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파 투쟁속으로... '수도지키기 투쟁위원회' 구성
지도부 정면돌파...“사퇴하려거든 하라”
한나라당에 ‘행정도시특별법’ 국회통과 ‘후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다. 당 안팎에선 “한나라당이 아니라 두나라당”이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법안 처리에 반대하던 의원들은 3일‘수도지키기 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법 무효화를 위한 전면전을 선포했다. 법안 처리에 반발해 당직 사퇴도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지도부는 이들 의원의 행동을 ‘해당행위’로 규정하고 정면돌파 의지를 천명했다. 지도부와 투쟁위가 사실상 ‘내전’(內戰)에 돌입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수도지키기 투쟁위’에 참여한 의원들은 이날 오후 2시 국회 도서관에서 모임을 갖고 법률적 대응과 함께 수도 분할 반대 국민운동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투쟁위는 구체적으로 “헌법소원과 행정도시 건설특별법 폐지 법률안 및 수정안을 내는 한편 시민단체, 지방의회,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천만인 서명운동 등 대중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투쟁위엔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였던 김문수, 이재오, 박계동, 배일도 의원을 비롯, 의원 33명이 참여 의사를 나타냈다. 이와 관련, 심재철 의원은 “현재 의원 47명이 반대 성명에 서명했다”고 밝혀 참여 의원이 늘 것임을 시사했다. 김문수 의원은 국회해산을 요구했고, 이재오 의원은 “법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의원직 사퇴가 효과적이라고 판단되면 의원직 사퇴도 불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덕룡 원내대표는 상임운영위에서 “야당의 힘은 다른 게 아니라 내부의 단결과 국민의 지지”라면서 “이번 사태가 한나라당이 단결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당의 단합을 강조했다. 이규택 최고위원은 “해당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대가가 있어야 한다”며 정면돌파를 주문했다.
특히 반발 의원들의 의원직 사퇴 의사 표명에 대해 지도부는 “사퇴하려거든 하라”며 강경한 분위기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당과 국가가 부여한 의원직을 함부로 사퇴하느니 마느니 이렇게 경솔한 언동을 한 사람을 속으로 경멸했다”면서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민 대표비서실장도 박세일 정책위의장을 겨냥, “당론에 사실상 찬성해놓고 당론결정 이후에 당과 대표를 흔드는 것은 기회주의적인 것”이라고 가세했다.
◆ 박근혜 리더십 흔들…한나라
박 대표가 내건 ‘변화의 리더십’이 기로에 섰다.
반대파 쪽 관계자는 “합법·비합법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행정수도 이전 반대운동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행정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서울시 및 경기도 의회, 시민운동단체 등과 연계한 범국민운동, 헌법재판소 위헌소송 등 구체적인 향후 투쟁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과 박 대표 사이 감정의 골 역시 깊어 질대로 깊어져, 되메우기가 힘들어진 상태다. 수도권 출신인 안상수 의원은 지난 1일 박 대표에게 “이렇게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가는 것은 대표의 대권욕 때문이 아니냐”라고 대놓고 따졌다. 농성파 의원들은 “박 대표는 행정도시 건설 합의로 사실상 결단났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다.
실제로 박 대표는 심각한 위기국면이라고 할만큼 지도력에 손상을 입은 상태다. 이날 임명직 당직자 가운데 가장 높은 서열인 박세일 정책위의장이 사퇴한 것은 박 대표가 처한 곤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 의장은 지난 17대 총선 때 박 대표와 함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박 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당 관계자는 “박 대표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이 임명한 정책위의장을 끝내 설득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한계를 노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은 행정도시 특별법 통과 이후 당내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정면 돌파’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박 대표는 예정된 수순대로 향후 일정을 진행하고 당직 사퇴를 표명한 의원들의 사표는 수리하기로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당 지도부들은 의원직 사퇴까지 밝힌 의원들을 향해 ‘그 말에 책임져야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당직 사표가 수리되면 정책 부분에 공방이 생길 전망이라 정책정당을 강조하던 한나라당으로써는 고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3일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상임운영위회의에서 행정도시법 통과 후속대책과 관련해 “국회 지역균형발전 소위원회에서는 지방으로 이전하는 산하 기관 190개를 어디로 옮기느냐 갖고 정치적 협상이 될 수 있다”며 “야당으로서 철저히 접근하고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당부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 반대파 분당론 거론… 두나라
행정도시법 처리 방침에 수도권 의원들의 다수는 그렇게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지만 이재오, 김문수, 박계동, 배일도 의원 등 강경하게 반대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행동은 크게 부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박 대표가 모처럼 자리까지 주면서 자기사람으로 만들려 했던 당직자들의 사퇴 도미노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행정도시 특별법이 국회에 통과되면 당직을 사퇴하겠다고 한 의원은 심재철 전략기획위원장을 첫 시발로 해 안상수 공천심사위원장, 박세일 정책위의장, 박재완 제3정조위원장, 박찬숙 제6정조위원장, 박진 국제위원장이 선언했다.
이어 유정복 제1정조위원장, 이혜훈 제4정조위원장, 이주호 제5정조위원장도 금명간 사퇴대열에 가세할 것으로 알려져 한나라당의 정책기능이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또한 당장 4.30 재보선 보궐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공천심사위원장 등의 사퇴로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현재 박 대표의 입장은 사실 갑갑하기 짝이 없다. 일단 말을 뱉어놓은 이상 말대로 처리하지 못할 경우 리더십에 심각한 손상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 안팎에서는‘박근혜 필패론’을 내세우면서 당권을 내놓으라는 요구가 거세다. 필패론에 신경 쓸 것은 아니지만, 차기 대권 후보로서 당을 중립적으로 관리한다는 입장에서 당권을 내놓으라는 요구 자체는 합리성을 띠고 있다.
이미 당 혁신위원장인 홍준표 의원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밀려서 하느냐, 자의에 의해서 하느냐는 점인데, 명분을 중시하는 정치권에서 박 대표가 일정 시점에서 당권을 내놓더라도 리더십에 많은 손상을 입은 채 내놓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냐 하는 점은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발등에 떨어진 불인 행정도시법은 어떻게 말끔하게 처리하느냐, 처리 못하느냐에 따라 당권을 쥔 사람으로서 당내 리더십의 가늠자가 될 수밖에 없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 문을 못질하면서까지 강경한 반발을 했던 4인방이 본격적으로 당 분열, 즉 분당을 위한 수순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 자체의 구심력도 만만치는 않지만, 4인방의 행정도시법 반대에는 차기 대선 전략도 포함돼 있는 만큼 이 진통이 당의 조기 분열로 나아갈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편 회의에서는 당 지도부 책임론과 사퇴를 주장하는 일부 의원들의 의견에 대해 ‘해당 행위’라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밝혔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민주정치와 정당정치의 기본은 정해진 원칙과 정도를 지키면서 구성원간의 상대방간에 신뢰를 지키면서 가는 것”이라며 “어제(2일 본회의 때)는 그렇지 못한 상황이 연출돼 다시는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김 사무총장은 “원내대표의 경우 의총에서 선출된 만큼 의총에서 이것을 다시 물어야 된다”면서 “또한 당 대표의 경우 운영위원회의 의결 또는 재적 대의원 3분의 2이상의 결의가 있어야 전당대회를 개최해 신임을 물을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하며 절차를 다 밟아야 할 것이라고 사퇴요구에 맞대응했다.
박 대표는 사퇴 의사를 표명한 박세일 정책위의장, 심재철 전략기획위원장, 안상수 공천심사위원장 등 당직자들의 사표를 모두 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전여옥 대변인은 “당연히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며 “국민 앞에 약속한 것을 어떻게 뒤집을 수 있는가”라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저작권자 © 시사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