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국정운영 액션을 취하기 시작했다. 격주로 월요일 아침 라디오 연설을 통해 정국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 것. 이 대통령은 13일 첫 연설을 시작으로 라디오 연설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후 여당은 칭찬을 보낸 반면 야당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방송사의 ‘정치 중립’ 논란은 국정감사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기도 하는 등 정치권에 미치는 파장도 적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를 통해 국민을 향한 말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타이틀의 라디오 연설로 한가지 주제에 대해 10분 이내에서 정부 정책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말문 연 MB “다 같이 힘 모으자”
이 대통령은 13일 오전 7시15분부터 KBS 1라디오를 통해 홍보기획관 산하 연설기록비서관실에서 만든 연설문 초안을 수차례 고치고 문구를 직접 가다듬어 마련한 ‘말’을 꺼냈다.
첫 번째 연설의 요지는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고 의지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신뢰야말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정부부터 신중하게 대처하고, 국민 여러분께 있는 사실 그대로 모든 것을 투명하게 알리겠다”면서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말했다.
미국발(發) 금융쇼크에 따른 경제위기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인 시장을 진정시키고 위기극복을 위한 희망을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 것이다.
그는 또 “엊그제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굳이 말하기가 무엇해서 이야기한 적은 없었지마는, 내 아버지의 이야기다. 나의 아버지는 한 때 조그만 회사의, 요즘 말로는 경비라고 하지만, 수위로 일한 적이 있었다…”는 말로 ‘감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박형준 홍보기획관, 맹형규 정무수석, 이동관 대변인, 정용화 연설기록비서관, 이성복 홍보2비서관, 김두우 정무기획비서관 등 청와대 측근들과의 독회를 통해 완성해낸 ‘이명박식 언어’였다.
연설에 대한 평가로 극명하게 갈렸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대통령 연설이 국민에게 믿음을 주고 자신감을 심어 줬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고 조윤선 대변인도 “IMF 외환위기를 떠올리며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외환보유고 상황이 그때와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알렸다”고 논평했다.
이명박 대통령 격주 라디오 연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로 말말말
국정 드라이브 좌초현상, ‘대통령의 대화’로 친근하게 ‘흩어진 지지’ 수습?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나간 후 KBS 1라디오와의 인터뷰로 반론을 제기한 민주당 김진표 최고위원은 “전체적으로 대통령으로 해야 할 시점에 이야기를 했다”면서도 “왜 우리나라만 환율이 오르는가, 주가가 왜 이렇게 많이 떨어지는가에 대해 정부가 잘못 판단한 것, 정부가 실수한 것들을 솔직히 시인했어야 신뢰가 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야당의 반응은 싸늘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현실인식이 조금 현상과는 괴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현상인식이 안이하다. 책임의식이 결여됐다”고 말했으며 최재성 대변인은 “오직 국민이 잘 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일관했다”며 “대통령은 국민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바라기에 앞서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차고 넘치는 대통령 뒷담화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청와대는 “라디오 연설은 국민과의 소통을 더욱 원활히 하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설명하며 격주로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둘러싼 ‘잡음’은 청와대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우선 방송사의 ‘정치 중립성’이 우선 도마 위에 올랐다.
KBS는 “13일 연설은 내용 자체가 긴급한 민생 현안에 대한 것이어서 방송하기로 했다”면서 “그러나 앞으로 라디오 연설을 계속 편성할지는 추후 별도로 판단하기로 했다”고 정례 방송에 대한 입장은 유보하는 선에서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방송했다.
MBC와 SBS, CBS, YTN, MBN 등은 ‘방송사가 자율적으로 방송 여부를 결정해 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연설내용을 뉴스를 통해 보도했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물갈이’된 KBS 이병순 사장과 이사회가 내부 반발에도 불구,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민주당 서갑원 원내부대표는 이를 “공영방송 KBS를 이명박 정권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신호탄”이라 규정하고 “청와대가 기획하고 이병순 KBS사장이 연출한 첫 번째 합작품”이라고 질타했다.
KBS의 이 대통령 라디오 연설 방송은 KBS, EBS, 방송문화진흥회에 대한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야당은 “과거 정권 때 KBS가 방송의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 연설 방송을 거부한 적이 있다”며 “녹음된 대통령의 연설을 그대로 송출한 것은 청와대 입맛대로 방송을 한 것 아니냐”고 공격했고 여당은 “민주당에 충분한 반론 시간을 방송이 허락했기 때문에 편파적이지 않고 중립적이었다”고 받아쳤다.
이병순 KBS 사장도 “대통령 연설 방송은 청와대와 상관없이 KBS 자체적인 판단 아래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은 “경제 위기로 궁지에 몰린 ‘경제대통령’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재직 당시 뉴딜 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처음 실시한 ‘노변담화’를 벤치마킹해 국민을 상대로 편하게 이야기 했다”면서 “대통령이 ‘힘내자’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해도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해결 없이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KBS PD들이 긴급 총회를 열어 ‘공영방송 전파를 권력에 내준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촉구하고 ‘앞으로 진행될 대통령의 추가방송을 저지 하겠다’고 천명한 만큼 ‘경제상황에 대한 대통령 담화’임을 강조한 첫 번째 라디오 연설 이후 KBS의 선택에 따라 ‘정치 중립’ 여부도 판가름 날 것”이라며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역효과 난 ‘라디오’ 끌고 갈까
정가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에 대해 “국정 드라이브가 세계적인 경제위기 등으로 좌초되고 보수지지층 결집이 여의치 않자 친근하고 가까운 이미지로 ‘흩어진 지지’를 수습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 진정성이 청취자들의 귀에서 가슴까지 얼마만큼 다가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실제 라디오 연설 정례화 방침에 대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주간여론조사 결과, ‘기대된다’는 긍정적 의견(38.3%)보다 ‘기대되지 않는다’는 부정적 의견(44.2%)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대통령 지지율은 23.0%로 전주보다 3% 낮아져 ‘역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