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빈곤에 내몰린 한국형 장발장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빈곤에 내몰린 한국형 장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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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범죄'급증 전문가에게 물었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최근 연이어 잡히고 있는 절도범들의 범행동기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생계유지의 어려움에서 기인하는 다양한 비합법적인 행위를 ‘생계형 범죄’라 한다.

사실 ‘생계형 범죄’란 과거 IMF 때 급격히 증가한 한국형 ‘장발장’들로 인해 언론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그런데 최근 한동안 잠잠했던 ‘장만장’들이 전국에서 활동을 개시, 고유가·고물가로 인해 경제상황이 IMF 때만큼 힘들어지자 다시 ‘생계형 범죄’가 기승하고 있다.

<시사신문>은 급격히 늘고 있는 ‘생계형 범죄’에 대해 짚어봤다.


IMF 때 급격히 증가한 한국형 ‘장발장’들로 인해 언론이 만든 신조어
법조문 등에 아직 ‘생계형 범죄’ 명칭 존재하지 않아 개념?기준 모호해

‘경기불황 장기화’, ‘실업자 증가’, ‘고유가’ 등 사회적 병리현상
벌금 낼 돈 없어 교도소행 ‘범죄자’ 낙인 찍혀 또 범행 저질러

‘생계형 범죄’는 전문 범죄가 아닌 빈곤 등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범행을 일컫는다. 사소하게는 무임승차에서부터 크게는 가족끼리 보험금을 노리고 가족 한명이 희생을 하는 등의 범죄가 있다.

아직은 법조문 등에 ‘생계형 범죄’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그 개념과 기준에 모호한 부분은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물건을 훔치는 ‘절도’ 범죄가 가장 많다.

‘생계형 절도’ 사례는 최근 연일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일선 경찰서에 붙잡힌 범죄자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그중에는 일가족이 절도 혐의로 나란히 경찰에 연행되는 등의 ‘생계형 가족 절도’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생계형 ‘가족절도’ 기승

경기도 수원에 사는 A(67)씨는 하마터면 딸, 사위와 함께 나란히 철창신세를 질뻔했다. 지난 7월7일 경기 수원중부경찰서에 딸, 사위와 함께 불구속 입건된 A씨. 그의 죄목은 특수절도이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월6일 0시쯤 수원시 팔달구의 한 공사현장에서 나온 철근을 사위(47)와 딸(41)을 불러 트럭에 실어 훔치려한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A씨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트럭을 몰고 다니며 패지와 고철류를 모아 팔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사건이 발생한 날도 평소처럼 일을 하던 A씨는 우연히 공사현장에 버려진 고철을 발견했다. 운좋게 많은 양의 고철을 발견했다고 여긴 A씨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딸과 사위에게 도움을 요청해 고철을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가져가려 했던 고철은 공사장 소유의 공사자재로 주인 허락 없이 가져가면 엄연한 절도다. 범행이 발각된 A씨는 경찰에서 “철거현장에서 나온 고물이라 생각돼 가져가려 했는데 일가족이 도둑이 될 줄 몰랐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와 함께 지난 7월4일 수원남부경찰서는 대형 할인마트에서 100여만원 어치의 물품을 빼돌린 혐의(특수절도)로 B(41.여)씨 자매가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는 지난 7월4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영통구의 모 대형 할인매장에 갔다. 이곳에서 동생(33.여)이 매장 캐셔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생필품과 의류 등 115만원 상당의 물품을 카트 가득 쇼핑한 B씨는 동생이 계산하고 있는 창구로 갔다.

하지만 B씨는 애초부터 물건 가격은 계산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결국 계산은 하지도 않은채 그대로 물건을 카트에 싣고 달아났다. 하지만 B씨는 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마트 관계자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됐고, 마트 캐셔 동생도 공범으로 자매가 함께 나란히 경찰서로 연행됐다.

경찰 관계자는 “불황이 계속되면서 ‘생계형 범죄’가 늘어남은 물론, 특히 이들 자매처럼 평범한 가족들의 절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돈되면 닥치는 대로

또 최근 ‘생계형’ 절도범들은 고유가로 원자재 가격 등이 상승하자, 철근과 구리선 등 건설자재부터 통신시설의 낙뢰방지용 접지선까지 돈이 되는 물건이면 모조리 훔쳐가고 있다. 문제는 사용되지 않는 전선만 훔치는 것이 아니라 전류가 흐르고 있는 전선을 자르고 낙뢰방지를 위한 접지선까지 훔쳐가고 있어 2차 피해까지 우려되고 있다는 거다.

강원 원주경찰서는 지난달 6월27일 오전 5시 20분께 원주시 반곡동 모 통신회사 기지국 내에 침입, 절단기를 이용해 40만원 상당의 접지선을 훔치던 C씨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경찰 조사결과 검거된 C씨는 이 이동통신사 기지국을 설치 공사에 참여했던 일용직 근로자로, 지난 3월 실직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서 C씨는 일을 그만두자 생계가 망막해 생활비를 마련할 목적으로 값비싼 구리선으로 된 접지선을 훔쳤다고 진술했다.

피해 이동통신사 관계에 따르면 C씨가 절단한 접지선은 내부가 구리선으로 돼 있어 낙뢰 발생시 전류를 땅으로 흘려보내는 피뢰침 역할을 한다. 때문에 접지선이 절단되면 낙뢰시 통신장애 등의 2차 피해까지 일어나 큰 손실이 발생한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이달 초 강원도 양구 터널 공사 현장에서도 조명용 케이블 3,300m가 잘려나가는 등 유사 범행이 잇따르고 있다”며 “이처럼 늘어나는 절도 범행 피해를 막기 위해 최근 회사에서 절단을 즉각 인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지난달에는 전류가 흐르는 전력 공급용 구리 전선까지 훔쳐 절도로 인한 2차 피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건 아찔한 절도 사건도 발생했다.

경찰은 지난 6월1일 오전 8시 10분께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인근 전신주에 올라가 한전 소유의 전력 공급용 구리선 650m(180만원 상당)을 절단기로 잘라낸 혐의로 D(42)씨 등 2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전선을 훔친 뒤 해당 마을 일대가 한 때 정전이 발생했었다”며 “고유가 여파로 각종 자재 가격이 급상승하다 보니 공사현장의 각종 자재는 물론 전류가 흐르는 전선까지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며 늘어나고 있는 ‘생계형 절도’에 대해 우려했다.

빈곤에 내몰린 서민

지난 6월말 광주교정청이 집계한 결과, 최근 9개월새 광주·전남 지역의 절도범 재소자 10%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교정청 조사에 따르면 이들 절도범 가운데 상당수는 사소한 물건을 훔친 ‘좀도둑’이나 ‘생계형 범죄’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는 경제 사정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절도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일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학전문가는 “‘생계형 범죄’의 발생은 경기불황이 장기화되고 실업자 증가에 따른 사회적 병리현상”이라며 “생계형 범죄는 주로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만큼 우리 주변 저소득층의 생활이 어려운 상태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고 ‘생계형 범죄’ 발생 원인에 대해 분석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형민 박사도 ‘생계형 범죄’ 급증 이유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지목했다. 박 박사는 “생계형 범죄자들은 빈곤에 내몰리다가 딱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범죄를 선택한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대게 초범이 많고 쉽게 주변에서 절도 할 수 있는 것부터 범행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박사는 “생계형 범죄자의 경우 벌금형이 많지만 생계가 어려워 벌금을 낼 돈이 없어 교도소 노역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며 “이럴 경우 오히려 교도소 수감을 통해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범죄를 학습하거나 출소 후 친했던 재소자들끼리 모여 범죄 네트워크를 만들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에 따르면 ‘생계형’ 범죄자들의 경우 계획적이지 않은 우발적 첫 범행인 경우가 많다.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교도소행을 선택했던 이들에게 ‘범죄자’라는 전과 낙인까지 찍히면 이들은 출소 후 또 어쩔 수 없이 범행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출소 하루 만에 범행을 또 저질러 경찰에 붙잡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고 살기가 힘들어 교도소에라도 들어가야 겠다’며 일부러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들까지 있어 법적인 처벌만이 해결방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박 박사는 “최근 경찰 등이 ‘생계형’ 범죄자들도 강력한 처분을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강력처분을 하기보다 이들이 다시 범행을 저지르지 않고 먹고 살게끔 해주는 치료적인 접근과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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