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이슈로 달궈지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쇠고기 추가협상을 통해 미국 측의 양보를 이끌어낸 탓이다. 30개월 이상 소에서 30개월 미만의 소로, 일부 위험부위를 추가적으로 제거하며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이 협상의 중심에는 바로 김종훈 통합교섭 본부장이 있다. 그는 참여정부 때부터 한미FTA 등 굵직한 현안을 맡아온 외교통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이번 추가협상이 모범답안이 될런지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시선도 많다.
찬반 엇갈리는 쇠고기 협상 정부는 환영, 국민은 철회
투명성 확보 위해 협의문서 전면 공개, 국민 우려 씻길까
오해 적극적 해명하고 나선 ‘포커페이스’ 감정적 비판까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는 쇠고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지난 6월26일 고시를 전격 발표하면서 기존의 쇠고기 논쟁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 과정에 단연 주목받는 인물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인 미국을 상대로 사실상 기존 협의 내용을 바꾸는 쇠고기 추가협상(한미 통상장관 협상)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다.
그는 참여정부 때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한국 측 수석대표로 협상 타결에 나가면서 세간에 알려진 인물이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에서도 장관급으로 활동하는 유일한 인물이 됐다. 현재 그의 직책은 통합교섭본부장. 국민 최대 의제가 된 미국산 쇠고기 협상의 최선봉에 선 인물이다.
美쇠고기 협상의 선봉
그의 추가협상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근본적 안전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주장부터 미국을 상대로 큰 양보를 얻어냈다는 호의 섞인 말도 있다.
두 의견은 치열한 대립이 진행되고 있지만 적어도 그가 미국을 상대로 기존의 협상보다 더 양보를 얻어낸 것만은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미국 축산업 중심지인 몬태나주 상원의원으로 ‘미스터 쇠고기(Mr. Beef)’로 불리는 맥스 보커스(Baucus) 미 상원 재무위원장은 추가 협상을 비판했을 정도다. 그는 지난 6월21일 AP통신 등에 보낸 성명에서 “추가 협상이 실질적으로 4월18일 체결한 협정을 변경했다”며 “이번 협정의 의미는 한국 및 다른 국가들과의 미국 쇠고기 교역에서 불행한 선례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런 그의 치밀함은 이번 협상에서 여지없이 발휘됐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김 본부장이 끝없이 강경한 입장이며 밀어붙이자 협상 주도권을 상실한 슈워브 대표가 눈물을 흘렸다는 말까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협상 첫날인 6월13일 김 본부장은 촛불시위 최대 인원을 기록한 지난 10일 광화문 일대를 찍은 사진까지 동원하며 미국 측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6월15일 김 본부장은 협상 결렬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귀국하겠다”고 통보했기까지 했다.
비상이 걸린 미국측은 백악관 고위관계자가 이태식 주미 대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협상을 계속하자”고 김 본부장을 붙잡았고 이 소식은 김 본부장에게 즉각 전해졌다. 하지만 15일 밤 10시30분께 뉴욕에 도착한 김 본부장은 “안 내려간다”고 버텼다고 한다.
압박과 회유를 거듭하는 미국의 협상 스타일로 볼 때 협상에 복귀하면 양보안을 내놓긴 하겠지만, 그 폭이 미미할 것으로 추정한 김 본부장이 뉴욕에서 버티며 미국측을 압박한 것. 김 본부장은 하룻밤을 뉴욕에서 묵은 뒤에야 워싱턴으로 돌아와 협상에 다시 임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평행선을 달리던 협상이 진전의 전기를 맞은 것은 유럽 순방에 나섰던 부시 대통령이 6월16일 오후 귀국하면서부터다. 부시 대통령은 처음부터 한국 측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라는 지침을 내려졌다.
김 본부장과 슈워브 대표는 18일 정오부터 2시간 동안 워싱턴 시내 모처에서 비공식 회동을 가져 오찬을 함께 하며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을 것으로 관측됐으나 두 사람은 점심 시간에 만나면서도 식사를 거른 채 협상만 계속했을 정도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30여년간 통상 업무에 전념해온 슈워브는 협상 전문가답게 김 본부장과의 대좌에서는 특유의 강인함과 냉철함을 잃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찬반 엇갈리는 성과
실제 이런 성과는 한나라당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김 본부장은 지난 6월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 참석,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를 보고했다. 강재섭 대표는 김 본부장이 의총장에 들어서자 “국민 눈높이에 맞춰 뱃심있게 협상해 미국 정부가 상당히 곤혹스러워 했음에도 돌파해 준 분”이라고 치켜세우며 “고생을 많이 한 김 본부장에게 박수를 치자”고 아끼없이 찬사를 던졌을 정도,
그렇다면 김 본부장의 성과는 기존의 쇠고기 논란을 모두 씻을 정도였을까.
결론적으로 정답은 ‘아니오’다. 세간에서는 여전히 촛불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위생조건을 담은 장관 고시가 관보에 게재된 지난 6월26일 촛불집회가 연일 이뤄지며 경찰과 대립하고 있다. 전면 재협상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하더라도 광우병 위험물질의 완전한 제거를 포함한 검역주권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입장차이가 있다는 것도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소고기 추가협상 결과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 문안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농무부 장관이 보내올 서한내용을 공개했다. 쓸데없는 의혹을 뿌리뽑자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일부 내용은 달랐다.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면이 있지만 정부의 입맛에 맞춘 느낌도 없지 않다. 이에 따라 영문 표현을 둘러싸고 새로운 논쟁이 벌어질 소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추가협상 결과 자체에 대한 의심이 계속 불거지자 김 본부장은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6월26일 추가 고시(부칙), 수전 슈워브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에드워드 샤퍼 농업부 장관의 명의의 서한, 추가 검역지침 중 일부 내용 합의문 등 3건의 미측과의 합의문 국ㆍ영문을 공개했다. 김 본부장은 “21일 새벽에 가져온 내용 그대로”라며 “합의문이 없는 것 아니냐, 발표 내용이 다르다는 의혹 아닌 의혹이 오래갈 이유가 없어 공개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서명된 서한이 다르면 책임지겠다”고 자신했다.
일선에 나선 김 본부장
사실 그가 일선에 나서 해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그의 별병은 ‘포커페이스’로 소위 감정의 기복이 드물다는 평가다. 하지만 최근 행보는 다소 열기를 띈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그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의 쇠고기 협상 비난을 강하게 반박했을 정도. 김 본부장이 공식 석상에서 특정인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김 본부장은 23일“정치적 입장을 떠나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이야기하실 분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해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김 전 장관이 지난달 한 주간지 기고문에서 미국내 치매환자 중 65만명이 인간광우병(vCJD) 환자라는 주장을 폈지만 인용된 예일대 및 피츠버그대의 연구는 인간광우병이 아니라 크로이츠펠트야콥병(CJD)”이라며 “민주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으나 전직 장관이 이 정도로 과장, 왜곡하는 것이 놀랍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쇠고기 전면 재협상시 무역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김 본부장의 주장이 ‘대국민 협박’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그는 “김 전 장관이 2000년 중국과의 마늘분쟁 당시 농림부장관이었고 저는 통상교섭본부 국장이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오히려 “김 전 장관이 중국산 마늘에 대해 긴급 관세를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해 30%이던 관세를 315%까지 높인 일주일 뒤 휴대전화 등 다른 품목이 보복을 받은 전례가 있는데 이런 것을 단순히 대국민 협박이라고 할 수 있느냐”며 역공했다.
이런 김 본부장의 행보는 그가 국민 여론에 의해 적잖게 수세에 몰렸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쇠고기 고시 이후 촛불집회는 점차 세가 확장되고 있다. 고시철회를 주장하는 이들을 막기엔 금번 추가협상으로는 부족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향후 김종훈 본부장의 행보는 계속 화제가 될 전망이다. 쇠고기 협상이 또 다시 국민과 대치상황에 놓인만큼 그의 ‘협상’이 계속 될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