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까지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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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잠룡구상 막전막후

▲ “지금은 잠시 미뤄두지만…”민주당 정세균 당 대표가 ‘쓴소리’ 행보로 현 정권과 각을 세우고 있다. ‘야당 수장’의 매서움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당을 살리는 데 힘을 집중하고 있지만 ‘꿈’은 미뤄뒀을 뿐이라는 그의 말에 일각에서는 ‘차기 대권’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따르면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14.0%를 보인 데 이어 13.5%(4월), 17.2%(5월), 15.5%(6월), 17.1%(7월), 16.7%(8월) 등으로 계속 10% 대에 머무르고 있는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따른 반사이익을 챙기지 못하고 있어 제1야당인 ‘민주당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야당의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세균 대표가 당 내·외 각종 현안에 대해 갖은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현 정권과 확실한 대립각을 세우며 ‘야당 수장’으로서의 기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대표가 민주당을 맡으면서 대권주자로 성장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월 출범하면서 ▲‘강부자’·‘고소영’ 내각으로 일컬어지는 인사파동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촛불집회로 촉발된 범국민적 저항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의 권력형 비리 ▲공기업과 정부산하단체의 낙하산 인사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제1야당이 무기력감에 빠지자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이 같은 위기국면을 정면 돌파하고 있다. 또한 이에 따른 보수 진영의 결집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도가 오히려 오르고 있다.

이렇게 국민들이 임시 지도부 체제에서의 민주당과 정식 지도부 체제의 민주당이 별 차이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며 이는 여전히 민주당이 정체성이 모호하고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 전세균 대표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당 내·외 현안에 대해 갖은 쓴소리를 쏟아 내며 ‘야당 수장’ 세우기에 돌입했다.

정권 콕콕 찌르는 아픈 발언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이른바 ‘9월 경제위기설’에 대해 한나라당은 “금융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며 근거없는 위기설의 유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 반면, 민주당은 “손 놓고 당할 수만은 없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등 전혀 상반된 시각을 드러내면서 뜨거운 공방을 벌였다.

이와 관련 정 대표는 지난 3일 서울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9월 위기설 때문에 국민들의 걱정이 여간 아닌 것 같다”면서 “(경제살리기 공약을 내세워 집권한) 이 정권이 경제마저 제대로 감당 못해 위기설이 왔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이어 “정부의 쇄신만이 위기설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면 외환보유고나 지난 10년의 성과로 위기설을 일거에 날릴 수 있다. 이 정권에 일대쇄신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또 종교편향으로 인한 청와대와 불교계의 갈등이 좀체 풀리지 않으면서 여야의 시선과 발길이 종교갈등 문제로 쏠리자 이명박 정부를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갔다.

정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정부의 종교편향 논란에 심히 유감”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아직도 불교계 걱정은 거두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불교계의 걱정이 어떻게 나온 것인가는 국민이 잘 안다. 원인 제공은 이 정권에 있다. 국민을 이렇게 갈등·분열로 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어 정 대표는 단식중인 조계사 총무국장 혜경스님에게 “역사가 앞으로만 가는 줄 알았는데, 이 정부 들어 거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정부에 대한 비판을 토해냈다.

지난 8일 취임인사차 국회를 찾은 김황식 감사원장에게 감사원의 ‘KBS 감사’에 대한 거침없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김 감사원장의 예방을 받고 “감사원이 과거에는 독립성, 중립성 부분에서 신뢰가 좀 있었는데 이번에 KBS를 감사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의 스탠스에서 굉장히 벗어났다는 걱정이 든다”고 지적하면서 “감사원이 정치적 상황에 동원된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에는 감사원이 정치 사안에 연루된 적이 없는데 원장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 실무진이 좀 휘둘린 게 아닌가 싶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당 내·외 현안에 갖은 쓴소리, ‘독설’로 ‘야당 수장’ 기 세우기
386 측근 그룹 ‘뉴민주당’ 중심세력 부상…‘정세균 체제’ 강화

또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육군 1사단을 찾아 근무 중인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도 현 정부의 원활하지 못한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지적하면서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이 자리에서 정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과 화해협력정책을 통해 남북관계의 긴장을 해소하고, 핵문제를 해소하고 경제문제뿐 아니라 남북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했고, 실질적인 진전도 있었지만 새 정부 들어서 모든 것이 지금 멈춰있는 상태”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는 대북강경정책을 화해협력정책으로 전환해 남북간 경제협력과 교류, 평화, 번영의 시대가 열릴 수 있어야 한다”며 대북정책의 수정을 요구했다.

지난 10일에는 당사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전날 TV로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와 관련, “경제 정책의 기조를 확실히 바꾸고 경제팀도 새로운 기조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어떻게 국정을 쇄신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지 답이 있어야 했는데 없었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타협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측근은 ‘뉴민주당’ 파워맨

7·6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권력지형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힘의 질서’에도 새판짜기가 예상됐던 민주당. 현재 정세균 대표를 정점으로 한 신주류가 ‘뉴민주당’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면서 정 대표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7월8일 단행된 당직 개편은 신주류의 전면 등장을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4선으로 이미경 사무총장, 3선의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정세균 체제’의 개혁과 대안 제시를 주도할 쌍두마차로 꼽힌다. 여기에 원혜영 원내대표 역시 이들과 성향적으로 통하는 ‘신주류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다.

▲ ‘파이팅’민주당이 주먹을 쥐고 ‘정권 견제’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여기에 같은 재선의 최재성 대변인과 강기정 대표 비서실장, 당내 한반도전략연구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알려진 3선의 김부겸 의원 등 386그룹들도 뉴민주당의 주축으로 등장할 태세다. 당 내부에서는 정 대표를 정점으로 이미경 총장 등의 다선그룹에 386그룹이 손을 잡는 ‘연합군’이 향후 당 중심을 이룰 것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도대체 386의 정치적 지향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으며 부정적 평가를 냈다.

그럼에도 현실적 진보, 실용적 진보를 추구하는 듯 보이는 386정치인들에 대한 기대는 계속된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내내 실망했지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고 정치권의 변화를 주도할 세력을 형성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도 적지 않다.

“이제 좀 움직일 준비 됐다”

4·9 총선 등을 거치면서 정치무대 전면에서 사라졌던 민주당의 ‘노장(老將)’들이 당 자문 역을 맡아 여의도로 ‘컴백’했다.

민주당은 지난 8일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손학규·박상천·오충일·정대철·조세형 전 대표, 한명숙 전 총리, 김근태·정동영·문희상·신기남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당의 원로·중진 인사 12명을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

이들은 대부분 18대 총선 때 불출마하거나 낙선해 여의도 정치무대에서 밀려난 중진·원로 인사들이다. 당에서는 이들 상임고문단이 당의 중심을 잡고 제1 야당상을 구축하는 데 일정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미 일부 중진·원로인사들은 일찌감치 정례적 모임을 갖고 보이지 않게 자문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실제로 원구성 협상 등 주요 현안이 생길 때 이들의 조언이 주효했다는 후문이다.

정 대표는 “이제 좀 당이 움직일 준비가 됐다”며 “지도부가 젊어져서 경륜이 부족한 측면도 있는 만큼 당이 활력을 찾고 정기국회를 통해 변모일신해 가는 과정에서 많은 지도와 가르침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대통합파’ 모임 중진·원로 인사 조언 “이제 움직일 준비됐다”
대권 행보에는 고개 흔들지만 미뤄뒀어도 ‘잠룡구상’은 여전

정 대표의 행보에 ‘대권’을 염두에 둔 것이냐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당 대표로 활동하는 동안 세를 확장시키고 정치 역량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의욕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2010년 지방선거는 그의 당 대표 성적표이자 대권으로 가는 티켓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대표는 “아직 결심하지 않았다. 욕심을 부린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잠룡으로의 성장 가능성도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당원이나 국민이 판단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당이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정치인 정세균이 가지고 있는 꿈이나 이해관계, 이런 것은 미루는 게 좋다”고 한발 물러섰다. 우선은 ‘야당’을 세우는 게 먼저지만 ‘꿈’을 버리거나 잊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정 대표의 ‘야당수장’ 세우기 노력이 헛되지 않기 위해선 당내는 물론 당외 지지세력과의 끈끈한 연대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정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초(超)거대 여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정치권 바깥 시민사회 세력의 지지가 필수적이고 포럼이 일정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좁게 보면 정세균 대표 체제, 넓게 보면 민주당의 성공은 당과 외부 지지 세력의 강고한 연대가 현실화할 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연결 고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원내외 세력화가 현재 진행 중이다. 따라서 정세균 대표측과 별다른 갈등 없이 양측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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