때문이다.
태안유류피해대책연합회 최한진 사무국장은 “보상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지역발전기금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공식적 협상이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태안주민들은 피해보상이나 정부의 생계비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현재 이들은 “6월12일까지 유예기간을 줬으며 그때까지 결론을 내지 않는다면 강경한 투쟁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다.
태안관련 시민단체 등은 주민의 반발 원인을 바로 삼성중공업이 자초한 불신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마르지 않는 ‘검은눈물’
무엇보다 사고 발생 이후 50일만에야 사과문을 발표했고, 그동안 크게 작게 민원들을 무시해왔다는 것. 관청 관계자는 “심지어 현대오일뱅크와 연일 책임공방을 벌이는 모습에 태안 주민들이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분명 태안사태가 당초의 우려보다 회복이 빨랐던 것은 사실이다. 반년이 지나고 기름 방제작업도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인근 주민들의 평가다. 하지만 주민들의 생계는 아직 막연하기 그지없다. 태안군청 유류대책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에 일부 생계지원이 나간 것을 제외하면 지원이나 보상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태안주민이 분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태안 유류세로 비롯된 삼성중공업의 갈길이 아직 멀고도 험하게만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