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취임이 오는 10월 5주년을 맞이한다. 재계의 여걸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현 회장은 2003년 10월 그의 남편인 고(故)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전업주부에서 경영자로 변신한 경영자다. 현 회장은 취임 이후 5년 동안 어떤 성적을 기록했을까. 사실 그간 현대그룹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정 회장의 타계 이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최근에는 대북사업으로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현정은 체제 5년을 <시사신문>이 들여다봤다.
빈약한 리더십에 끝나지 않은 경영권 불씨 이겨낼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2003년 10월 취임한 뒤 올해로 5주년을 앞두고 있다. 우여곡절 많은 취임이었다. 2003년 현대그룹을 이끌던 고(故) 정몽헌 회장이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자살했고, 그의 부인인 현 회장이 공석이 된 회장자리에 올랐다. 취임 초 남편을 대신해 올라선 현 회장을 향한 우려는 적지 않았다. 경영을 잘 모르는 전업주부가 과연 경영을 잘 할 수 있겠냐는 평가에서다. 이런 우려 속에서 5년이 흘러갔다. 쉽지 않은 기간이었다. 취임 당시 계열사 12개 계열사 중 네 곳을 매각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수차례 경영권 분쟁으로 우여곡절을 거치기도 했다.
현대그룹은 현재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현 회장은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여타 재벌 총수들과는 달리 전문경영인에게 대부분의 경영을 맡기되 주요 안건에 한해서만 개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 회장의 체제는 실적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영실적은 합격점
현 회장 취임 이후 현대그룹의 성장과 안정화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다. 현대그룹 9개 계열사의 자산 총규모는 2003년 10조1600억원에서 계열사를 매각하며 2004년 6조5000억원으로 줄었다가 2007년 말 8조7600억원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은 5조4000억원에서 9조5297억원으로 증가했다. 5년 사이에 매출 75% 증가, 영업이익 55% 증가로 연속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특히 현대그룹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대상선은 주가가 같은 기간 동안 10배 가깝게 올라갔다. 실적도 2003년 매출 3조9440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5조1180억원까지 성장했다. 현 회장 취임 당시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대외신인도 악화에 재무적 상황 악화 등으로 주요 계열사를 매각했던 것에 비하면 안정적인 성과다.
이런 성장기세에 힘입어 올해 현대그룹 매출은 12조3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세가 이어져 목표를 이룰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금강산 관광 10주년을 맞은 현대아산이 역대 최대 적자위기에 놓이게 된 탓이다. 금강산 피격사건이 바로 그 이유. 금강산 관광객이 관광도중 북한 측 군인에게 사망한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면 중단돼 현대아산에 적잖은 손실이 예상되고 있다.
현대아산의 매출이 연간 3000억원으로 현대그룹 전체 매출의 5%도 되지 않지만 국내 대북사업의 선두였다는 점에서 이번 건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지난해 대북 핵위기 등의 위기에서 대북사업을 놓지 않았던 현 회장인 만큼 충격도 적지 않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목소리다. 일례로 현 회장은 8월4일 정 회장의 5주기 추모행사에서 금강산 피격사건에 대한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아예 참석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현 회장이 부담감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돌았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입장표명이 아닌 단순히 질문에 답할 것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면서 “사실 지금 상황에서 현 회장이 할 수 있는 말이 없잖느냐”고 밝혔다.
이런 현 회장의 태도는 그의 리더십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지난 5년간 ‘온화한 카리스마’ ‘감성 경영’ 등으로 일컬어지는 현 회장의 성격은 딱딱하고 냉정한 재계에서도 돋보이는 존재였다. 정 회장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작곡가 최명훈씨가 발표한 ‘나래’를 자주 듣는가 하면 “정 회장이 그립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여성스러운 면 때문인지 잡음도 적지 않았다.
재계 일각에서 현 회장의 리더십은 아직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정황은 계열사 현대증권에서도 절실히 드러난다. 이미 현대증권 노조는 현 회장을 향해 수차례 고소·고발 한 상황이다.
리더십은 아직 미흡(?)
지난해 11월에는 현 회장에게 고문료를 지급하기로 의결한 이사회에 소송을 걸었고 12월에는 현 회장을 비롯한 측근을 주가조작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 회장 때부터 함께했던 골수 현대맨과 결별했다는 점도 이런 현 회장의 리더십에 상처를 주는 대목이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현대상선의 노정익 사장을 비롯해 현대증권의 김지완 사장, 전인백 현대U&I 사장 등이 사퇴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경영자의 교체는 어느 기업에나 있는 것”이라며 “일부 임원은 갈등이 아니라 스스로 퇴직하고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부심 높은 ‘현대맨’이라는 간판을 중역들이 스스로 포기했느냐는 대목에서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재계의 평가다.
어쨌거나 현 회장이 지나온 5년은 막대한 실적을 통해 경영자라는 안착을 이루기도 했고 또 적잖은 과제도 떠안았다. 특히 취임 이후 겪은 ‘시숙의 난’ ‘시동생의 난’은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현대상선의 지분 7.22%를 가진 현대건설의 매물이 여전히 남아있는 탓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을 통솔하는 리더십을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도 재계의 관심사다.
▶ 현대아산, 금강산 총격사건 은폐 의혹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 발생 당시 현대아산이 책임을 피하려고 직원들에게 진실 은폐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8월12일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경계펜스 관리 부실 논란과 관련해 금강산사업소 총소장은 추후 책임 문제로 비화할 것을 우려해 사건보고를 받은 직후 출입금지 표지가 부착된 로프를 모래언덕 앞에 설치토록 했다. 심지어 부하 직원 2명에게 ‘경찰 수사시 펜스가 해안선까지 설치돼 있고, 출입금지 표지판도 부착돼 있다고 진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현대아산 측에서는 “현장소장 독단이지 결코 회사의 지시사항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받아드려질지는 미지수다. 이미 현대아산의 관광객이 사망한데 이어, 거짓 증언까지 일삼은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