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판승으로 승리를 거둔 유도의 최민호,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보인 명사수 진종오, 한국 수영 역사상 첫 금메달을 목에건 ‘마린보이’ 박태환 등 태극전사들이 베이징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환호했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는 그들보다 더 기뻐하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코칭스태프다.
숨은 일꾼 ‘코칭스태프’

이 중 한국 수영사를 다시 쓴 박태환과 그의 ‘오랜 스승’인 노민상 국가대표팀 감독의 인연을 각별하다. 노 감독은 1996년 7살의 박태환을 만나 그의 성장을 함께 해왔다.
“수영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그마한 꼬마가 음료수 캔을 두 손에 꼭 쥐고 내 앞으로 오는 게 아니겠어요. ‘너 누구냐’라고 물었더니 ‘수영하러 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물 속에 집어넣어 보니 곧잘 수영을 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의 박태환이 될 줄 몰랐습니다.”
노 감독은 박태환과의 만남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12년 후 그 꼬마는 수영영웅이 됐고 스포츠센터 강사였던 노 감독은 국가대표 감독이 됐다.
노 감독의 지도 아래 박태환은 2006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에서 200m, 400m, 1500m에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이후 박태환은 이른바 ‘박태환 전담팀’에서 개인훈련을 받기로 하고 노 감독을 떠났지만 1년 2개월 만인 올해 2월 재회, 우리나라에 첫 수영 금메달을 안겨줬다.
화려한 메달의 영광 뒤 감독과 코치 등 코칭스태프 조력 재조명
몸 체크는 물론 경기 전략과 훈련방식까지 함께 뛰는 ‘숨은 선수’
이러한 영광은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수영선수의 기초 지구력을 결정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1학년 시기 노 감독은 박태환의 지구력을 만들어냈다. 소년체전부터 전국체전까지 함께 한 세월이 12년, 노 감독이 박태환을 가르치며 꼼꼼치 적어놓은 훈련일지만 수천장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라이벌의 수영 장면을 영상으로 보며 레이스 전략을 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 감독은 “수영의 미래를 위해 기록을 하고 있다. 박태환의 훈련일지는 향후 수영 꿈나무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태환의 훈련에 운동생리학을 접목시켜 ‘24주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짜낸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송홍선 박사도 박태환을 돕는 숨는 힘이다. 그는 “수영은 굉장히 과학화되지 않으면 안되는 종목이다. 우리 민족은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다. 그 감각을 살릴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생리학적 측정과 평가는 선수들의 자신감, 성취동기 부여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스피드건을 이용한 좌우 균형 측정은 영법 교정과 주기적인 젖산 테스트와 스텝 테스트를 실시하며 훈련 과정의 성과를 체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은 기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선수를 가르치는 코칭스태프를 돕는 일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코디네이터’라 규정한다.
물리치료사인 이문삼·엄태현씨, 김보상 웨이트트레이너 등도 숨은 공로자들이다.
말없는 응원 ‘훈련파트너’
훈련파트너는 선수들의 그늘에 가려진 대표적인 이들이다. 그러나 이번 왕기춘 선수의 메달 획득으로 훈련파트너가 주목받고 있다. 그가 훈련파트너였기 때문이다.
왕기춘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 당시 이원희의 훈련파트너였다. 그러나 이원희에게 3개월간 가르침을 받은 후 기량이 급성장, 이원희가 발목 부상으로 1년간 공백기를 가진 사이 세계 선수권대회에 출전, 우승을 거머쥐며 세계 최강자로 떠올랐다.
상승세를 탄 그는 올해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 국내선발전에서 이원희를 무너뜨리며 올림픽 출전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유도 남자 73㎏급에 출전,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와 결승전에서 경기 시작 13초 만에 발목잡아메치기 한판으로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선수들 사이 ‘숨은 힘’ 훈련 파트너, “내 몫까지 더 높이 날아라”
CEO 출신 협회장들,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맡겨줘”
왕기춘 선수의 은메달에는 숨은 이야기가 더 있다. 그가 국가대표 2년 만에 올림픽 결승까지 올라간 데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유도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원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왕기춘에게 패한 후 남모르게 틈틈이 왕기춘을 도왔다. 안병근 유도국가대표팀 감독, 체육과학연구원 유도 담당 김영수 박사, 왕기춘과 자주 자리를 같이하며 왕기춘의 플레이, 체급 강자들의 경기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를 보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김 박사는 “왕기춘이 국제대회 경력이 짧은 만큼 왕기춘이 싸워보지 못한 선수들에 대한 정보를 이원희가 많이 전달해줬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KRA 소속 선수로 태릉선수촌을 찾아 왕기춘과의 스파링을 자처, 매트 위에서 몸으로 가르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원희는 “빗당겨치기 등 기춘이가 부족한 기술을 가르쳐줬다”면서 “내 말을 잘 소화해준 기춘이가 고맙다”고 말했다.
이원희는 또 왕기춘 선수가 베이징에 있을 때도 “낮잠 자지 말고 저녁에 푹 자라, 경기 막판에는 절대 무리하지 말고 리듬을 타며 공격해라, 좋은 생각을 많이 하면서 긴장을 풀어라”라고 조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기춘이는 내가 도하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 내 훈련 파트너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다”면서 “이번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춘이를 도와줬다는 게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물심양면 재계 서포터즈
선수 곁에서 돕는 것만큼 그가 맘 편히 훈련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른바 ‘물심양면 서포터즈’로 꼽힐만한 이들은 누가 있을까. 각 협회 회장을 맡아 후원 하고 있는 기업 CEO들과 ‘코리아 하우스’ 자원봉사자들, 베이징올림픽 한국 상황실 직원들이 그들이다.

정 회장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개막식 전날 정 사장과 양궁남녀 국가대표 선수와 대표팀 감독, 코치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사기를 북돋웠다. 정 사장은 중국의 일방적인 응원이 예상되자 9000여 명에 이르는 양궁응원단을 결성해 현장응원에 나서기도 했다. 현대·기아차그룹도 지금까지 양궁 발전을 위해 200억원을 지원해오고 있다.
비인기 종목도 재계 총수 및 CEO들의 지원사격을 받고 있다. 비록 인기가 적고 브랜드 홍보효과도 떨어지지만 이들은 협회 수장을 맡아 묵묵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핸드볼 뒤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있다. 핸드볼 종목 후원사인 SK는 대표팀에 총 6억원의 격려금을 전달했다. 금메달 2억원 등 총 3억 5000만원의 별도 포상금도 내걸었다. 조정남 SK텔레콤 고문은 2003년부터 대한펜싱협회 회장을 맡아 펜싱을 지원하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탁구협회장, 김정 한화그룹 고문은 대한사격연맹회장을 맡아 지원하고 있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대한레슬링협회장)은 ‘레슬링 마니아’라는 별칭처럼 레슬링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강영중 대교그룹 회장(배한국배드민턴협회장)의 배드민턴 사랑도 유명하다.
베이징 현지와 한국에 각각 설치된 ‘베이징올림픽 상황실’은 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 코칭스태프와 직접 얼굴을 맞대면서 지원 활동을 펴고 있으며 베이징에서 한국 선수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로 대한체육회가 마련한 ‘코리아 하우스’에서는 중국 현지 유학생을 비롯해 미국, 캐나다,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젊은이들로 이뤄진 ‘자원봉사단’이 땀을 흘리고 있다.
이곳은 올림픽 기간 동안 입상 선수 및 임원의 공식 기자회견장으로 활용되는 곳으로 자원봉사단은 이곳을 찾은 기자들을 도우며 우리 선수들의 금빛 낭보와 뜨거운 열정을 전달하는데 한 몫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