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정부의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규제 완화’에 반발, 연일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차라리 경기도를 없애”
정부의 지역발전 계획이 나오자 경기도는 ‘경기도 입장’ 제하의 발표문을 통해 “이제는 일자리 창출과 기업경쟁력 강화에 온 힘을 쏟을 때”라며 “정부의 시대적 사명은 수도권규제를 완화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규제 완화’ 방침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윈윈하는 전략이 아니라 모두 퇴보해 국가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지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배은망덕한 정부’, ‘권력은 잡은 자의 오만’, ‘경기도는 이제 꿈도 없고 희망도 없다’고 몰아붙였다. “규제 때문에 경기 도민들이 너무 오래 종살이를 해 이제는 체념상태”라며 “차라리 경기도를 없애라”고 말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비분강개의 처절함이 배어난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당 지도부는 “배은망덕한 정부”라고 외치는 김 지사에게 “배은망덕한 발언”이라며 공개적으로 비판 하기도 했다.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김문수의 반란’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규제 철폐’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한껏 기대를 품고 있던 김 지사가 쇠고기 파동 후 돌변한 이 대통령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는 말부터 국민 앞에 나서기 어려운 이 대통령을 대신해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자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하고 있다, 차기 대선주자로 정치적 체급을 키우기 위해 나섰다는 등의 말도 흘러나온다.
수도권 개발 제한에 “배은망덕한 정부” 연일 쓴소리
‘소신 있는 지도자’+수도권 의원 세몰이로 몰아친다
김 지사 자신은 ‘배신감’에 한표를 던졌다. 그는 경기도 광주에서 열린 수도권 규제 철폐를 위한 경기도민 결의대회에서 “말도 안 되는 촛불집회를 100일 동안 당하면서 대통령이 많이 소심해지고 용기도 잃은 것 같다. 경제를 살리라고 뽑았는데, 경제를 살리려면 수도권 규제를 푸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한데 이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대통령 당선에 경기도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이 대통령은 수도 이전에 반대한 유일한 단체장이었고 나는 그때부터 하나가 되어 밀었다”며 “촛불 이후 청와대에 아첨 논리가 슬금슬금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선 지방, 후 수도권’으로 반전돼버렸다. 주된 공약이 무엇이었냐. 규제 철폐, 비즈니스 프렌들리 아니었냐.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며 굳은 지지에도 등을 돌린 이 대통령을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그러나 김 지사의 행보는 ‘정치적 해석’이 뒤따른다. 이번 사태로 분명 이해득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우선 ‘경기도의 힘’을 얻게 됐다. 그와 껄끄러운 관계에 있던 의회는 물론 도민들도 김 지사와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는 물론 비수도권이나 중앙 정치권에 김 지사의 존재를 알리고 인지도를 높이는데도 ‘쓴소리 행보’가 주효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소신있는 정치인’으로 차기 혹은 차차기를 노려봄직한 ‘체급’을 키우게 됐다는 평이다.
국회에서도 전면에 나서서 말하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수도권 집중된 과도한 규제들에 대해 ‘이제는 풀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행복도시 등을 추진하면서 수도권에 대한 규제는 완화해야 한다”고 김 지사의 주장에 찬성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치적 해석은 말아 달라”는 김 지사측의 항변에도 “사실상 대선 혹은 2년 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예비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김 지사도 부담감이 느끼고 있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가하고 거침없는 행보를 걷고 있지만 “사실 나도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행보 뒤 만족할 만한 규제완화 성과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결국 ‘정치적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
너도나도 MB와 각 세우기
김 지사는 “대통령과 독대를 해서라도 수도권 규제완화를 계속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의 행보를 “MB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며 “그래서 쓴소리를 하는 거고, 결과적으로는 보약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다. 다만 약이 매우 써서 얼굴을 찡그리겠지만 그래도 먹어야한다. 보약인데”라고 말했다.
김 지사의 투쟁이 ‘성공’할지, ‘부담’을 줄지는 아직 불분명한 상태. 그러나 김 지사의 투쟁은 오세훈 서울시장, 이완구 충남지사, 김태호 경남지사 등 각 지자체장의 ‘쓴소리’ 행보로 이어지며 ‘여의도 정치’와 ‘지자체 정치’의 격돌로 번지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