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아무리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라지만 의사까지 가짜가 있을까? 정답은 ‘있다’ 이다.
지난 7월8일 의과대학 졸업장은 물론 의사면허까지 위조해 지난 8개월간 가짜 피부과 의사 행사를 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종종 의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돈을 뜯는 사기사건은 있었지만 직접 환자를 진료까지 한 경우는 드물다.
진짜 의사도 속이고 8개월간 400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할 정도로 완벽했던 그의 범행을 <시사신문>이 추적해봤다.
어깨너머로 ‘아름아름’ 배운 의학기술로 8개월 동안 환자 400여명 진료
개인병원 신원확인 소홀히 한다는 점 이용, 의사면허증까지 직접 위조해
지난 7월8일 울산남부경찰서는 의사면허증과 대학졸업장을 위조해 피부과 의사 행세를 하며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혐의(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로 A(34)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8월부터 검거되기 전까지 약 8개월간 모두 434명의 환자를 상대로 지방융해술과 화학박피, 레이저치료 등 피부과 질환치료를 하고 7,500여만원 상당의 부당 이득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A씨의 구속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의아해 했다.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직이다. 또 아무런 기초지식 없이는 함부로 흉내도 낼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도대체 어떻게 A씨는 의사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걸까?
‘간호조무사’가 의사로 변신
사건을 담당한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전직 간호조무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지난 2000년 즈음,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을 통해 간호조무사가 된 그는 병원의 응급센터에서 일했다. 간호조무사는 ‘간호 및 진료 업무를 보조해 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A씨는 병원에서 화상치료 등에 관련된 업무를 맡아했다. A씨는 이때부터 피부과 진료에 대한 의료기술을 배우기 시작, 일본과 캐나다 등지로 해외연수도 다녀왔다. 그 후 아는 지인을 통해 다른 피부과 병원 원무과 직원으로 이직한 A씨는 이곳에서 더 많은 기술을 배우게 된다.
경찰조사에서 A는 “병원의 경우 새장비가 들어오면 작동 방법에 대해서 의사와 기술자, 행정요원이 참석해서 배우는데 그때 어깨 너머로 의료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이렇게 아름아름 익힌 의료장비기술은 그가 의사 사기극을 벌이는 기본 토양이 됐다.
그는 의사로 취업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서울의 모 유명대학 졸업장을 위조한 뒤, 지난 2000년 자신이 근무한 경기도 모 병원의 진짜 피부과 의사의 면허번호를 따 의사면허증을 직접 위조해 가짜의사 행세를 했다. 또 그는 병원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성적증명서까지 위조해 제출했다.
경찰은 “A씨는 진짜 의사면허증에다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와 자신의 사진을 붙여 다시 복사해서 가짜 의사면허증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의사면허증으로 A씨는 지난해 8월부터 2군데의 피부과를 옮겨 다니며 의사로 일했다. 특히 A씨를 고용한 울산의 개인병원 2곳은 의사면허 등에 대한 사전 확인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는 등 인사관리에 허점을 드러냈다.
병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일해 온 A씨는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개인병원의 경우 신원확인을 소홀히 한다는 점과 최근 피부과 의사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을 노렸다.
A씨를 고용했던 병원장은 “종합병원은 사무부서가 따로 있어서 이력서를 제출하는 등 신원확인을 제대로 하지만 개인병원은 보통 알음알음으로 소개 받는다”며 A씨의 감쪽같았던 의사 행세에 혀를 내둘렀다.
동거녀도 깜빡 속아
하지만 A씨의 의사놀이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5월 A씨가 동거녀(44)를 폭행해 경찰에 입건되면서 경찰조사결과 그의 최종학력이 고졸인 것이 들통난 것이다. ‘피부과 의사가 고졸?’ 결국 이를 이상하게 여기고 조사에 들어간 경찰에 의해 A씨의 가짜 의사 행세는 끝나고 말았다.
그의 범행이 얼마나 완벽했던지 A씨의 동거녀 조차도 그가 가짜 의사인 것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A씨는 괌으로 간 뒤 가짜 의사행세를 계속하려고 출국준비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06년에도 경기도 모 병원에서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다 붙잡혀 입건돼 동종 전과를 가지고 있다.
경찰은 “어깨너머로 배운 의료기술만으로 환자를 치료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A씨에게 치료받은 환자 중 부작용 발생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지만 아직 피해자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