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된 박해춘 이사장
국민연금관리공단 신임 이사장 된 박해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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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이 ‘새옹지마’ 됐다”

금융공기업 사이에서 박해춘의 존재가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우리은행장 사표를 제출하면서 금융계에서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였지만 한달만에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으로 선임됐다. 그야말로 ‘부활’인 셈이다. 반면 이에 대해 정부의 인사가 일관성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사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은행권 민영화와 맞물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런 추측도 제기된다.

▲ 우리은행장에서 사임한지 한달도 안돼 국민연금관리공단의 수장을 맡은 박해춘 이사장. 업계에서는 그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구조조정 전문가, 서울보증·LG카드·우리은행 독보적 성과
불신임 한달만에 부활 구설수 "도대체 기준이 뭐야"
금융계 '독불장군' 등장에 연금공단 '걱정 반 기대 반'
금산분리 완화에 우리금융 인수설 대두, 전 직장 삼킬까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이 또 다시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정권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지 못해 우리은행장 자리에서 임기 중 물러났지만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발탁되면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한 탓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 6월9일 공석이던 연금공단 새 이사장에 박 전 행장을 단독후보로 압축,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민간 전문가가 연금공단의 수장으로 오는 것은 1988년 공단 출범 이후 처음이다. 그간 공단 이사장은 국무조정실, 복지부, 재정경제부 출신 등 관료들이 독점해 왔다. 하지만 박 내정자 임명이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 것은 민간출신이란 점 때문만은 아니다. 박 이사장은 보험, 카드, 은행 등 금융 3개 부문의 수장을 거친 금융 CEO로 탁월한 구조조정 능력을 선보인 인물이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박 이사장은 서울보증 사장으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자산관리공사의 공적자금 1조6000억원 전액을 상환하는데 성공했고, 삼성생명 주식 해외매각을 주도했으며 삼성캐피탈, GE와 함께 신용정보회사를 설립하는 성과를 거뒀다.

그가 가는 곳마다 ‘회생’

뿐만 아니라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LG카드 사장으로 부임했다. 박 이사장은 취임 직후 비효율적인 곳은 축소했으며 강화할 곳은 확대하는 것으로 본사 관리조직을 대폭 줄이고, 강화가 필요한 채권회수와 영업조직은 확대 신설해 본사 인력을 현장에 전진 배치했다. 아울러 채권 부문에는 외부 인력을 스카우트하여 전문성을 높였다. 당시 위기를 맞고 있던 LG카드를 또다시 정상화 시킨 인물로 박 이사장이 빠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이사장은 이런 성과를 토대로 지난 2007년 급작스레 우리은행장으로 발탁된다. 우리은행에서도 그의 성과는 독보적이었다. 국내 최초로 M&A가 아닌 자체성장에 의한 총자산 200조원 돌파와 업계 최우량 건전성 확보(연체율 0.56%) 등의 성과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경력은 불과 한달 전에 업계의 우려를 산 바 있다. 박 이사장은 지난 5월 초 정부의 금융 공기업 CEO 물갈이 과정에서 재신임을 받지 못해 1년3개월 만에 우리은행장에서 도중하차했다. 당시 그의 탈락은 업계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박 이사장의 금융인생이 결국 막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정도다. 때문에 현 상황은 그런 업계의 기대를 또 다시 뒤집고 한달 만에 화려한 복귀를 한 셈이다. 이에 대해 박 전 행장의 탁월한 구조조정 역량을 정부가 높이 샀다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정부가 불신임한 인사를 다른 조직의 장으로 기용함으로써 공기업 수장의 물갈이 기준을 정부 스스로 허물어뜨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하지만 박 전 행장은 5월27일 퇴임했고, 이보다 훨씬 전인 4월 말~5월 초에 연금공단의 새 이사장 공모가 진행됐음을 감안하면 그는 모종의 언질을 받고 이미 퇴임 이전에 원서를 제출, 부활을 모색했다는 추측도 있다.

현재 금융권에서는 은행장 옷을 벗자마자 재기용된 박 이사장을 “기금 운용 독립, 4대 사회보험 징수 통합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는 연금공단을 개혁하기 위한 인사”라고 분석했다.

금융권의 기대와 우려

민간인 출신인 그가 20년 만에 처음으로 연금공단 이사장에 발탁되자 연금공단 안팎에서는 조직 정비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와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
그의 별칭이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향후 연금공단은 상당한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 국민연금관리공단.
사람을 자르진 않더라도 실적이 부진하면 좋지 않은 자리로 즉시 발령이 나는 등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예상되는 탓이다. 실제 박 이사장도 “치밀하고 합리적인 조직으로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추고 있다. 내부에서도 공공기관 구조조정 얘기가 한창 나오는 때라 박 이사장에 대해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박 이사장은 우리은행장 시절 직원 관리를 ‘군대처럼’해 ‘독불장군’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기업회생 경력을 들어 공단의 위상을 다시 세워줄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들이 관심을 집중시키는 대목은 박 이사장이 연금공단에서 무엇을 추진하느냐는 점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박 이사장의 첫 행보가 M&A가 되지 않겠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금산분리 완화를 추진 중인 정부가 연금공단과 같은 일부 공적 연금공단을 예외적으로 금융자본으로 인정해 은행 인수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는 것이다.

현재 금융권 초미의 관심사는 산업은행으로 비롯되는 금융공기업의 민영화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짝짓기 방정식이 시장에서 떠돌고 있는데, 이들의 공통사는 바로 몸값이다. 우리금융만 사려고 해도 10조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하지만 국내 1위 은행인 국민은행조차 쏟아부을 수 있는 금액은 5조원 뿐이다. 연금공단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연금공단이 굴리는 돈은 230조원에 이른다.

김호식 전 연금공단 이사장의 태도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그는 3월 퇴임 전 가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도 “금융분야는 장기적으로 상당한 유망한 업종”이라면서 “정부가 (은행 M&A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또 “정부에서 추진하는 산업은행, 우리금융 등 M&A에 관심이 많다”는 입장을 수시로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이사장 또한 우리은행 재직기간 내내 “연금공단 등 연기금이 우리금융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 왔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박 이사장의 주목받는 행보

따라서 금융권 일각에서는 이 같은 상황에서 박 이사장의 행보가 연금공단의 M&A 전략과 관계있지 않겠냐는 추측을 내놓는다. 그가 우리은행 내부사정에 정통하다는 점도 추측을 뒷받침해주는 대목이다. 일괄성 없는 인사라는 비판을 받는 정부의 노림수가 바로 이 금융공기업 민영화의 ‘새판 짜기’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진 금산분리 완화가 실질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만큼 섣부른 추측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전 직장을 인수하는 것에 대해 박 이사장이 짊어지는 세간의 여론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의 시각이 박 이사장의 행보에 집중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를 향한 혹평 가운데에서는 ‘변신의 달인’이라는 별칭도 있다. 그는 이헌재 사단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새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반 이헌재 사단’으로 전향했다는 이야기가 금융권에 나돈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또 한번 변신을 할 수 있을까. 박 이사장을 둘러싼 금융권의 구설수는 당분간 계속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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