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 스님 위험" 단식 100일째
"지율 스님 위험" 단식 100일째
  • 김부삼
  • 승인 2005.02.0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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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지율스님 살리기' 한목소리
"지율스님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뿐이다" 국회의 '지율스님과 천성산 살리기'가 속도를 빨리 하고 있다.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에 반대하는 지율스님(48.여)이 3일로 단식 100일째를 맞는다. 최근들어 정부와 정치권도 뒤늦게 사태해결에 부심하고 있지만 앞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인간한계 넘은 100일 단식 2003년 2월5일부터 시작된 지율 스님의 단식은 이번이 네번째. 8일, 40일, 58일, 99일(진행중). 횟수를 거듭할수록 길어진 단식은 모두 청와대를 향해 '터널공사 백지화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일관된 시위였다. 지난해 6월 청와대 앞에서 시작한 세번째 단식은 정부로부터 `법원 항고심 판결 때까지 공사중단'과 `환경영향 공동 전문가 검토'를 약속받은 뒤 58일만에 풀었다. 하지만 환경부가 약속을 깨고 `터널 공사가 천성산 습지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내용의 단독 조사 결과를 발표한데다 법원의 현장검증마저 취소되자 지난해 10월27일 네번째 단식을 시작했다. 애초 `(환경영향) 선(先) 조사, 후(後) 공사'를 요구하며 법원의 중재안마저 거부했던 지율스님은 단식 80일째를 넘겨 자신을 찾아온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터널공사는 하되 3개월간 발파공사를 중지하고 그동안 환경영향을 공동 조사하자'는 것으로 요구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지난달 21일 농성 장소였던 청와대 부근 거처를 떠나 행방을 감췄다가 현재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곡기를 끊은 채 장기간 차와 물, 소금 등만 섭취해온 그의 건강은 이미 다른 음식을 몰래 섞어 먹여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경찰은 지율스님을 억지로 병원으로 옮기더라도 본인이 거부하는 한 회생시킬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 목숨건 요구사항 뭔가 지율스님이 줄곧 요구해온 건 고속철도 터널 공사가 천성산 환경, 즉 습지와 도롱뇽 등 각종 생물 등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조사해보자는 것이다. 그는 이 구간에 대한 고속철도건설공단측의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계획된 노선 주변에는 특별히 보호를 요하는 동.식물은 없다'고 주장했을 정도로 엉터리였다며 줄곧 공동조사를 요구해왔다. 지난해 환경부가 약속했던 공동 전문가 검토나 법원의 현장검증에 기대를 했던건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절차가 이미 법적으로 끝난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사태를 악화시킨 건 정치인들의 거듭된 약속 위반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12월 대선과정에서 `천성산 터널 공사 백지화 및 전면재검토'를 불교계 10대 공약 중 첫번째로 제시했지만 막상 당선후에는 지율스님측 천성산대책위원회를 배제한 채 노선재검토위원회를 구성, 기존 노선대로 공사를 강행키로 결정했다. 지율스님이 매번 청와대 근처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건 바로 이 약속을 지키라는 묵언의 시위인 셈이다. 곽결호 환경부 장관의 약속 위반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그의 비난을 받았다. ◆합리적인 해결책 가능성은? 현재로선 지율스님의 생명을 살리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게 사실이다. 지율스님은 `3개월 발파공사 중지 및 환경영향 공동 조사'라는 제의를 해놓고 정부 답변을 기다리던 지난달 20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나로서는 물러설만큼 물러섰다.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답답한 건 내가 아니라 정부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의 `선조사, 후공사' 요구와 비교할 때 사실상 `공사 중지 요구'는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해결책을 찾는다면 `환경영향 공동 조사와 이를 위한 공사 일정 조정' 정도에서 찾아야 했는데 정부가 "일개인 때문에 국책사업을 자꾸만 중단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는 여론을 의식, 공동 조사마저 거부하는 바람에 사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됐다는 것.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이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결의안 상정 등을 약속하고 있는 것은 이 점을 의식한 행동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은데다 100일을 앞둔 시점이어서 이미 늦은게 아니냐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지율스님측 이동준 변호사는 최근 "나를 비롯해서 스님과 가까운 이들도 스님을 만날 때마다 단식을 풀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정부 입장이 이전보다 강경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율스님은 이미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는 동생(36.여)이 맡아서 소박하게 치르고, 대법원에서 검토 중인 `도롱뇽소송'은 이 변호사가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도 뒤늦게 사태해결 한목소리 임시국회 첫날인 2월 1일 국회에서 '지율스님 살리기'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여야 의원 92명은 이날오후 '지율스님 살리기와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의안은 이날 국회에 제출돼 해당 상임위에서 대체토론을 거쳐 일반 법률과 같이 심사를 거치게 된 뒤 본회의의 표결로 처리 여부가 결정된다. 여야의원들은 "단식중인 지율스님을 살리는 길은 천성산 관통 터널공사 중단과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뿐"이라며 청와대를 압박했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지율스님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노 대통령"이라며 "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이행과는 별도로, 노 정부의 환경정책은 계속 후퇴라는 환경단체 평가가 있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지율스님과 천성산 문제"라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김원웅 의원도 "지율스님에게 만약 불행한 일이 생기면 누가 그르냐 옳으냐 떠나 우리 사회의 갈등이 심각한 국면에 돌입할 것"이라며 "정부는 이미 환경영향평가를 해서 재실시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나라 대형사업의 환경영향평가는 그간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천성산의 훼손을 막기 위한 일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지금까지 대형 사업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요식적으로 끝난 경우가 많아 천성산 환경영향평가도 심정적인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홍석 한나라당 의원은 "사후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됐을 때 관련자에게 '패널티'를 줘야한다"며 "이런 내용의 법제화를 촉구하는 내용도 모임 합의문에 넣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의원들은 "이미 환경영향평가제도 개선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고, 지금은 문제를 단순화해서 지율스님 살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환노위 소속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부 입장도 잘 알고 있지만 지율 스님 살리기가 워낙 중요해서 이 자리에 왔다"며 "스님도 요구하지 않는 사안을 꺼내 문제를 확대시키지 말자"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도 대통령 면담 추진, 건교부·환경부 등 관계부처 장관 회동 등이 검토됐으나 모임에 참석한 의원들은 "추진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텐데 이미 그럴 때가 아니다"라는 데 뜻을 모았다. 이에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도 김덕룡 원내대표와 박세일 정책위의장이 "환경이냐 개발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죽음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지율스님에게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전날 지율스님을 만나고 온 박세일 정책위의장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스님은 그냥 누워있는데 상당히 좋지 않았다"고 상황을 전달했다. 박 정책위의장은 "한 수행자가 목숨을 걸고 호소를 하고 있데 정부가 할 일 다 했으니 할게 없다는 식"이라며 "이 문제가 사실은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사를 백지화하자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고 노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또한 박 정책위의장은 "환경영향재평가에 비용이 들지만 이전 평가를 졸속으로 했다는 주장도 있고 제3의 대안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며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에 힘을 실었다. 김덕룡 원내대표 역시 "스님의 주장이 무조건 옳지는 않고 정부가 공사를 계속하는 논리도 이유가 있지만 지금의 사태는 노 대통령의 대선공약 때문에 생겨났다"며 "지율스님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한다면 정권의 불행과 사회의 불행이 어찌 되겠냐"고 정부와 국회 차원의 해결책 마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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