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과 섹슈얼리티의 절묘한 조화
순수함과 섹슈얼리티의 절묘한 조화
  • 오공훈
  • 승인 2005.03.05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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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키 '이상한 얘기'
하키의 음악은 처음 들었을 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하키의 보컬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에 묘한 관능적 섹슈얼리티가 섞여들어 가는 독특한 효과를 가져온다. 물론 이러한 하키의 독특한 개성은 유사이래 처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제인 버킨(Jane Birkin)이라든지 줄리 크루즈(Julee Cruise), 블랙 박스 레코더(Black Box Recorder)의 새러 닉시(Sarah Nixey)를 곧바로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같이 '순진무구한 섹슈얼리티'를 추구한다 하더라도, 하키의 세계는 약간 구분되는 지점이 있다. 제인 버킨, 줄리 크루즈, 새러 닉시의 보컬스타일 모두는 감춰질 수 없는 '여인의 향기'를 어쩔 수 없이 발산한다. 즉 이들의 보이스는 성숙한 여성으로서 단맛쓴맛을 다 본 입장에서, 이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길이 되고만 '순수의 시대'를 갈구하는, 다시 말해 철저하게 덧씌워진 '가면'의 목소리인 것. 그러나 하키의 목소리는 거의 완벽한 '아이'의 경지다. 여기엔 어떠한 인생역정도, 통속적인 감정의 표현도 담겨있지 않다. 때문에 하키의 천진난만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다분히 비현실적, 아니 차라리 초현실적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분위기로부터 성적 뉘앙스가 창조되는 것. 이웃 여인이나 길가는 아가씨로부터 느끼는 종류의 그런 구체적이 아닌, 잡을 수 없는 또는 잡히지도 않는 몹시 추상적인 형태의 성적 매력인 것이다. 이처럼 '미성년자'의 분위기를 전개하면서도 묘한 성적 뉘앙스를 흩뿌리는 하키의 보컬은 여러 복잡미묘한 생각을 들게 한다. 이렇게 순진무구한 보이스를 통해 관능성을 느끼는 나 자신이 혹시 '변태'가 아닐까? '롤리타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내 취향으로 보았을 때, 하키의 음악을 들으며 묘한 상상에 빠지는 건 오로지 내 탓만은 아닐 것이다. 하키는 그렇게 느끼도록 고의적으로 유도한다. 평상시에는 몰랐던 은밀히 감춰진 마음 한 자락을 일깨우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키의 특출한 재능이다. 하키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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