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정신병원 탈출 환자 5명 중 1명 사망, 유족 병원 감금 의혹 제기
국가인권위원회 “관리시설 진정 중 90%가 정신병원의 부당 대우 내용”
영덕 정신병원 간호보호사 흉기로 위협·감금해 20명이 무더기로 탈출
의료법에 따라 적정 인원보다 의료인수 적어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것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이 연이어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던 지난 9월13일 경북 영덕의 A정신병원과 경기 안산의 B정신병원에서 서로 의기투합한 듯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탈주극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자 많은 사람들은 환자들이 탈출한 이유가 뭔지, 혹시 그동안 제기돼 왔던 정신병원 내 감금이나 인권유린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닌지, 병원의 과실은 없는지 등의 여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에 탈출을 감행한 환자들은 공교롭게도 안산과 영덕 모두 대부분 알코올중독을 치료받던 환자들였다.
현재 대부분의 환자들은 탈출 후 곧바로 잡히거나 스스로 병원으로 복귀해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돼 가고 있지만, 이들이 병원을 탈출한 이유 등에 대한 의혹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유족 감금 의혹 제기
사건은 지난 9월13일 모두가 추석연휴로 들떠 있던 연휴 첫날 늦은 밤에 일어났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위치한 A정신병원 3층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이모(52) 씨 등 환자 5명이 창문의 쇠창살을 뜯고 탈출을 한 것이다.
이들은 마치 영화와 같이 매트리스 커버 여러장을 묶어 임시 밧줄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건물 밖으로 떨어지듯 탈출했다.
하지만 이들의 탈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씨를 제외한 4명 가운데 2명은 A정신병원 근처에서 병원 직원에게 곧바로 붙잡혔고, 나머지 2명은 인근 안산역 앞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1시간 만에 검거됐다.
그러나 이씨는 끝내 병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도주 7시간만인 지난 14일 오전 7시께 A정신병원에서 조금 떨어진 중앙역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씨가 창문을 통해 도주하다가 2층에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시결과 팔과 무릎의 찰과상 외에는 특별한 외상이 없어 일단 타살 혐의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해당 정신병원은 사고 경위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씨의 유족들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병원내 감금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씨의 유가족들은 “이씨가 병원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며 “(정신병원 규칙을)뭘 어겨서 (벌)받는 식으로 감금해 전화도 못 하게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신병원 내 환자들의 감금 행위에 대한 의혹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침해구제본부 관계자는 “관리시설에 대한 진정 내용 중 90%이상이 정신병원(요양원)에서 당한 부당한 대우에 대한 내용이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통계치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부당강제입원’, ‘자유행동제한’에 대한 피해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강박, 강금은 물론 ‘도우미 제도’를 명목으로 병원 직원들이 수행해야 할 화장실 청소, 쓰레기 정리, 중증 환자 간병 등을 병증이 심하지 않은 환자들에게 수행하도록 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이번에 탈주극을 벌였던 안산과 영덕의 정신병원 환자들도 어떤 감금이나 부당대우에 대해 불만을 품고 탈출을 시도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영화같이 치밀했던 탈주극
정신병원 내 환자들 감금 의혹과 함께 경북 영동 B정신병원의 경우 무려 20명의 환자들이 단체로 탈출해 해당 병원들의 관리·감독 허술에 따른 과실은 없었는지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영덕경찰서 지역상사팀에 따르면 영덕 B정신병원에서 탈출한 20명의 환자들은 간호보호사를 흉기로 위협해 격리병동에 결박, 감금한 뒤 달아났다.
당시 정신병동 503호에 함께 수용중이던 이들은, 그중 우모(54)씨의 주도하에 사전에 탈출을 모의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먼저 3명이 병원 5층 정신병동에서 고의로 싸움을 벌여 간호보호사 권모(48)씨를 격리병동으로 유인해 결박했다.
이와 동시에 다른 팀 2명이 정신병동 사무실에 근무 중이던 간호보호사 민모(29)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위협해 격리실에 감금한 후, 열쇠를 빼앗아 정신병동 출입문을 열고 20명이 함께 탈출하는 치밀한 함을 보여줬다.
현재 탈출을 주도했던 우씨는 지난 9월16일 그의 연고지인 경북 경산에서 붙잡혀 관리인 억류와 감금·도주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나머지 19명 중 13명은 탈출 후 곧바로 잡히거나 스스로 복귀해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나머지 6명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한 상태다.
영덕경찰서 지역상사팀은 “아직 복귀하지 않은 6명은 연고지를 중심으로 지역 경찰서 등에 수배를 내려 찾고 있다”며 “갈 곳이 없는 이들도 많아 스스로 복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의사·간호사 없는 병동
이들이 탈출을 모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영덕경찰서 지역상사팀은 “어려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당시 6인실에 10~11명이 수용되는가 하면, 환자들이 마음대로 못 움직이게 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안산 A정신병원과 같이 환자의 자유행동제한에 따른 불만이 탈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도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탈출 동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조심스러워했다.
경찰관계자는 이어 “또 아무래도 추석연휴가 다가오면서 가족들이 그리워 추석명절을 가족과 함께 지내고자 나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덕 B정신병원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당시 160명이 달하는 환자들을 관리·감독하고 있던 관리인의 수가 고작 2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치료를 목적으로 모인 환자들이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나 간호사는 단 한명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덕보건소 관계자는 “병원측은 ‘당시 환자들이 간호보호사를 흉기로 위협해 감금하는 등 탈출을 막기엔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하며 이들이 탈출하기 하루 전에 인근 안동의 한 정신병원이 부도를 맞으며 40여명의 환자가 갑자기 늘어난 점 등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계자는 “적정 인원보다 의료인수가 적었던 만큼 의료법의 정신보건법 위반에 따른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직 돌아오지 않은 환자들이 복귀하고 경찰조사가 마무리되면 추가로 병원과실에 대한 조사를 할 예정이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들로 또다시 정신병원과 관련된 법규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이에 해당 정신병원 내에서 정말 감금은 일어나지 않았는지 등에 대한 관계당국의 정확한 사건조사와 함께, 정신병원의 허술한 관리 체계가 여실히 드러난 만큼 해당 법규에 대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여론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