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천 바닥난 이명박, 홍준표 원내대표 ‘방패’와 ‘창’ 역할
전면에 나서서 고시 강행 ‘날카로운 창’, 원망 막는 ‘방패’
가공되지 않은 이명박 주류 전면으로 ‘나설 이’ 하나 없다
홍 “현안 해결되면 뒤로”…‘화합’ 당 대표 대신 ‘전투마’?
‘쇠고기 정국’을 거치며 홍준표 원내대표가 ‘뜨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원내대표가 되며 시선을 모은 것도 있지만 당 안팎에서 “모든 정국 현안은 홍준표를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권력의 축이 그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당`정에 ‘인물난’ 된서리
이른바 ‘홍준표 전성시대’라는 말로 대표되는 권력의 기울임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민심이반으로 국정수행 동력을 상실했다. 지지율은 20% 안팎으로 추락했고, 정권의 컨트롤 타워를 자임했던 청와대는 비서진 총사퇴로 권력 핵심부가 사실상 공백상태를 맞았다. 내부에서는 “정부에 더 이상 남은 패는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기 비서진을 꾸리고 새 내각을 준비하지만 그간의 국정난맥으로 손발을 맞출 시간조차 얻지 못한 이 대통령. 그에겐 난국을 풀 새 ‘열쇠’가 절실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곁에는 사람이 없다. 낙선한 이방호 전 사무총장, 유학길에 오른 이재오 전 한나라당 의원, ‘상왕정치’ 논란에 끝없이 휘말리고 있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언론장악 행보로 비판받고 있는 최시중 방통위원장, ‘형님’에 칼날을 빼들어 한나라당과 청와대를 뒤엎은 정두언 의원, ‘권력사유화’ 논란으로 물러선 박영준 전 비서관 등 최측근 인사들이 줄줄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몰리고 있다.
이 전 부의장이 당 안팎 상황과 국정혼란 등을 거론하며 “요즘 앞에 나서기가 어렵다”고 토로할 정도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말이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칭호가 아니라 권력에서 가장 멀어진 위치에 놓인 이들을 지칭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이런 권력진공 상태에서 홍 대표가 불가피하게 권력의 중심축 역할을 떠맡았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홍 원내대표도 권력의 중심축을 떠맡은데 대해 “지금은 국정의 중심이 없다. 누가 정리하겠느냐. 나와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하는 수밖에 없다.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상황도 상황이려니와 홍 원내대표 자신의 의지도 섞여있다. 그는 정부에 대한 당의 감시·통제권한 강화를 공언해왔다. 원내대표 선출 직후 이 대통령을 만나 “정치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정책은 임태희 의장이 하면 된다. 대통령은 통치만 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륜과 의지 ‘신주류’ 이끈다
홍 대표에게 ‘쇠고기 정국’은 위기 속 기회다. 오랜 기간 당 중립인사로 정치의 흐름을 읽어온 노련한 정치원로인 홍 대표에게 꽉 막힌 답답한 상황은 자신의 ‘돌파형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공언해 왔던 정부에 대한 당의 감시·통제권한 강화도 실현시킬 수 있었다.
그는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는 의총 등을 통해 한나라당 당론을 모아 쇠고기 고시를 막아냈다. 그러나 ‘강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자 쇠고기 추가협상 이후 정부의 요구대로 지난달 26일 고시를 받아들였다.
이 대통령 측근들의 분란에 대해 “실세 중의 실세다 하다가 이제 와서 대통령의 형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내는가 하면 청와대가 류우익 비서실장 경질에 미적거리며 ‘쇄신’의 타이밍을 놓치려하자 청와대를 압박, 비서진 전면 교체를 끌어낸 것도 홍 원내대표였다. 그는 “정부가 인적쇄신·국정쇄신으로 국민을 안심시켜야 된다”면서 “정부의 인적·국정쇄신도 조속히 하도록 요구”했다.
비서진 인사에서도 홍 대표의 의중이 통했다. 민정수석으로 거론되던 정종복 전 의원의 청와대행은 홍 대표의 공개적인 반대 의사 표명 후 결국 좌절됐다.
반면 내각 쇄신에서는 한승수 총리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유임론을 주장하고 있다. 그는 “총리까지 교체될 경우 국정 공백이 우려되는 데다 신임 총리가 국회 동의 절차를 통과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한 총리 교체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홍 대표는 “원 구성에도 한 달가량 걸릴 텐데, 총리를 교체하면 공중에 한두 달 이상 떠있게 된다. 한 총리에게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주는 게 좋은 방안”이라고 강조하며 내각 전면 쇄신을 바라는 당권 주자들에 엄포를 놓기도 했다.
‘쇄신’의 범위를 정하고 이에 대한 추진력을 높이는 홍 대표. 이를 두고 “이명박 정부의 최고 권력은 홍준표 원내대표” “‘상왕’이 가고 ‘홍반장’의 시대가 왔다” ‘만책홍통’(모든 대책은 홍준표 원내대표를 통한다)이라는 말로 절로 회자되고 있다.
홍반장 득세하니 국회가 술렁
‘거침없이’ 달려가는 동안 홍 의원이 잃은 것도 있다. 그가 쇠고기 고시를 주장하자 “어떤 언론사 여론조사를 보니까 네티즌의 71%가 야당이 등원해야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나와 남을 나누거나 차별하지 않는 불이(不移)의 마음가짐으로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대접하겠다”고 달래 등원 문턱까지 왔던 통합민주당이 성을 내고 가버린 것이다.
이는 이 대통령이 불법집회 엄중 대처 방침을 내놓은 것과 연관 풀이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및 국민여론 강경대응 논란을 불렀다. 일각에서는 홍 대표가 이 대통령과 뒤로 숨은 그의 측근들에 의해 움직인다는 ‘장막정치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차기 당 대표와의 갈등이 불거질 수 있는 ‘조짐’도 보이고 있다. 홍 대표는 “전당대회에 참석하시려는 이들이 득표수단으로 개각을 거론하는데 개각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며 이를 득표수단으로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전당대회에서 당권 경쟁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더 이상 개각에 대해 언급하지 말아달라고 경고했다.
당권주자들은 “월권을 하지 말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공성진 후보는 “국회의원은 여론을 수렴해서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인데 하물며 당 대표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이 당연히 그 같은 문제에 대해서 언급해야 되지 않겠냐”고 반박했고 허태열 후보측도 “개각 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당의 고유 권한”이라며 “홍 원내대표의 행위는 분명한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강재섭 대표도 홍 대표의 영향력이 커지며 상대적으로 원외의 한계를 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치권 관계자들은 앞 다퉈 차기 당 대표와 홍 대표의 기 싸움으로 당 내가 술렁일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창과 방패, 그냥 버릴까?
홍 대표는 ‘집권’이 길어질수록 반대여론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나를 (권력) 실세니, 홍 반장이니 하는데 참 부담스럽다”며 “현안만 해결되면 뒷선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러한 홍 대표의 발언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이 대통령에게 홍 대표 카드가 썩 나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홍 대표는 당 내 주류처럼 자기만의 계파를 형성한 인물이 아니다. 챙겨야 할 이들이 없기 때문에 잘못을 한 이들에 대해 날을 세우는 것이 상대적으로 편안하다. 지난 대선을 거치는 동안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를 동시에 겨냥, 비판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까닭이다. 항상 날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지난 대선 BBK 방어막으로 활약했듯 ‘방패’의 역할에도 일가견이 있다.
즉 국정운영의 방향이 잘못됐다면 날카로운 지적을 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정부와 당의 협의가 이뤄진다면 잡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인물, 정부의 입장에 방패막이가 되어줄 수 있는 인물이다.
홍 대표가 앞장 서 사회적 이해가 엇갈리고 있는 쇠고기 수입문제나 한반도 대운하에 대해 말해주면 이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감을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홍 대표를 거친 후 대통령에게 향하게 되면서 직격탄이 감소하는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다. 홍 대표가 대선을 거치면서 이 대통령의 ‘신뢰’를 쌓은 인물이라는 점도 긍정적 요소다.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잃은 대통령, 정치권력을 가지지 못한 총리를 대신해 이 대통령은 “하여튼 잘해보라”는 말로 홍 대표의 정국주도를 사실상 양해했다고 한다.
정치력의 상승곡선을 달리고 있는 홍준표 원내대표, 때론 ‘창’으로 때론 ‘방패’로 변모할 수 있는 그의 쓰임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