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대행서비스, 알고 보면 그 재미 솔솔
역할대행서비스, 알고 보면 그 재미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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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교제의 변형으로 신종 성매매로 인식돼 온 역할 대행 서비스가 다양한 형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미 드라마와 영화에도 자주 나올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 중인 신종 아르바이트인 역할 대행은 하객·부모·애인·자녀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이미 고령화가 현상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자리잡은 일본에선 가찌 아들 딸 뿐만 아니라 며느리 대행서비스 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역할 대행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역할 대행으로 ‘삶의 재미’ 느껴

올해 나이 53세인 김 모씨(남)는 몇 년 전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바로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

김씨가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은 친구에게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에게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같이 가자”는 소리를 듣고 따라 나선 게 그 시작이었다.

김씨는 서울 모처의 예식장에서 하객 대행을 했다. 그곳에서 한 일이라고는 예식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예식이 끝나고 간단히 밥을 먹은 뒤, 역할 대행 서비스 업체로부터 현금 2만원을 받아 들었다. 김씨는 집에서 아내 눈치 보며 TV 앞에만 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여기에 보너스로 돌아다니면서 운동도 하고, 바람도 쐬고, 예식장에서 사람들 얼굴도 보고, 신랑 신부에게 도움도 된다는 점에서 보람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 큰 돈을 버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을 까.

역할 대행, 다른 감정 없어

경남 창원에 사는 이 모씨(23·여). 그녀는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몇 달 전 우연히 친구와 인터넷에서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관련 사이트를 찾아서 호기심에 자신의 사진과 기본 정보를 올려놨다. 반응은 즉각 왔다.

인터넷 사이트에 정보를 올리자마자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문자 메시지와 전화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씨는 대부분의 문자 메시지와 전화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잠자리 스킨십을 전제로 한 ‘애인’을 원하고 있었던 것.

스킨십이 싫었던 이씨는 인터넷 사이트에 다시 정보를 올렸다. ‘불건전한 쪽지나 문자는 사절합니다. 스킨십 절대 사절합니다. 즐겁고 유쾌한 만남을 원하시는 분만 연락주세요’라고. 이씨가 이렇게 ‘건전한 데이트’를 요구하자, 이상한 문자 메시지는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이후 ‘건전한 만남을 하고 싶다’는 한 남자의 전화를 받고, 호기심에 의뢰인을 만나러 나갔다. 이씨는 데이트 비용으로 한 시간에 5만원을 받기로 했다. 그것도 선불로. 30대 후반의 남성이 약속 장소에 나왔다. 3시간 동안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하고, 15만원을 먼저 받았다.

낯선 남녀의 첫 만남. 영화나 드라마처럼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됐을 법하다. 그러나 이씨는 상대 남성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남자와 여자의 만남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돈’이 오가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솔직히 의뢰인이 매력 넘치는 선남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니다. 이씨는 잘생기고 매력 있는 20대 남자가 약속 장소에 나와도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씨의 눈에는 상대 남자가 그냥 ‘돈’을 벌게 해주는 사람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의 여자와 30대 초반의 남자, 서로 무슨 대화가 오갔을까. 이씨는 그냥 서로의 상황을 털어놓는다고 밝혔다. ‘요즘에 어떤 고민이 있는데’ 혹은 ‘어떤 사람이 날 힘들게 하는데’ 등의 이야기다.

사람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공감이 갈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물론, 이씨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전혀 동조할 수 없을 때도 많다. 하지만 돈을 받았으니, 최대한 성심 성의껏 응수해준다. 상황에 따라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렇게 약속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서로 악수를 나누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애인’으로서의 의무가 끝나는 것.

물론, 더 있자고 하거나 다음에 또 만나자고 요구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한 번 만난 사람은 다시 만나지 않는다. 두 번째 만남을 가지면, 더 깊은 관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의 철칙은 의뢰인은 무조건 한 번만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건전한 만남을 전제로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계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할 대행 누가 찾나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역할 대행 서비스를 의뢰하고, 또 어떤 사람들이 대행인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일까.

최근 인터넷에는 ‘애인 대행’ ‘하객 대행’ ‘부모 대행’ ‘자식 대행’ 등 역할 대행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요즘 네티즌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인터넷 역할 대행 사이트 ‘헬프몬.’ 그곳에 등록되어 있는 대행인 수는 4천5백 명에 이른다.

헬프몬을 운영하는 백희선 대표 역시 처음에는 애인 대행을 이용해본 의뢰인이었다. 외롭다고 생각했던 그에게 ‘애인 대행’ 서비스는 ‘청량제’ 같은 신선한 자극을 줬다고 한다. 이후 백 대표는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역할 대행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사이트를 만들자 반응은 생각보다 빨랐다고 한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대행인 지망생들이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사이트에 자신의 정보를 등록했다.

공급이 있으면 수요도 있는 법. 대행인들을 찾는 ‘의뢰인’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최근 홈페이지 방문객은 하루에 6천 명 정도다. 의뢰인은 주로 30~40대 남자들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돈이 많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개는 남자들이 주를 이루지만, 여자 의뢰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여자 의뢰인들은 보통 30대 초·중반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애인을 사귈 시간이 없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백 대표는 대행인과 의뢰인이 서로 직접 연락하고 만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본인은 그들이 와서 놀 수 있는 ‘놀이터’만 제공해주겠다는 취지였다. 물론, 대행인의 정보를 열람하는 데는 약간의 돈을 지불한다.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가지각색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그중 20대가 주를 이룬다. 현재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시간도 떼우고, 돈도 벌기 위해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었다.

지금 서울의 모 대학에 다니는 정 모씨(24·남). 정씨는 “학교 다니는 동안 시간이 많이 남기 때문에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밝혔다.

대학생 다음으로는 직장인이 많았다.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는 시간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는 김 모씨(29·여).

그녀는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고 한다. 김씨는 “직장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어서 무척 좋다”면서 “진한 스킨십만 잘 피한다면, 이보다 더 편하고 좋은 아르바이트는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애인 대행’을 해주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실제 애인이 되는 경우는 없을까. 대행인들은 그런 경우는 드물다고 입을 모은다. 그 이유는 서로 ‘돈’이 오가는 관계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간혹 애인 대행을 해주다가 실제로 연인이 되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김 모씨(29·여)가 어느 날 바빠서 여자 후배에게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소개해줬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과 연인으로 발전했다는 것.

이에 김씨는 “이들이 연결된 것은, 여자 후배가 전문 대행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몇 번 애인 대행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상대에게 특별한 감정은 전혀 느낄 수 없다고.

성매매 의혹…가격 안정화가 최우선

하객, 애인, 부모, 자녀 등 다양한 역할 대행 아르바이트 중 가장 의뢰가 많이 들어오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애인 대행’ 이다. 그 뒤로 하객 대행과 부모 대행, 자녀 대행 순이다. 하객 대행과 애인 대행은 일반인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부모 대행과 자녀 대행은 도대체 누가 어떤 경우에 의뢰하는지 낯설기만 하다.

이에 대해 백 대표는 “아직 우라나라에선 부모와 자녀 대행을 의뢰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라면서 “그래도 간혹 상견례를 위해 부모 대행을 하는 경우, 어린 자녀를 둔 직장인들을 위해 학부모 역할을 해주는 경우, 가족 단위 행사에 자녀 역할을 해주는 경우 등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이혼이 급증하고 고령화사회가 되면서 가족 대행 요구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현재 의뢰인들의 80~90%는 애인 대행을 원하는 추세다. 백 대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요즘 현대인들이 그만큼 많이 지쳐 있고, 외롭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부에서는 ‘애인 대행’이 ‘성매매’로 변질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백 대표 역시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인정한다.

그는 “건전하게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은 관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하지만 이것을 빌미로 ‘역할 대행’ 서비스 업계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에 대행인들의 의견은 어떨까. 대행인 이 모씨(23·여) 역시 “애인 대행을 하러 나가 만난 남자들이 ‘잠자리’를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때문에 일부에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

하지만 이씨는 “보통 건전한 데이트를 전제로 의뢰인을 만나기 때문에, 내 생각만 확고하면 그런 제의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헬프몬의 백 대표 역시 건전한 역할 대행 서비스를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그는 “지금은 대행인과 의뢰인이 직접 만나기 때문에 대행인에 따라 가격이 1만~1백만원까지 천차만별”이라며 “먼저 가격의 기준을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의뢰인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생각하는 대행인들이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게 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백 대표는 “ 대행인과 의뢰인 사이에 오가는 액수가 많을수록 좀더 깊은 관계를 요구한다”며 “이 때문에 가격의 안정화만이 올바른 역할 대행 서비스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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