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전화는 지난 1984년 ‘카폰’으로 불리는 차량용 서비스로 시작됐다. 그후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휴대용 이동전화서비스를 선보였다. 이것이 휴대전화의 대중화를 촉발시켰다. 당시 수도권과 부산지역에서 개시된 휴대전화 서비스의 기본료는 월 2만7000원, 통화료는 시내 및 시외 50Km까지 10초당 25원, 설치비는 65만원이었다. 서울-부산간 3분 통화를 기준으로 1988년 1286원이 2008년 324원으로 1/4수준, 물가 상승 감안 시 1/36 수준으로 낮아졌다.
1988년 당시 눈여겨 볼 대목은 휴대전화 자체가 ‘부의 상징’으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가격이 400만원 정도였기 때문이다. 당시 현대 포니엑셀 자동차 한대가 500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부의 상징이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국 휴대전화 시장은 1990년 전국 단일요금제 적용하면서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1996년 신세기통신에 이어 1997년 PCS 3사의 등장으로 경쟁과 성장을 거듭한 것이다.
실제 서비스 첫해인 1988년에 784대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가입자는 1992년에 차량전화 보급대수를 초과한 18만6630대로 차량전화를 두 배 이상 앞섰다. 이 같은 추세는 올 5월말 현재 4473만8000명으로 인구대비 92.2%의 보급률을 기록하며 ‘1인 1휴대폰 시대’를 열었다.
뿐만 아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CDMA 세계 첫 상용화에 이어 세계 최초 DMB방송 실시, 3세대 이동통신 강국이라는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 인프라와 서비스를 갖춘 IT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1인 1휴대폰 시대 개막
이동통신산업 발전은 시스템, 단말기, 콘텐츠 등 유관산업에 전후방 효과를 나타내면서 IT산업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6년 세계 최초의 CDMA 기술 상용화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 전 세계 이동전화 시장의 27%를 한국 제조업체가 점유할 정도로 세계적인 휴대전화 강국으로 거듭났다.
이 기간 동안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성장률은 연평균 18% 이상 기록하며 산업규모도 2006년 248조원 규모에 달했다. 이에 따라 경상GDP 내 비중이 무려 29%에 달할 정도로 국내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게다가 1996년 47만 달러에 불과했던 한 휴대전화 수출 규모도 2007년 186억 달러로 무려 3만9000배 이상 늘어났다.
휴대전화는 생활의 편리성을 높이는 것에도 일조하고 있다. 이제 휴대전화는 음성통화는 기본이고 영상전화가 가능해 지면서 듣는 전화에서 보는 전화로 진화하고 있다.
여기에 M-Commerce와 같이 원하는 시간, 원하는 쇼핑몰에서 쇼핑을 할 수 있고 모바일방송을 통해서는 방송프로그램이나 영화를 언제나 시청할 수 있게 되어 이용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 가능해졌다.
성년을 맞이한 대한민국의 휴대전화는 이제 단순한 통화수단이 아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됐다. 현재 대한민국 GDP의 29%를 차지하는 IT산업은 휴대전화 보급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