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 피격 사건’을 두고 정가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의 물밑조율이 있었을 수 있다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신북풍 시나리오’다. 지지율 하락 등으로 고심하고 있는 이 대통령이 금강산과 독도로 국민들의 ‘애국심’을 지지율 상승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라 밖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고가 일어난 지역이 평소에도 관광객이 많은 곳이고 초병도 관광객임을 충분히 식별할 수 있었다. (초병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상급부대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군사전문가의 발언은 이 사건이 “초병의 단순한 실수나 우발적인 사고나 아닌 의도된 목적에서 저질러진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사건에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선 사태의 진위여부와 문제해결을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북과 대화할 수 있는 ‘대북라인’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꽉 막힌 대북 대화창구
전대 정부들은 탄탄한 대북라인을 근거로 북한과 대화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는 박재규·홍순영·정동영·이종석·이재정·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이종찬·신건 전 국가정보원장, 황원탁, 임성준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김보현·서훈 전 국정원 3차장 등 대북외교안보라인이 형성돼 있었으며 박정희 대통령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노태우 대통령 때 박철언씨,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씨, 노무현 정부 때 안희정씨가 밀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대북라인은 꽉 막혀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 기간 중 이 대통령의 비선라인은 잠깐씩 언급됐다. 지난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한 ‘북풍’이 12월 대선의 주요 변수로 부각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이 대통령의 ‘대북라인’이 구축됐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실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의 경선캠프에서 조직본부장을 맡았던 정병국 의원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한측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접촉 상대를 밝히진 않았으나 대남전략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 인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이 후보의 주요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과 당의 신대북정책에 대해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핵·개방·3000’은 북한이 핵 폐기를 결심할 경우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경제·교육 사업 등을 벌여 10년 후 북한 주민 1인당 소득 3000달러 경제 체제가 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북접촉은 그 해 4월27일 당시 당 평화본부장으로 있던 박계동 의원이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초청으로 나흘간 방북했을 때 1차로 이뤄졌으나 같은 해 6월 평양에서 열린 6·15 남북공동선언 7주년 행사에서 북측이 박 의원의 주석단 참석 불허 문제로 논란을 빚으면서 접촉 채널이 정 의원에게로 넘어간 것이라는 뒷말도 흘러나왔다.
금강산 피격 사건…남북관계 ‘꽁꽁’ 살얼음판 걷는다!
당·정·청 ‘대북라인’ 전무 “전화 안 받는데 어쩌라고”
한나라당은 정 의원과 북한 인사와의 회동에 대해 “정 의원 본인의 개별적 접촉”이라고 일축했다. 정 의원도 “‘6·15 공동선언 발표 5돌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민간대표단 자격으로 6월 방북했을 때 문화재 교류 방안이 화제가 됐고 후속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당시 만난 북측 인사를 중국에서 다시 접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한나라당이 꾸준히 독자적인 대북 채널을 구축 시도를 해왔던 점에 주목, ‘대북라인이 형성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은 이 후보가 경선 당시 TV 합동토론회에서 대북정책에 관한 질문을 받고 “북한에서 비핵·개방·3000구상에 관심을 갖고 비공식적으로 자세한 자료를 보내달라고 했다”고 말해 대북채널의 존재를 암시했던 점에도 주목했다.
이 후보 대북정책의 핵심 브레인도 “대북 접촉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 후보의 대북 정책 메시지를 (북측에) 보냈다고 말할 수는 있다”며 “이 후보가 서울시장 때 인도적 대북 지원사업을 했기 때문에 약간의 대북 라인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 “핫라인 없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대북라인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강산 피격 사건’에서는 어떤 핫라인도 가동되지 않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홍양호 통일부 차관은 피격사건 경위를 설명하며 “북측이 남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 특별한 (대화) 채널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대로 지난 3월 김태영 합참의장의 ‘선제타격’ 발언 이후 남북 당국간 공식 대화는 끊어졌다. 피격사건 이후에도 우리 정부는 북측에 전화통지문 접수를 요구하고 있지만 북측은 입을 닫고 있다.
박희태 대표도 “북으로 가는 핫라인이 전부 다 불통이다. 지금 현재로선 판문점을 통한 연락을 북측이 받지 않고 있다”며 “현대아산 통해서 북에 요구를 전달하는 비공식적인 접촉 외에 이 사건에 관한 다른 핫라인은 없다”고 말했다.
북에선 친남인사, 남에선 친북인사 ‘물갈이’ 타격 극심
국민·참여정부 부정에 남북관계 후순위 밀린 게 근원
공식 채널 뿐 아니라 비선 채널 역시 단절됐다. 우리 정부와 북한의 비공식 핫라인은 주로 국정원과 통일전선부가 담당해 왔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6·15 정상회담과 2007년 노무현·김정일 10·4 정상회담 모두 두 기관이 비공개 접촉을 통해 성사시킨 ‘작품’이다.
그러나 북한과 남한 모두 대남·대북 라인을 대폭 교체, 복구하지 못하고 있다. 북측은 지난해 남측 대선 과정을 정확히 분석·예측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대남 라인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했다. 대남전략을 총괄하는 통일전선부와 아태평화위원회, 민족경제협력위원회, 민족화해협의회에 대한 재정비가 이뤄졌으며 통전부 간부들은 각종 비리와 사상 문제로 교체됐다.
이 대통령도 취임하자마자 ‘대북 강경모드’에 돌입, 남북관계에서 그간 국정원이 수행해온 역할을 대폭 축소키는 한편 대대적인 개혁 작업으로 국정원 내 대북활동을 해 온 인사들을 내몰았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간 두 차례 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조율해낸 서훈 전 국정원 3차장이 경질된 후 비선라인의 단절은 더욱 심해졌다.
대신 이 대통령은 1990년대까지 중국 선양(瀋陽)과 단둥(丹東) 등에서 북한 정보 수집 활동을 했던 휴민트(대인 정보) 수집 라인을 부활시켰다. 이로 인해 그간 ‘김성호 국정원 체제’에서는 남북관계나 물밑대화 채널보다는 대북 정보 수집·분석에 치중해왔다. 최근 들어서야 비선 라인 복원 작업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나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과 함께 대북통로 역할을 했던 통일부의 규모도 대폭 축소됐다. 남북관계가 한·미 동맹의 하위개념으로 설정되면서 대북정책의 중심이 외교부로 대거 이전됐으며 대북정보분석도 국가정보원 담당하게 되며 위상이 급격히 약화됐다. 통일부는 순수 대북교섭만을 맡게 됐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아 대북정책 등을 총괄했던 통일부 장관도 통일부와 NSC의 축소에 따라 존재감이 약해졌다.
대화 채널 ‘뚫어라’
한나라당에서도 대북정책을 전담하다시피 했던 공안검사 출신인 정형근 최고위원을 대신해 대북정책을 담당할 대북통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최근 들어 ‘대북 브레인’으로 군 출신의 황진하 의원을 비롯한 새 남북문제 전문가군이 떠오르고 있다. 황 의원은 수도방위사 정보처장, 합참 작전본부 C41부장, 주한미대사관 국방무관, 유엔키프로스평화유지군 사령관을 지낸 안보 분야의 전문가로 국방, 외교, 통일문제를 다루는 한나라당 제2정조위원장으로 발탁돼 김성회(국방), 외교·안보 전문가인 정옥임(외교), 당 내 ‘중국통’인 구상찬(통일)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의 대북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야권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이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며 “지난 10년을 부정하지 말고 바꿔야 한다. 우선 현실적으로 정세현 민화협 의장(전 통일부 장관)을 쫓아내려고 하지 않나. 그것은 한심한 것”이라며 “정세현, 임동원(전 국가정보원장) 씨 등 지난 정부에서 일을 했더라도 꼭 필요한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은 실용이 아니다. 그들의 장점을 활용하는 것이 실용”이라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