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수많은 비리 사건으로 시선을 모았던 농협에서 또 다시 고위임원 비리가 적발됐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부문의 대표이사 남모씨가 협력업체에게 상납금을 받는가 하면 고위 임직원에게도 두루 뇌물을 준 혐의를 받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올해 초부터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주도하에 꾸준히 진행되던 농협의 개혁도 빛바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원병 회장 강조하던 농협개혁 ‘비리 인사’는 사각지대(?)
수차례 비리 논란에 시달렸던 농협에 또다시 비리사건이 터졌다. 농협중앙회 4대 사업의 한 축인 축산경제 부문 대표이사 남모씨가 특정 납품업자에게 유령회사를 설립하게 한 뒤 이익금 명목으로 약 12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 등으로 적발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비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남씨를 포함, 납품 및 인사청탁 등을 둘러싼 비리사슬도 포착됐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농협 관계자 7명, 납품업자 4명 등 모두 11명이 얽힌 초대형 비리사건으로 비약됐다. 농협의 안팎에서 개혁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던 만큼 이번 비리사건을 보는 세간의 눈초리는 싸늘하기만 하다.
농협 비리의 화려한 전적
농협 수뇌부의 비리가 드러남 따라 농협의 개혁도 빛이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농협은 이미 과거에도 비리로 악명을 두루 떨친 바 있다. 일반 직원뿐만 아니라 농협의 역대 회장들이 모두 법정에 섰던 것이 단적인 사례다. 농협은 한호선 초대 농협 회장을 비롯해 원철희 2대 회장, 정대근 3대 회장 등이 횡령과 공금유용 등의 비리 혐의로 사법처리 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해 말 선출된 최원병 4대 회장이 누누이 농협 개혁을 강조해 온 것도 이런 맥락이다. 실제 최 회장은 농협의 내부개혁을 우선과제로 삼고, 지난 3월 인사청탁 직원에 대해 경고장을 발송한 데 이어 NH투자증권 대표이사 등 자회사 임원 공모제 실시 등의 인사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그런 개혁이 얼마나 실효성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남씨는 최근 최 회장이 인적쇄신을 위해 임원진 일괄사표를 받기로 한 후에도 사표제출 대상에서 제외됐다. 축산경제 대표 추천권이 축산관련 단체에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내부에서는 남씨의 전횡하는 비리의 ‘냄새’도 맡지 못한 셈이다.
실제 농협사료 대표이사를 지낸 남 씨의 비리는 광범위하게 걸쳐있다.

그밖에도 남씨는 농협중앙회 축산경제대표 이사로 재직 중이던 지난 1월 농협사료 D공장장 전씨로부터 2급 승진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특히 우수 축산농가에 사은품으로 지급토록 배정된 예산을 전용, 농협사료 인사·감독권한이 있는 전 농협중앙회 간부 김씨 등에게 한약 1세트(400만원 상당) 등을 제공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업계에서는 금번 농협의 비리사건이 농협 내부의 구조적 비리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라는 평가를 내린다.
농협은 현재 신용사업, 농업경제, 축산경제, 교육지원 등 4개로 분리된 사업부문을 가지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축산경제의 대표를 맡은 남씨의 농협 내부 위상도 막강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남씨의 비리는 전문경영인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범주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지방 조합의 한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비리를 저질러 온 인사가 대표로 앉는 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내부에서 이를 적발하지 못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결국 인선에 있어서도 비리가 비리를 덮는 현상이 횡행하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릴 높였다.
내부개혁 이뤄질까
농협 관계자는 남씨의 비리에 대해 “회사 전반의 문제가 아닌 일개 개인의 비리로 보고 있다”고 일축했다. 뇌물을 받은 고위 임원도 대부분 퇴직한 탓에 별 달리 조치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투다. 이 관계자는 “재판 결과가 나오면 이에 대한 인사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지만 현재로서 취할 수 있는 별다른 조치는 없다”고 밝혔다.
농협은 현재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현재 농협은 쇄신을 위해 대대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임원인사도 대거 물갈이 중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도 결국 구조적인 문제가 비리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농협 개혁이 정말 ‘개혁’이 될 수 있을지 시선이 모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