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원산지 사설 정보지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최진실 자살에 관련된 악성루머의 진원지가 사설 정보지로 꼽히는 탓이다. 이미 검찰이 사설 정보지에 대한 대대적 수사 의지를 밝힌 상황. 특히 이번 최진실 관련 악성 루머의 유포지가 증권사 직원으로 지목되며 증권업계도 덩달아 긴장감을 내비치고 있다. 온갖 정보가 떠도는 증권시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루머 총 본산 여의도 증권가, 검찰 정보지 수사 영향권에 진입
최진실의 자살을 두고 증권가 안팎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10월2일 자택 욕실에서 목을 맨 최진실의 자살 이유로 악성 루머 유포가 거론되는 탓이다.
최초 인터넷에 이 루머를 유포시킨 것은 바로 증권업계에서 종사중인 A씨.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주식카페에 ‘최진실 사채설’을 단 것이 단초가 됐다. 이에 지난 9월 최진실은 강력 대처할 것을 밝히고 경찰에 고발한 상태다.
괴소문의 중심지 증권업계
하지만 경찰 수사결과 루머 생산자는 A씨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A씨에게 이 루머를 알려준 것은 같은 증권업계의 B씨, B씨에게 알려준 것은 C씨였다. 하지만 C씨도 에게 D씨에게 메신저로 정보를 받고 서야 관련 루머를 인지했다. 입에서 입을 타고 D씨에서 A씨까지 이어진 셈이다. 그러나 D씨조차도 루머의 생산자가 아니었다. D씨는 메신저를 통해 지인에게 최진실 루머를 접했고, 이를 알렸지만 정작 누구에게 전달 받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여의도 증권가 관계자는 “사실 루머를 이들이 유포했다기보다는 최초 ‘사설 정보지’에서 거론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메신저 등을 통해 빠르게 유포되기 때문에 근원지를 파악하려는 경찰의 수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찰의 수사는 루머의 진원지를 파악하지 못하고 미진하게 마무리됐다. 사설 정보지와 악성루머의 관계를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진실 수사와는 별도로 사설 정보지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시작될 전망이다. 대검찰청은 지난 10월6일 사설정보지들에 의한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범죄를 집중단속하기로 하고 전국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악의적이고 상습적인 경우는 전담팀을 가동하기로 했고, 구속 수사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사실 소문이 많기로는 주식시장만 한 곳이 없다. “루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통하는 주식시장에서 정보는 곧 돈과 직결된다. 증권가가 ‘사설 정보지의 본산’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사실 업무시간에도 메신저로 수십건의 정보를 받게 된다”면서 “이를 다시 재공유하면서 증권업계는 거미줄같은 정보라인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직접 사설 정보지를 구입하지 않더라도 결국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직접 사설 정보지를 구입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사설 정보지 시장의 단속에는 증권업계가 간접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
실제 지난 10월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금감원은 국내외 증권사들에 각사 내부 정보 통신망에 대한 내부통제를 강화할 것을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최근 사설 정보업체가 만든 정보지(일명 찌라시)가 사회적 물의를 빚은 가운데 증권업계가 이런 정보지의 주요 유통 경로로 지목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증권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법규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주지시키고 자체 생산된 자료에 대한 내부통제를 강화해 줄 것을 각 증권사에 요청했다. 증권사들은 또 금감원의 이 같은 공문을 내부 통신망에 올려 직원들이 미확인 정보의 생산과 유포를 금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실제 증권사들은 이 같은 기류에 쉬쉬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평소에는 연예인 관련 ‘찌라시’가 하루에 몇 건 이상은 돌았는데, 지금은 시황이나 종목 관련 메시지만 오갈 뿐 연예인 관련 메시지가 자취를 감췄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회사의 공식적 입단속은 없지만 알아서 몸을 사리면서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를 받더라도 민감한 내용은 돌리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패한 과거, 이번에는?
이 같은 증권사의 반응에는 정부당국의 단속이 쉽지 않으리라는 해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은 지난 2005년 참여정부 시절 학교폭력, 성폭력, 조직폭력, 정보지폭력 등 4대 폭력 집중단속 및 근절대책을 세우고 집중단속을 벌였으나 거래의 은밀성 등으로 인해 큰 실적을 거두지 못했고 대선을 앞둔 작년 초에도 집중단속을 벌였지만 1건을 적발하는데 그쳤다. 그렇다면 이번 수사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검찰 관계자는 “현재 파악한 사설정보지 업체는 10개 이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한부당 30만∼50만원 가량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전체적으로 매출액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인터넷상으로 전파되는 경우에는 전파경로가 남아있어 추적할 수 있고, 정보시장에서도 어떤 식으로 발행한다는 정보는 입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자신했다.
▶ 논란의 중심 ‘사설 정보지’란?
속칭 ‘찌라시’로 불리는 사설 정보지는 청와대와 정치권, 재벌기업, 연예인 등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가십성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실 씨의 ‘사채설 루머’나, 가수 나훈아 씨를 둘러싼 괴소문, 연예인 X파일의 진원지도 사설 정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주로 기업의 정보팀, 증권 관련자, 전직 기자 등으로 전해진다. 유통과정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수요는 기업들을 비롯해 금융권, 정치권까지 폭 넓게 확산된다. 특히 이 정보 유통에는 증권사 등 금융업계 종사자들이 애용하는 특정 인터넷 메신저가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메신저는 1대1 대화를 기본으로 하는 일반 메신저와는 달리 ‘쪽지’를 대량 발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찌라시 시장은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싹 튼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유비통신’(유언비어 통신)이란 이름으로 유통됐다. 국가에서 정보를 움켜쥐고 엄격하게 통제했기 때문에 소위 비공식 채널로 알권리를 충족시킨 셈이다. 하지만 유비통신은 성장과 진화를 거듭했다. 정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오늘의 사설 정보지로 변모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