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 지난 6일 첫 전국대의원대회(전대)를 열고 정세균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했다. 정 의원은 이날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대에서 9540표 중 57.6%인 5495표를 얻었다. 정 의원이 과반득표함으로써 대표경선은 1차 투표에서 승부가 갈렸다.
정 의원과 경합을 벌였던 추미애 의원과 정대철 고문은 막판 단일화라는 승부수를 띄우며 추격전을 펼쳤으나 조직력 열세를 극복하지 못했다. 추 후보는 26.5%(2528표), 정대철 후보는 15.9%(1517표)의 지지를 각각 얻었다.
1인 2표제로 진행된 최고위원 경선에선 수도권 지지세를 바탕에 둔 송영길 의원이 1위로 당선됐다. 3062표로 16.1%의 지지를 얻었다. 막판 급부상한 김민석 전 의원은 2위에 올랐다. 2961표를 얻어 15.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주선 후보(2620표)가 3위, 안희정 후보(2435표)가 4위에 각각 올랐으며 김진표 후보는 안 후보에 50표 모자란 2385표를 얻어 5위에 올랐다. 이처럼 386 그룹인 송영길, 김민석, 안희정 후보가 나란히 최고위원 1, 2, 4위로 지도부에 입성함에 따라 총선을 거치며 와해되다시피 한 386 그룹이 부활에 성공, 지도부의 세대교체를 예고했다.
갈등·분열 잠재워야
민주당이 이번 전대에서 정세균 의원을 새 대표로 선출한 것은 ‘개혁’ 카리스마와 대중성을 갖춘 추미애 후보가 ‘민심’에서는 앞서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부를 추스르는 게 더 시급하다는 바닥 정서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10년 만에 야당으로 돌아온 민주당호(號)의 선장에 오른 정 대표에게는 지난해 대선, 지난 4월 총선 패배 후유증을 극복하고 당을 추슬러야 하는 구원투수 역할이 주어진 셈이다.
정 대표는 “당 대표에 선택돼서 아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우선 당을 운영하는 방법부터 확 바꿀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 대표는 당 내부적으로는 화합의 카리스마로 갈등과 분열을 잠재우면서도 대(對) 한나라당 전선에서는 소신과 뚝심을 지키고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위기 때마다 당을 구출해내는 역할을 해왔다는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이번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 것도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꽉 막힌 여야 대치 상황에서 당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당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그는 당이 분열로 치닫던 지난해 2월 당 의장에 합의추대된 이후 지난해 8월까지 열린우리당을 마지막까지 지켜내며 화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때문에 당내에서는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상대로 정부·여당을 적절히 견제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당 당 대표, 최고위원 5명 선출…정세균 파워시대 개막
의미있는 2위 추미애, 정세균 “추 의원 당에 기여토록 할 것”
그러나 정 대표가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다. 추미애 후보가 26%가 넘는 지지를 이끌어내 만만치 않은 파괴력을 보인 만큼 정 대표가 ‘화합’과 ‘변화’의 가운데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부담감이 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하고 있다.
‘변화’의 키워드로 부상했던 추 후보가 비록 정 후보의 절반에 못치는 수준이지만 26.5%의 지지를 얻은 것은 당내 화합을 토대로 변화와 쇄신을 추구해 나가라는 당심의 메시지가 담겨있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는 당내 문제와 관련해 경선 기간중에 다른 후보측과의 대립하는 일은 선거기간중에 있기 마련이라며 곧 추미애·정대철 후보를 만나 당을 위해 많은 논의를 나누겠다는 의사를 나타냈다.
특히 추미애 의원에 대해서는 “당의 소중한 인적 자산”이라면서 “그런 분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 운영기조와 세력판도에는 일대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일단 ‘강한 리더십’의 출현이 예상된다. 여당에서 야당으로 신분이 바뀐 이후 처음으로 경선을 거쳐 탄생한 지도부여서 과도기 관리형인 손학규 체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구심력을 보일 것으로 예상 된다.
당 운영의 핵심 키워드는 ‘준비된 수권정당’이 될 전망이다. ‘무능’과 ‘혼선’의 열린우리당이나 투쟁일변도의 과거 야당상에서 벗어나 민생현안에 대응하는 정책 기능을 활성화하고 짧게는 2010년 지방선거에 대비하면서 길게는 2012년 총선·대선에 대비, 자체 인력 교육·훈련과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서겠다는 내용의 ‘1만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풍부한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대안정당의 면모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정동영·김근태계 쇠락
‘힘의 질서’에도 새판짜기가 예상된다. 7·6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권력지형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정세균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가 ‘뉴민주당’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면 정동영계와 김근태계 등은 눈에 띌 정도로 쇠락하는 분위기다. 당내 한 자락을 차지했던 옛 민주계 역시 일부의 개인적 약진에도 불구, 중심부에서 밀려나는 형국이다.
지난 8일 단행된 당직 개편은 신주류의 전면 등장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4선으로 이미경 사무총장, 3선의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정세균 체제’의 개혁과 대안 제시를 주도할 쌍두마차로 꼽힌다. 여기에 원혜영 원내대표 역시 이들과 성향적으로 통하는 ‘신주류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같은 재선의 최재성 대변인과 강기정 대표 비서실장, 당내 한반도전략연구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3선의 김부겸 의원 등 386그룹들도 뉴민주당의 주축으로 등장할 태세다. 당 내부에서는 정 대표를 정점으로 이미경 총장 등의 다선그룹에 386그룹이 손을 잡는 ‘연합군’이 향후 당 중심을 이룰 것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는 쇠락 기운이 완연하다. 두 계파의 지원을 등에 업은 문학진 의원의 최고위원 낙선은 단적인 예다. 여기에다 계파 인사들이 당직 개편에서도 중용되지 못해 변방에 머물게 됐다.
열린우리당 때 위세를 떨쳤던 천정배·이종걸 의원, 최재천·정성호 전 의원 등의 개혁파 그룹도 미미한 영향력을 드러내고 있다. 추미애 의원과 문병호 의원 등의 낙선으로 위축된 입지를 확인하면서 정 대표 체제에서 비주류로서의 행보를 걸을 전망이다.

이는 단순히 당 간판의 교체 차원을 넘어 당 지도세력의 실질적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특히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총선에서 추락하는 듯 했던 386 그룹의 선두주자인 송영길, 김민석 의원이 각각 1, 2위로 당선돼 부활의 날개를 얻었고 구 민주당계는 김민석 의원과 함께 박주선 의원이 3위를 차지해 당내 세력분점에 성공했다. 안희정 후보의 당선에 따른 친노계의 세 결집 조짐도 주목할 대목이다.
‘386 화려한 부활’
이번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관심이 쏠리는 것은 ‘386 세력’과 ‘옛 민주계’의 약진이다. 참여정부 말기 정권 실패의 책임론을 뒤집어쓰며 여론의 뭇매를 맞던 386이 정권을 내준지 5개월 만에 재기의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들의 당선은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에서 궤멸하다시피 한 386그룹의 정치적 재기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옛 열린우리당 386 의원들 상당수가 이번 총선에서 재선에 실패하면서 당내 위상도 약화됐다. 그러나 이날 투표 결과 옛 열린우리당 386의 ‘맏형’으로 불리는 송영길 후보와 옛 민주계의 386 ‘대표주자’격인 김민석 의원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힘의 질서’지각변동 정동영·김근태계 쇠락…옛 민주계도 변방
386 송영길·김민석·안희정 최고위원 선출 “세대교체의 주역”
송영길 최고위원은 3선 고지에 오른 데 이어 1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됨으로써 차세대를 이끌 ‘386 대표주자’로서 자리매김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2002년 서울시장 낙마 후 6년간 와신상담 끝에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그는 서울시장 낙선, 탈당과 국민통합 21 입당, 17대 총선 낙선 등 혹독한 정치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대의원 수 30%의 지분을 얻으면서 적지 않은 ‘파워’를 확보한 옛 민주계는 3명의 후보 가운데 김민석, 박주선 후보 2명을 지도부에 합류시켰다.
민주계 일각에서는 경선 초반부터 김민석, 박주선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조직력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받는 구 민주계의 분위기는 실제 표로 드러난 셈이다. 이로써 향후 당 운영에 있어서 일정한 영향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친노진영’의 안희정 후보도 4위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총선에서 상당수가 공천을 받지 못하면서 위기에 몰렸던 친노진영은 이번 경선에서 최고위원에 입성한 것만으로도 상징하는 바가 크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그는 1965년생으로 최고위원 당선자 가운데 최연소다. 안 최고위원은 참여정부 출범 후 실세로 떠올랐지만 2002년 대선 당시 삼성 등 기업체로부터 65억여 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영어의 생활을 보내야 했다.
친노진영은 지난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의 재평가 작업이 들어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향후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친노진영 부활의 교두보가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도대체 386의 정치적 지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으며 부정적 평가를 냈다.
그럼에도 현실적 진보, 실용적 진보를 추구하는 듯 보이는 386정치인들에 대한 기대는 계속된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내내 실망했지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정치권의 변화를 주도할 세력을 형성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도 적지 않다. 환영과 비판, 실망과 새로운 기대 사이에서 386정치인들의 앞날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