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형식’(form of language)은 ‘삶의 형식’(form of life)을 결정짓는다’는 말이 있다. 문교부 장관을 지냈던 고 이규호 장관도 가정에서 쓰는 부모의 언어 모형이 자녀들의 지능을 결정짓는다면서 자녀들 앞에서 부모의 언어 사용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있다.
물론 가정에서의 언어는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사회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 남을 배려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는 원만한 커뮤니케이션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소위 사회적 성공이란 것도 인간이 인간을 통하여 설득하고 자기가 원하고자 하는 일을 성취해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는 생각의 덩어리, 생각의 끝, 생각의 원료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 철학자 야스퍼스(Jaspers)는 “인간 존재는 언어다”라고 했고, 역시 독일 철학자인 하이데거(Heidegger)도 “실존하는 것은 언어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실체는 보이는 육체라기 보다는 평소 하고 다니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누구를 기억할 때, 다른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상대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코 모습을 기억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어떤 의미 있는 말을 했으며, 그리고 얼마나 배려하고 사랑하는 말을 했는가가 그 사람을 평가하고 기억에 남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값진 보물이기도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는 한 순간에 사람을 죽이는 파괴적인 말이 되기도 하고, 한 순간에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생산적이고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인관계에 있어서 언어를 잘 사용하는 것은 우리 삶의 전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 속담에 “말 속에는 피를 흘리지 않고서도 사람을 죽이는 칼이 숨어있다”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세 치의 혓바닥으로 다섯 자의 몸을 살리기도 한다”는 중국 속담도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는 과거 국민 소득 8천 불에서 현재 2만 불로 끌어 올릴 정도로 급속한 기술 진보가 있어 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는 노사 간의 갈등, 인간 간의 갈등, 나아가 정치인과 서민 간의 갈등, 지도자와 국민과의 언로의 소통 문제에 대해서는 좀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즉 인간 간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자연히 관심 밖의 일로 밀려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는 달리 현대 사회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사회 리더나 지도자의 언어 소통 문제에 대하여 학계는 물론 각종 언론에서도 그 중요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지금은 ‘기술 시대’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시대’라는 말까지 나온지도 오래다. 그렇다 보니 특히 지도자의 말은 늘 도마위에 오르기 십상이다.
그 중 한 예가 이 대통령이 지난 8월12일 건국60주년 국외 이북도민 초청 간담회에서 “시위한 사람들, 수입 미 쇠고기 먹을 것”이라는, 별 근거도 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은 경험이 있고, 자녀들도 미국에서 공부시키고 있다고 폄훼한 발언이다.
이는 촛불집회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6월19일 이 대통령이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뼈저린 반성"을 언급하며 대국민 사과를 했던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되었음은 물론 결국 이 대통령의 ‘사과’는 성난 민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진정성 없는 ‘쇼’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입증한 대국민 커뮤니케이션이 돼 버린 것이다.
아무튼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인간과 인간이 의미 공유를 이루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행하는 상징적이고 교호 작용적인 과정’이다. 즉 커뮤니케이션은 상호 ‘의미 공유’를 위하여 ‘말하는 사람’(sender)의 중심이 아니라 ‘듣는 사람’(receiver)의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말하는 내용’(message)이 아니라 ‘의미 중심’(meaning)으로 해야 함을 말한다.
특히 지도자는 국가적이고 정책적인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경박스럽거나 불쑥불쑥 말할 것이 아니라 먼저 국민의 입장에 서서 재삼 숙고하고 커뮤니케이션 하는 즉,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곧, 대통령의 신중하고도 무게 있는 언어는 ‘품격 있는 국민’,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어 나가는 데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