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가 귀국하며 2년 6개월여 만에 재개된 대우구명로비 의혹 수사가 잠정 마무리됐다. 특히 이번 조사는 사면 이후 재계 복귀에 대한 구설수를 몰고 다니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장애물이 됐다. 김 전 회장이 복귀는커녕 또다시 검찰에 기소된 탓이다. 은닉재산이 드러나는가 하면 조씨의 로비의혹 정황도 확인됐다. 김 전 회장의 향후 행보가 더욱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다.
사면 이후 7개월의 짧은 자유, 과거 씻기는 실패
검찰 조사에 은닉재산 들통나 다시 법정에 설 판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재계 복귀가 사실상 무산됐다. 김대중 정부 시절 퇴출 위기에 몰린 김 전 회장이 대통령의 측근인 재미교포 사업가 조풍언씨를 통해 구명 로비를 시도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확인된 것이다.
대검찰청 중수부는 지난 7월9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1999년 6월 김우중 전 회장이 조풍언씨에게 전달한 4430만달러는 대우 구명로비에 쓰라고 준 자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며 “하지만 실제 로비에 사용된 흔적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은닉재산 속속 등장
조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인물. 검찰은 김 전 회장이 해외금융조직인 BFC를 통해 빼돌린 회사자금 가운데 4771만달러를 퍼시픽인터내셔널이라는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로 보내 대우개발 주식 776만주를 구입하고, 강제집행을 면탈할 목적으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베스트리드리미티드(전 대우개발) 명의로 허위양도한 사실을 밝혀냈다.
김 전 회장은 이 부분의 범행 일체를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김 전 회장은 베스트리드리미티드 주식 776만주(시가 1100억원대)를 자진 헌납했다. 이 회사는 경주 힐튼호텔, 아도니스골프장, 에이원컨트리클럽, 밴티지 홀딩스 등의 지분을 상당히 보유해 재산 가치만 11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밖에 검찰은 BFC 횡령자금으로 구입한 미술품 134점(구입가격 7억8000만원)이 아트 선재미술관에 보관돼 있는 사실도 확인해 압류조치했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도 강제집행면탈 혐의로 불구속기소를 피하지 못했다. 사면 받은지 불과 7개월만에 또다시 기소된 셈이다. 재계에서는 사뭇 황당하다는 평가다. 사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말 사면과 동시에 재계 복귀를 하리라는 전망이 재계의 이목을 모았다.
수감 기간 동안 지병 치료에 전념하던 그는 사면 된 이후 이동호 대우차판매 사장, 장병주 ㈜대우 전 사장, 김욱한 대우재단 이사장,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 등 최측근 인사들을 빈번하게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출국정지를 확인하기 전까진 베트남·중국·미국 등 과거 자신이 세계 경영을 펼치던 나라를 돌아보려고까지 했다. 근 10년만에 김 전 회장의 활동이 시작되는 상징적 순간이었던 셈이다.
실제 전 대우그룹 관계자들은 “김 전 회장이 분명히 다시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자신했을 정도. 백기승 전 대우그룹 홍보이사는 당시 일부 언론과 만나 김 전 회장의 출국금지에 대해 “사면을 해줬으면 일을 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당시 그는 “CEO로서 ‘김우중 브랜드’만 해도 돈은 쉽게 만들어 쓸 수 있다. 해외 유명기업의 경영고문만 맡아도 새로운 사업을 엮어낼 수 있고, 기업가치가 크게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그의 주장도 결국은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김 전 회장이 다시 기소되면서 재계 복귀는커녕 다시 법정에 서야 할 판이 된 탓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전 회장을 향한 악재는 이제 막 시작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검찰은 수사발표에서 “조씨가 언급한 로비 대상자에 홍걸씨 등 김 전 대통령의 측근과 금융부처 등 정부 고위공무원들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실제 로비가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조씨의 해외계좌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홍콩, 스위스에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한 상태다.
로비 핵폭탄 터지나
검찰 관계자는 “홍콩 검찰총장에게서 적극적인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검찰은 김 전 회장의 검찰 진술과 관련한 로비 실행 여부를 확인하는 데 여전히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김 전 회장은 검찰에서 “조 씨가 대우정보시스템 주식 258만주의 30%를 김 전 대통령의 3남인 홍걸 씨에게 주겠다고 해 주식의 30%는 홍걸 씨 몫으로 알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검찰 주변에선 실제 로비는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로비가 있었다면 누구를 상대로 했는지 등 주요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향후 김 전 회장의 행보가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한때 ‘세계경영’을 기치로 전 세계를 주름잡던 김 전 회장의 앞날에 영광의 재현이 있을지, 불명예스런 몰락이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사건일지-
1999.10.21 - 김우중 전 회장 중국 방문 후 귀국, 해외도피
2001. 2. 3 - 검찰, 대우 ‘41조원 분식회계’ 발표
2005. 6.14 - 김 전 회장 귀국. 검찰 조사 시작
2006.11. 3 - 김 전 회장 항소심 징역 8년6개월 및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2조9253억원 선고
2007.12.31 - 김 전 회장 특별 사면
2008. 3. 8 - 대우구명 로비의혹 조풍언씨 입국
2008. 5.15 - 조풍언씨 구속
2008. 6.13 - 김대중 전 대통령 3남 김홍걸씨 소환조사
2008. 6.21 - 구본호씨 구속
2008. 7. 9 - 중간 수사결과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