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몸집 불리기’ 부채비율 높여 ‘자금 위기’ 초래
IMF시절 문어발 기업 줄도산의 추억, ‘몸 관리’ 필요

최근 M&A(인수합병)로 몸집을 불린 몇몇 기업들이 소화불량으로 불편한 기색이다. 사활을 건 싸움 끝에 M&A는 성공했지만 너무 많이 먹은 탓일까.
일부는 소화 불량 증세를 보이고 있고 일부는 소화 불량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최근 M&A로 급성장한 기업 안팎에 ‘자금 위기설’이 끊이지 않고 나도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 M&A로 급성장한 기업들은 연일 주가하락에 곤혹을 앓는 상황이다. <시사신문>이 기업들의 M&A 그후 모습을 살펴봤다.
최근 M&A로 급성장한 기업들이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대형 호재로 꼽혀왔던 기업 M&A 테마가 악재로 바뀌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굵직한 M&A에 나서거나 M&A를 통해 성장해왔던 기업들의 주가는 현재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가 관계자는 “무리한 M&A로 몸집을 부풀린 기업의 부채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자금 유동성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른바 M&A 후유증이라는 설명이다.
끊이지 않는 ‘자금 위기설’
최근 잇따른 M&A로 인한 후유증으로 속 앓이를 하는 기업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대한전선그룹, 유진그룹 등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최근 대형 M&A를 성사시키며 재계에 이름을 떨쳤던 기업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6년 채권단으로부터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인수하며 M&A시장의 대물을 낚았다. 이어 지난 1월에는 법정관리 중이던 국내 물류업계 1위 대한통운도 4조1000억원에 인수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잇따른 대형 M&A 성사로 재계서열이 11위에서 7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2005년 자산총액은 11조4130억원이었는데 반해 올해 3월 자산총액은 22조8730억원이었다.
하지만 이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성장에 ‘자금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투자자들의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내건 ‘풋백옵션’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풋백옵션이란 기업을 인수한 후 기준 이상의 주가하락이 발행했을 경우 매각자로부터 이 손실분에 해당하는 자금을 보전 받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한 위기감이 더욱 뜨거워진 것은 최근 금호타이어의 2대주주인 쿠퍼타이어가 지분을 매각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반의 주가가 하락했을 때였다. 풋백옵션이 발동될 가능성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7월31일 재빠르게 IR설명회를 열어 이같은 ‘유동성 위기’를 루머일 뿐이라고 적극 해명했지만 현재까지도 증권가의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16조3000억원에서 지난 7월 말 12조1000억원으로 약 4조억원이 줄어들고, 부채비율은 올 상반기에 300%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성장 괜찮나?
대한전선도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비슷한 고충을 안고 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M&A에 주력한 대한전선은 지난해 상반기 5434억5900만 원이던 유동부채가 올해 1조4981억 원으로 1년 동안 약 175% 늘었다. 부채비율도 84.2%에서 257%로 3배나 껑충 뛰었다.
그동안 대한전선이 외형확장을 위해 명지건설과 남광토건 인수, 세계 1위 전선업체인 프리즈미안의 지분확보 등이 원인이으로 꼽힌다. 재무개선을 위해 회사측 은 최근 5500억원 규모의 안양 공장 부지 일부를 매각했지만 아직도 대한전선을 향한 우려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자기보다 덩치가 큰 하이마트를 비롯해 로젠택배, 서울증권 등을 인수하며 M&A시장의 황태자로 불렸던 유진그룹의 행보도 급제동이 걸렸다. 급격한 부채부담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유진그룹은 지난 5월 3000억원 상당의 자산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또 유진기업을 중심으로 시멘트자회사인 고려시멘트 등을 합병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현금을 조달해 200%에 육박하는 부채 비율을 낮추고, 신용등급 하락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더 나아가 M&A이후 부작용에 ‘탈’이 난 기업도 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는 이랜드그룹이다. 지난 2006년 이랜드는 자기 덩치의 몇 배에 달하는 까르푸(현 홈에버)를 1조7100억원을 들여 인수하면서 대형마트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자기돈은 고작 3000억원만 들어갔고 차입인수라는 금융기법을 사용해 나머진 금액을 조달했다.
차입인수란 보통 인수대금의 10~15%의 자기자금으로 조달하고, 나머지 85~90%는 인수하고자 하는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인수하는 금융기법이다.
결과적으로 부채 1조4000억원을 떠안은 홈에버 운영기업인 이랜드리테일의 부채비율은 651%까지 치솟았고 이자는 눈덩이처럼 늘었다.
결국 유동성 부족에 시달렸던 이랜드그룹는 2년도 안돼 홈에버를 토해내며 두 손 들어 버렸다. 이랜드그룹은 지난 5월 홈에버를 삼성테스코에 2조3000억원에 팔아 원금만 건지는 수준에서 물러나 그동안 인수에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평가다.
기업 M&A 모범생
최근 끊임없이 M&A 기업들에 대한 ‘자금 위기설’ 등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스스로 페이스 조절에 들어간 그룹도 있다. 대표 케이스로 두산그룹을 들 수 있다.
두산그룹은 최근 몇 년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동명모트롤(현 두산모트롤), 밥캣 등을 잇따라 인수며 ‘M&A 시장의 강자’로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자금유동성 우려가 나왔음은 두말 할 것 없다. 그래서일까. 두산그룹은 최근 숨을 고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 8월22일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최종적으로 불참을 선언해 유동성 위기에 대한 우려를 잠재웠다.
금융전문가들은 “M&A가 기업의 성장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만큼 위험부담도 크다”며 “자칫 10년전 IMF때처럼 기업들이 재정난을 이기지 못해 줄줄이 도산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신용경색 등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만큼, 자칫 금리라도 인상되면 자금 부담이 커져 재무구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기업들 스스로가 ‘몸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