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민심’이 들고 일어났던 쇠고기 파동 후 청와대의 권력지도도 대폭 수정됐다. 그중 시선을 끄는 이 중 한명이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이다.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지난 8월17일 저녁, 서울시내 한 호텔 음식점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동관 대변인, 유재천 한국방송 이사장이 김은구 전 한국방송 이사, 박흥수 강원정보영상진흥원 이사장(전 한국방송 이사), 최동호 육아티브이 회장(전 한국방송 부사장) 등 한국방송 전·현직 임원들과 만나 2시간 동안 정연주 전 사장의 해임으로 공석이 된 한국방송 새 사장 인선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이미경 사무총장은 대통령실장이 참여에 대해 “그것이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 KBS 사장을 쫓아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앉혀서 언론을 통제하려고 한다는 국민들과 민주당의 말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으로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만큼 그는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취임 후 “청와대 비서진은 대통령의 그림자이자 분신”이라며 “대통령실장과 수석이 전면에 나서서는 안된다”고 말한 그는 “비서진은 뒤에서 소리 없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내각을 뒷바라지하는 데 주력해야한다”며 ‘그림자 실장’을 자처했었다.
‘군기반장’이었던 전임 류우익 전 실장이 비서실 권력의 정점에서 ‘통솔권’을 쥐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액션을 취한 것. 대통령실장을 중심으로 했던 조직을 팀 단위 운영으로 바뀌었으며 대통령실장은 한 발 물러서 이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게 됐다.
정정길 청와대 대통령실장 취임 후 청와대 ‘조용한 변화’ 시작
정 맞는 ‘모난 돌’은 NO…두드러지지 않은 음지에서 ‘공’ 쌓는다
정 대통령실장의 ‘그림자 실장론’은 청와대 비서실을 바꿔 놨다. ‘2인자’라 불리는 최측근을 만들어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닌 각각의 현안에 대해 참모들의 경쟁을 유도하는 이 대통령의 방식과 찰떡궁합을 이룬 것.
청와대 비서실의 개편과 함께 정 실장은 권력의 장벽, 그 뒤로 물러서며 ‘대통령실장’에서 ‘실세’라는 이미지를 지웠다. 오히려 맹형규 정무 수석 비서관과 박형준 홍보기획관, 박재완 국정기획수석과 이동관 대변인 등의 경쟁체제가 틀을 잡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이 대통령의 ‘재신임’을 받았다 할 만한 이들이다.
‘그림자 실장론’은 대통령실장에게 몰린 권력을 분산시켰을 뿐 아니라 물론 총리실까지 바꿔 놨다. 총리실의 업무마저 대통령 비서실로 이양돼 대외업무에 치중, ‘허수아비 총리’라는 비아냥을 듣던 한승수 국무총리에게 정무에 관한 권한이 되돌아 간 것. 참여정부 ‘실세총리’만큼의 권한 강화는 아니지만 한 총리가 정치의 전면에 서서 공격과 수비를 하는 데는 적절했다는 평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대통령실장은 대통령이 가장 신임하는 이가 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도 “대통령실장이 자주 언론에 노출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 내 권력다툼은 누군가가 전체를 휘어잡으려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며 “한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주지 않는 이 대통령의 운영 스타일에 비춰봤을 때 억지로 ‘통솔’하려는 의도는 반발과 권력다툼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청와대에 대한 신뢰도를 하락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 실장은 ‘권력’에서 손을 놓았지만 ‘권력’과 멀어진 것은 아니다”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 민심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대통령실장’ 대신 국정 전면에 나선 한 총리와는 가까운 사이로 자주 정부 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나누고 있어 나서지는 않지만 국정 운영에 대한 부분에 그의 숨결이 닿아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