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만·부실경영에 도덕적 해이도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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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무엇이 문제인가] 유사업무·중복투자도 곳곳

공기업은 과거 민간 자본시장이 미약하던 시기,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 체제에서 국민경제에 많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경제 체제의 성숙과 함께 공공사업 부문에 대한 기능 재조정의 여건이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은 지속적으로 비대해지고 방만해지면서 국가경제의 효율적 작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재 예산규모로 국내총생산(GDP)의 33.6%를 차지하고 있는 공공부문에 대한 개혁 없이 대한민국이 선진화의 단계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특히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에서 보듯이, 많은 공공기관이 경영실적과 상관없이 고액연봉과 성과금을 보장하고, 낮은 생산성에 비례해 쌓여가는 적자를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메워나가는 비정상적 운영으로 ‘신이 내린 직장’이란 국민적 질타를 받고 있다.

■ 공공기관 부실·방만경영 실태

2008년 1월 말 현재 공공기관운영법상 공공기관 수는 공기업 24개를 포함한 305개. 지난 5년간 45개 기관이 신설되면서 88조2000억원의 예산이 늘어 현재 공공기관 예산 총액은 338조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GDP의 33.6%에 해당하는 규모다.

공공기관 전체 임직원 수 역시 2003년 19만3000명에서 2007년 25만9000명으로 6만6000여 명이 늘었다. 2003년 245조원이던 공공기관 전체 부채액은 2007년 276조원으로 31조원 늘어난 반면, 당기순이익은 31조1000억원에서 17조4000억원으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주택공사의 경우 2002년 173%에서 2007년 357%로, 토지공사의 경우 316%에서 429%로 부채비율이 증가했다.

실제 지난 3월 조세연구원 조사결과에 따르면, 가스공사·관광공사·산은·코트라 등 대형 35개 공공기관의 경우 2002~2007년 1인당 부가가치는 연평균 1.8% 증가한 반면, 1인당 인건비는 6.6%나 늘었다. 노동생산성보다 인건비 증가율이 더 높은 불합리한 구조다.

■ 공공기관 도덕적 해이 수준 ‘심각’

이렇게 빚은 늘고 이익은 줄었는데도 공공기관의 월급과 수당, 출장비, 성과급, 인원, 휴가 등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공기업 운영현황 자료에 따르면, 이들 기관의 직원 평균 연봉은 5340만원에 이른다.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 임금 3220만원보다 66%나 많았고, 삼성전자의 평균연봉 6021만원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기관도 90곳을 넘어섰다. 기관장 평균 연봉은 1억54만원에 육박한다.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란 말이 지나치지 않은 수준이다.

공공기관의 집단 이기주의와 도덕적 해이 문제는 사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감사원이 발표한 공공기관 경영개선 실태 1단계 감사결과는 ‘비리 복마전’을 방불케 한다.

신용보증기금은 특정 직원을 채용하려고 채용서류를 조작했고, 한국전력공사는 가족수당과 시간외 수당까지 기본급으로 바꿔 직원 인건비를 늘렸다.

한국토지공사는 매년 고객접대비 명목으로 판매촉진비 예산을 편성, 지난 4년간 89억원을 직원들에게 부당 지급해왔으며, 한국가스공사는 우리사주제도를 실시하면서 직원들의 주식 구입 자금과 주가하락에 따른 손실보전금까지 사내근로복지기금에서 지원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공항시설에 대한 전기 등을 싼값에 공급받기 위해 인천공항에너지(주)를 설립했으나 오히려 한전 전기요금보다 44.94원 비싼 요금으로 전기를 공급 받아 7년째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유사업무·중복투자…예산 낭비, 업무 비효율 발생

동일한 산업분야에 비슷한 성격의 공공기관이 여럿 존재하는 것도 개선이 시급한 사항이다.

예를 들어 IT·켄턴츠·방송·영상산업 지원 기능의 경우 지식경제부 산하에 정보통신연구진흥원·소프트웨어진흥원·전자거래진흥원·정보통신국제협력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산업진흥원·컨텐츠진흥원·방송영상산업진흥원·영화진흥위원회가 산재해 있어 중복·과잉지원 문제가 심각하다. 11일 1단계 선진화 대상으로 선정된 주택공사와 토지공사의 경우만 해도 ‘택지개발 업무’ 중복 문제가 줄곧 지적돼 왔다.

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에 정부 예산이 중복·과잉 지원되고, 이 과정에서 기관 간 갈등이 촉발되기도 하는 등 비효율이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 선진화는 바로 이런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비슷한 성격의 기관끼리 통폐합, 관리조직이나 비핵심사업은 슬림화하고 고유 목적사업에는 기능·인력 재배치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현재 4개 부처 11개 기관에 분산돼 있는 IT·콘텐츠 진흥기관들은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와 예산 절감 효과를 노려볼만하다.

■ 공공기관 독점체제, 민간 경제 활성화에 걸림돌

일부 산업분야에서 독점체제를 구가하고 있는 공기업 때문에 시장질서가 교란되고 해당분야 민간 영역을 위축시키는 경우도 많다.

주택공사와 기업은행이 대표적인 사례다. 주택공사는 유수의 민간 건설사들이 일어난 지금까지도 일반주택의 분양사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기업은행의 경우 애초 건립 취지와 달리 가계대출 규모를 점점 확대해 빈축을 사고 있다.

증권예탁결제원은 증권시장에서 일어나는 매매 거래에 대한 결제업무와 투자자들이 사들이 주식과 채권을 보관해주는 유가증권 실물 예탁업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다. 증권예탁원은 투자자들이 주식을 거래할 때마다 내는 수수료와 증권 예탁 수수료 등으로 지난해 1479억원을 벌었다. 그냥 앉아서 수수료만 챙겨서 번 돈이다. 이렇게 번 돈 가운데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기타 경비로 쓰고도 남은 영업이익이 651억원이나 됐다.

정부로부터 업무를 위임받아 경쟁자 없이 손쉽게 돈벌이를 하는 데서 발생하는 폐단이다.

■ 공공기관 선진화, 경제 선진화 위한 핵심 선결 과제

김현숙 숭실대 교수는 지난해 한국공기업학회에서 포스코, KT, 두산중공업, KT&G, 종합기술금융(KTB), 국정교과서, 대한송유관공사 등 7개 민영화 기업의 성과와 관련, “소비자 후생이나 생산자 이윤에서 공기업 때보다 크게 향상됐다”고 분석한 바 있다. 같은 해 한국 조세연구원의 ‘공기업 민영화 성과 분석’ 보고서도 민영화 이후 해당기업들이 원가 절감과 내부 효율성 향상으로 큰 폭의 경영성과 개선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민영화 기업들이 시장 경쟁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경영효율성을 높여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 민영화 이후 포스코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고, 두산중공업은 담수화사업 부문 세계 1위로 도약했다.

공기업 선진화는 경제 선진화의 핵심 선결과제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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