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특검 6차 공판 이건희의 노림수
삼성특검 6차 공판 이건희의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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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살릴 수만 있다면 악어의 눈물(?)이라도 어떠리

“(재산 증여에 대해서)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지난 7월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특검 6차 공판에서 나온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진술이다. 이 회장은 이날 공판에서 피고인 신문을 통해 “인감도 만져본 적 없다”며 각종 재산 증여와 주식 투자 지시 혐의를 부인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불법 사실이 있어도 나와 무관하다’는 포석을 뒀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학수 전 부회장을 비롯한 실무진의 부담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시사신문>이 삼성특검 6차 공판을 짚어봤다.

▲ 삼성특검 공판에 출석하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지난 7월1일 공판에는 이 전 회장과 그의 아들 이재용 전무의 진술이 시선을 모았다. (사진 / 맹철영 기자)
11시간 격정 마라톤 공판, 증인 5명에 5명 피고인 진술
‘아무것도 몰랐던’ 이건희 부자 “주식 대박은 운이에요”
혐의 부인에 이학수 전 부회장 총대 메고 총수 보호하나
삼성 역사상 최대 사건, 중순에 내려질 판결에 시선집중

삼성그룹의 비리에 대한 삼성특검 6차 공판이 지난 7월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이날 공판은 소위 ‘클라이막스’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번 공판이 증거 조정기일로 잡힌 8일 공판을 제외하면 결심공판 전 마지막 공판인 탓이다. 게다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핵심인물의 신문이 이뤄지는 공판이기도 했다. 편법승계 논란의 한 축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도 이날 증인으로 참여했다. 재판정 관람석 중간에 앉은 그는 양옆 좌석에 삼성 직원들의 수행을 받으며 그의 아버지 이 전 회장의 공판을 지켜봤다.
이 6차 공판에서 가장 시선이 집중되는 대목은 이 전 회장 부자의 발언이었다.

한 법정에 선 부자

특검에서 정조준하는 것이 바로 이 전 회장의 불법 여부였던 만큼 이 전 회장과 이 전무가 어떤 발언을 하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됐다. 이 전 회장이 특검에서 기소한 혐의를 부정한다는 점은 이미 초기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바 있다.

실제 그 대목에 대해서 이 전 회장의 입장은 확고 해보 인다.
이 전 회장과 이 전무의 진술의 공통점이라면 진술 시종일간 ‘당시엔 몰랐다’는 답변을 내놨던 점이다. 부자가 모두 재산 이동에 대해 당시 보고 받은 바가 전혀 없었고, 그에 대한 보고를 받더라도 사후에 받았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증인 신문 과정에서 “내 명의로 주식이 거래되고 이 회장의 재산이 증여되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오히려 이 전무는 특검 측의 언제 재산증식을 알았느냐는 질문에 “유학시절이라 전혀 몰랐고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고 답했다. 자신이 처분권을 가진 재산이지만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 법원에 입장하는 이재용 삼정전자 전무.
특히 이 전무는 에버랜드 주식을 소유하게 된 것에 “당시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회장님의 포괄적 지시에 의해 재산관리인이 취득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회장도 이에 대해 지시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증여를 지시한 적이 없다”면서 “나는 내 인주를 만져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관례상 그의 재산은 비서실이 관리해왔다는 것.
따라서 이 전 회장의 재산관리는 실무진의 재량 하에 재산 이동이 이뤄졌고 계열사의 상장 및 CB(전환사채), BW(신주인수권부사채)발행이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이 전 회장은 이 전무에게 증여한 재산이 빠르게 늘어난 것에 대해 “주식이 빨리 오르는 타이밍이어서 운이 좋았다”며 “타이밍에 대해 지시하지 않았고 운으로 됐다”고 일축했다.

총대 메기 이뤄지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에버랜드 CB 편법증여, 삼성SDS BW 등에 대해 ‘무죄’라는 입장에서 나아가, ‘유죄’가 되더라도 혐의와는 무관하다는 포석을 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전 회장 신문과정에서 변호인은 이 전 회장에게 “비록 직접 지시하지도 않고 인지하지도 못했지만 상급자로서 책임을 통감하느냐”고 묻고 이 전 회장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상 이는 ‘도의적 책임’에 불과하다는 지적다.

이 같은 이 전 회장의 진술에 경제개혁연대는 7월2일 논평을 내고 “모든 불법행위의 책임을 모면하려 애쓰는 이 전 회장의 태도는 그간의 존경심을 순식간에 먹칠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책임이 무거워지는 쪽은 바로 ‘실무진’이다. 총수일가의 재산을 관리해온 것은 이학수 회장과 김인주 사장 등이다. 이들은 직접 재산을 관리했거나 관리를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의 주장대로라면 ‘컨트롤 타워’인 구조본은 삼성그룹 위에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회장 일가의 재산마저 독단적으로 움직였던 셈이다.
이를 두고 재계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 측근의 ‘총대 메기’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돌고 있다.

▲ 법원에 입장하는 이학수 전 부회장.
이미 이 전 회장은 지난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은 뒤에도 세풍 수사, 불법 대선자금 수사, 삼성 X-파일 등 굵직굵직한 사건의 주인공으로 지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노태우 비자금 사건 이후 사법처리를 받은 사례는 전무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공로를 세운 인물로 손꼽히는 것이 바로 이학수 전 부회장이다.

이 전 부회장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 당시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이 전 회장과 무관하게 본인이 직접 저지른 일이라고 진술하고 모든 것을 뒤집어 쓴 바 있다. 특히 이 전 부회장은 당시 검찰의 수사에 당시 이 전 회장과의 연루 의혹을 철저히 막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 따르면 에버랜드 사건 수사에 대한 ‘예행연습’을 주도한 것도 바로 이 전 부회장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형태의 ‘총대 메기’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는 예상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김용철 변호사는 차명계좌 폭로 초기부터 “삼성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법원 판단에 시선집중

현재까지 공판의 결과는 섣불리 내다보기 쉽지 않다. 양측이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탓이다. 이날 공판에는 이 전 회장과 이 전무 외에도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전 사장, 현명관 전 사장 등의 피고인 신문이 진행됐고, 최학래 전 한겨레 사장과 손병두 서강대 총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 등이 양형증인으로 나왔다. 오후 1시30분에 시작된 공판이 끝난 것은 자정을 넘어서였다. 11시간이 조금 안 되는 시간동안 재판이 진행됐던 셈이다.

현재 특검은 내주 중 결심공판을 갖고 선고공판을 열 예정이다. 과연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특검 관계자들은 어떤 판결을 받을까. 업계의 시선은 앞으로도 당분간 삼성에 쏠릴 전망이다.


▲ 법원에 입장하는 이건희 전 회장에게 항의하는 태안 주민들.
▲ 삼성특검 6차 공판 이모저모

삼성특검 6차 공판이 이뤄지던 서울중앙지검 417호 법정은 100여석의 참관석이 모두 찰 정도로 많은 참관인이 몰려들었다. 각종 언론사를 비롯해 이 전 회장 이후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과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등도 참석해 처음부터 끝까지 공판을 지켜봤다.

이날은 삼성그룹의 전 수장이자 지배자인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재판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잖은 이슈가 됐지만 그 이면에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졌다.
이건희 회장이 법원에 1시경에 법원 입구에는 태안 주민들 100여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삼성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이건희 회장님 차라라 죽이십시오” “비자금으로 태안을 살려내라”라고 구호를 외쳐 잠시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밖에 첫 번째 휴정이 나던 3시경 중앙지법 서관 앞에서는 또 다른 진풍경이 벌어졌다. 법원에서 나가는 이재용 전무를 촬영하기 위해 포토라인에 대기하던 취재진 앞에 중년 여성이 서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한 것. 이 여성은 “삼성은 원래 내 것이었다”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골자는 자신이 사실은 삼성의 총수이며 이재용 전무와 원래 결혼할 사이었다는 것. 그녀는 자신을 과학자라고 소개하며 일부 기자에게 자신의 주장이 수록된 책까지 배포했다.

촬영에 방해된다고 느낀 취재진이 “아주머니 비켜주세요”라고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누구더러 아줌마래”라는 불호령이었다. 이래저래 다양한 이해가 얽힌 삼성특검 공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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