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검찰은 애경그룹 본사가 인접해 있는 애경백화점 구로점 사무실을 불시에 들이닥쳤다.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압수수색이었다.
서울 남부지검 형사6부는 애경이 구로동 애경백화점 옆 여성주차장 부지에 초대형 ‘나인스에비뉴(9th avene)’ 주상복합상가를 분양하면서 직접 분양할 경우 4천억원대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 시행사를 통해 8백90억여원의 수익만을 거둬들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검찰의 이번 수사는 ‘나인스에비뉴’ 상가 입주 예정인 일부상인들이 시행사인 (주)나인스에비뉴가 애경의 위장계열사라고 주장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애경이 막대한 수익을 포기한 이면에 시행사와 공모를 통해 사업수익의 일부를 비자금화하려는 목적이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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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경백화점은 상가를 직접 분양할 경우 수천억원대의 사업수익을 거둘 수 있음에도 불구 (주)나인스에비뉴 측에 부지를 매도해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다. |
애경은 지난 2003년 경 구로동에 위치한 애경백화점 옆 여성주차장 부지 3000여평에 국내 최대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려고 계획했다.
이 계획은 애경의 부동산 계열사이자 ‘지주격’ 회사인 ‘ARD홀딩스(주)’에서 비롯됐다. ARD홀딩스는 이 부지의 소유자이기도 했으며, 당시 이 회사의 대표는 현 애경그룹의 실경영자인 채형석 총괄부회장이었다.
ARD홀딩스는 GS건설(당시 LG건설, 시공사), 우리은행(자금관리사)과 PF(Project Financing)를 체결, 같은 해 서울시청으로부터 사업 인허가를 받은 후 분양에 들어갔다.
하지만 막상 지하 5층, 지상 36층의 초대형 주상복합건물을 분양하려고 보니 쉽지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지상 4층까지에 대한 상가 분양권과 부지(상가부분 1500여평)에 대해서는 부동산 개발·분양대행업체인 (주)나인스에비뉴에게 8백90억여원에 매도했다.
지상 9층부터 지상 36층까지 아파트(299세대) 부분에 대해서는 GS건설이 분양에서부터 시공까지 맡았다.
따라서 상가부분은 ‘나인스에비뉴’, 아파트부분은 ‘신구로 자이’란 이름으로 분양, 시공됐다.
이 당시 주목할 점은 부동산 경기가 썩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인스에비뉴와 신구로자이의 분양은 최고 수준이었다. 그럴 것이 편의성, 교통성, 환경성 등 모든 면에서 탁월했기 때문. 더욱이 당시 구로지역에 대한 대단위 개발에 따른 기대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애경은 이 같은 흐름을 읽지 못했을까. 상가부분에 대해서도 직접 분양했으면 적어도 수천억원 정도는 가볍게(?) 거둬들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 불과 8백90억원에 매도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검찰이 의아하게 여기는 대목이다.
검찰, 지난 4일 구로 애경백화점 압수수색 불시 단행…애경, “오해야”
시행사 등과 짜고 비자금 조성 의혹…애경, “일부 상인들의 주장일 뿐”
의혹 1. 애경은 왜 수천억원을 포기하면서까지 직접 분양하지 않았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 Data Analysis, Retrieval and Transfer System)에 올라와 있는 (주)나인스에비뉴의 감사보고서(2004년~2007년)를 살펴보면 상가부분에 대한 총 분양예정금액으로 4천1백30억원이 책정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실제 분양금액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고, 현재 총 분양금액이 얼마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다만, 애경이 직접 분양을 했을 경우 적어도 (주)나인스에비뉴 측에 매도한 금액 8백90억여원보다는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 현재 나인스에비뉴 주상복합상가가 들어선 구로동 일대 부동산 중개업소 몇 군데를 취재한 결과, 수년째 이곳에서 부동산 중개를 영위하고 있는 S중개사무소 A대표(공인중개사)로부터 다소 놀라운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A대표에 따르면 당시(2003년 말) 나인스에비뉴는 인근 역세권과 신도림 테크노마트, 지역 개발 계획 등 호재를 타고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이 애경그룹에서 직접 시행에서부터 분양까지 관리하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럴 것이 ‘(주)애경 E&C(현 AK E&C)’란 회사가 애경의 자회사 혹은 계열사로 알려졌기 때문.
(주)나인스에비뉴의 감사보고서에서도 매도회사 ARD홀딩스, 건설사 GS건설·AK E&C로 기재돼 있다.
A대표는 당시 애경 E&C에 대해 언론에서도 애경그룹의 자회사 혹은 계열사로 보도됐었고, ARD홀딩스 측에서도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란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고 한다.
이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란 아파트와 상가부분을 통칭한 개념이다. 따라서 분양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 대부분이 국내 굴지의 기업인 애경그룹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것인 만큼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이다.
A대표의 말대로 당시 몇몇 일간지에서는 애경 E&C에 대해 애경그룹의 자회사 혹은 계열사로 보도됐던 것으로 확인됐으며, ARD홀딩스 인터넷홈페이지 상에서도 ‘애경게이트웨이플라자’로 기재돼 있었다.
그런데, A대표는 갑자기 애경이 (주)나인스에비뉴란 부동산 개발·분양대행업체에 상가부분 일체를 매도한 것을 두고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굳이 매도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 ARD홀딩스가 직접 분양할 능력이 없다면 기존 분양업체를 인수하거나 새로이 만들면 될 것을 듣도 보도 못한 조그만 분양대행업체에 예상분양금액보다 훨씬 적은 금액에 매도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애경그룹 측 홍보실 관계자는 “대규모 상가 분양을 직접 할 능력이 없었고, 당시로서는 적정수준에서 매도했다”며 “애경이 직접 상가 분양을 하게 되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해 매도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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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나인스에비뉴의 분양홍보책자에 소개된 (주)AK E&C. 하지만 시행사인 (주)나인스에비뉴에 관한 설명은 전무하다. |
또 이 관계자는 “이번 비자금 조성 의혹은 애경이 과거 ‘나인스에비뉴’의 부지를 소유했기 때문에 비롯된 오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복합상가의 부지를 4년 전 한 시행사에 매각한 후 분양사업에는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며 “2004, 2005년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 상가를 분양받은 사람이 준공이 끝난 후 시세차익을 보지 못하자 분양상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런 의혹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의 말대로 애경은 (주)나인스에비뉴에 매도한 이후 분양과 관련해 일체의 관련도 하지 않았을까.
지난해 나인스에비뉴 상가의 분양홍보책자에는 시행사 (주)나인스에비뉴와 책임시공 및 관리운영사로 'AK E&C'로 선명하게 기재돼 있다.
AK E&C는 애경의 자회사로 알려진 회사이기 때문에 이 관계자의 주장은 모순인 셈이 된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AK E&C는 애경백화점의 주차관리를 비롯한 전반적인 백화점 관리를 맡아왔었던 용역업체였을 뿐”이라며 “애경백화점의 자회사 혹은 계열사라는 말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당시 이와 관련해 몇몇 분들이 문의전화가 왔었다”며 “이때에도 AK E&C는 애경그룹의 자회사가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또한 AK E&C에게는 ‘애경그룹의 자회사란 식’으로 분양홍보 하지 말아 줄 것을 공문으로 전달했다”고 말했다.
현재 AK E&C는 검찰의 수사로 인해 홈페이지가 폐쇄된 상태이며,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의혹 3. 정체모를 시행사 (주)나인스에비뉴와 실질적 대주주 (주)밀라트산업개발
이번 애경 비자금 조성 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시행사 (주)나인스에비뉴 역시 의문스럽다.
알려진 바로는 지난 2000년 6월경에 (주)피엔에이치 네트워크로 설립된 이 회사는 2003년 10월 ARD홀딩스와 부지 매매체결 당시 상호를 현재의 (주)나인스에비뉴로 바꿨다.
이 밖에 2003년 당시 33살의 젊은 나이에 대표이사로 취임한 권성식 대표가 이 회사의 자본금을 두 배로 증자시키는 등 놀라운 수완을 발휘해 눈길을 끈 것 외에는 별달리 알려진 게 없다.
분양홍보책자에도 AK E&C와 우리은행에 관한 설명만 나와 있을 뿐, 시행사에 대한 언급은 거의 전무하다.
더욱이 애경그룹 측 관계자 역시 나인스에비뉴가 단순히 상가명이라고 여겼을 정도로 실체가 확연히 드러난 게 없다.
이에 검찰은 (주)나인스에비뉴의 실질적 대주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주)밀라트산업개발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단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출액이 수억원에 불과하고 사업실적이 전무했던 나인스에비뉴가 애경백화점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고 주상복합상가를 건설·분양하는데, 밀라트산업개발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시행사 (주)나인스에비뉴를 중심으로 실질적 대주주 밀라트산업개발, 애경(애경백화점, ARD홀딩스) 그리고 AK E&C 등에 대해서 전방위 압박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의혹 4. ARD홀딩스를 통한 비자금 모으기?
지난 1999년 12월, 애경백화점(애경유지공업(주))은 회사 소유의 백화점 부지를 포함한 부동산일체를 그룹의 부동산 계열사이자 지주격 회사인 ARD홀딩스에 양도했다. 이 당시 현 채형석 총괄부회장은 애경유지공업과 ARD홀딩의 대표이사를 겸직하고 있었다. 현재 ARD홀딩스는 애경유지공업의 상무이사를 지낸 심상보 대표이사와 부동산 부문의 조재열 대표이사가 경영하는 공동대표 체제이다.
ARD홀딩스의 현재 지분현황을 보면 채형석 총괄부회장이 0.86%로 개인주주들 중에는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애경그룹의 상장사로는 유일하게 ‘애경유화(주)’만이기 때문에 애경 계열사들의 지분구조를 정확히 파악되지는 않고 있지만, ARD홀딩스를 주축으로 대부분 계열사의 지분을 오너 일가들이 장악해 순환고리식으로 연결해놓은 듯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애경 역시 내년쯤에 ARD홀딩스를 중심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할 것이란 말도 들린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애경 측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재계 일각에서는 “애경이 시행사를 통해 비자금 조성했을 것이란 의혹과 관련해 애경의 실경영자인 채형석 부회장이 공공연히 애경의 신(新)성장동력원으로 부동산 개발을 강조했던 것으로 봐서는 어딘가에 대규모 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란 추측을 하고 있다.
실제로 애경(ARD홀딩스)은 지난해 삼성플라자를 인수했고, 그룹 내 부동산 계열사를 확대, 강화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모건스탠리등과 지분 합작한 AMM이란 국내 최대규모의(자본금 1천억원) 부동산 자산 개발회사를 세워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점은 ARD홀딩스의 심상보 대표이사 사장은 애경의 부동산 계열사인 수원애경역사(주), 평택역사(주), (주)AK네트워크 등 관계사의 대표이사를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ARD홀딩스는 지난 1999년 9월에 애경의 계열사로 설립된 이후 부동산 개발(아파트, 상가)에 주력한 결과 2006년 매출액 1천억원에서 지난해에는 2천억원으로 수직상승했다.
이와 관련해 ARD홀딩스 관계자는 “‘만일 이번 검찰 수사와 관련해 언론등 외부로부터 문의가 왔을 시에는 무조건 그룹 홍보실로 돌려라’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그룹 홍보실 전화번호를 안내해줬다.
하지만 정작 그룹 홍보실 관계자 역시 알려진 것 외에는 시종일관 “모른다”는 말뿐 그 이상의 답변은 듣기 어려웠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현재 검찰은 관련자들의 계좌추적을 벌이고 있으며, 아직까지 이번 의혹과 관련된 자들에 대한 소환에 대해서는 들리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