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반환점을 돌았다. 증인채택 논란, 일정 조율 등으로 ‘숨차게’ 달려온 국정감사다. ‘국감’이라고 하면 의원과 피감기관 사이에 고성이 오가거나 여·야가 정쟁을 벌이느라 감사는 뒷전에 두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통과의례’적인 것으로 인식 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감장에서 두드러지는 모습들도 사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 국회와 피감기관의 신경전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20일간의 국감기간 동안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487곳을 감사해야 하는 의원과 보좌관들이 날밤을 새 ‘창’을 준비하거나 피감기관이 이를 막기 위해 뜬 눈으로 ‘방어막’을 마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국감이 ‘스타’를 발굴해내기 좋은 ‘토양’이 되는데다 누가 국감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향후 여야의 정치적 위치 선점을 달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야간 신경전, 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만만치 않다. 숨겨진 ‘국감’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파행’ ‘딴청’ ‘정치공세’ ‘불성실 답변’ ‘방만’ 등 온갖 ‘좋지 않은’ 어휘들이 사용되는 국감이지만 속내를 알고 보면 ‘국정감사’를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정보·증인에 목메며 시작한 ‘국감’
국감은 ‘스타’가 되기 좋은 ‘터’다. 정부기관 등에 대한 ‘공격’이 자유로운데다 본인의 능력여하에 따라 여론을 주도할 수 있어 세간에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초선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의원이 순식간에 정치적 기반을 다질 수 있던 데도 국감이 주효했다.
그러나 국정감사는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여야가 일정을 정하고 증인채택으로 신경전을 벌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감기관들이 자료제출을 꺼리는 등 ‘준비’부터 가시밭길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피감기관에 수많은 자료를 요청한다. 이번 국감에서는 특히 더했다. 10년 만에 정권교체 후 첫 국감인데다 총선에서의 경쟁적인 ‘물갈이’로 초선의원들이 대폭 늘어 자료요청도 엄청나졌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가을 정기국회에 2500여 건에 불과하던 자료요청 건수가 올해 4200건을 넘겼고 지식경제부도 상임위 의원 절반이 초선이어서 지난해 1100여 건의 자료요청이 올해는 2100여 건으로 2배나 늘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대한 자료요청도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1030건에 달했다. 모 의원은 혼자 230여 건의 자료요청을 하기도 했다.
향후 국정운영 주도권 싸움 전초전, ‘스타’ 발판될 ‘국감 총력전’
“꼬투리 잡히기 싫어” 피감기관들 여·야 막론 자료 제공엔 주저
이 같은 정보 모으기는 정국의 흐름을 주도할 ‘핵’를 얻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그러나 질은 의원들이 바라는 것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넘쳐나는 요구를 피감기관이 감당하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초선이 많아져 요청자료 중 대다수가 감사에 대한 기초자료에 몰려 민감한 사안에 대한 부분이 아예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는가하면 서울시에 대한 국감에서 나타났듯 가지고 있는 정보자체가 ‘엉터리’이거나 피감기관이 ‘핵심자료’를 넘기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자료를 원해도 받을 수 있는 자료는 한계가 있다. 특히 여야의 공수가 바뀌어서 민감한 자료들에 대한 노출을 자제하고 있다”며 “피감기관의 입장에서 볼 때 여권이건 야권이건 ‘감사’를 하는 입장이다. 때문에 최대한 자료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한다.
의욕과는 달리 ‘정보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괜찮은 자료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하소연이다.
‘총알’이 되어줄 ‘정보’를 얻는 일이 삐거덕거리게 되면서 의원들의 국감자료는 기존에 지적했던 사안들을 크게 넘어서지 못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일이 많다. 이미 수차례 국감에서 다뤄진 자료를 재탕 삼탕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여야의 ‘정치 공세’도 언론 보도를 들춰낸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세치 혀로 국감장 좌지우지
피감기관을 궁지로 모는 ‘정보’만이 ‘국감 총알’은 아니다. 20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국회 13개 상임위원회가 정부 부처 및 산하기관 487곳을 감사해야 하는 만큼 ‘알차게’ 준비되기 어렵다는 ‘한계’에 전문성 혹은 정치력으로 일군 ‘언변’이 판세를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때문에 총알이 약하거나 약소정당에 속한 의원들은 ‘기세잡기’에 주력한다. 피감기관이 제출한 자료나 국감에 임하는 태도를 문제 삼으면서 ‘초반 기세’를 해당 의원이 주도하는 분위기를 일부러 만들어 낸다는 것.
피감기관이 낸 자료에서 오타를 잡아내거나 조는 사람을 지적하는 것은 ‘기본적인’ 부분이다. ‘딴청’, ‘불성실’ 등을 강조, 피감기관의 답변태도를 문제 삼거나 답변 중 문제되는 발언을 꼬투리 잡아 원하는 답변을 끌어내는 등 능수능란한 ‘설전’이 오간다.
이 와중에 증인이나 피감기관에 대한 고압적인 의원의 태도가 도마에 오리기도 한다. 실제 이번 국감기간 중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민석 의원은 의사발언을 신청해 “증인들이 죄인으로 나온 게 아닌데 마치 피고인을 취조하는 분위기”라며 “협박하는 듯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로 일부 의원에게 ‘경고’했다.
톡톡 튀는 이색행보로 이목을 끄는 의원들도 있다.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서 “여야가 마주 보고 피감기관장이 가운데에 앉아 있는 국감장 좌석배치로는 여야간 말싸움이 잦아지는데다, 피감기관장은 편하게 앉아있는 반면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은 고개를 억지로 돌려야 한다”며 위원장석 옆 단상에 서서 질의하는 ‘기립 질문’을 시도했다.
자료 오타 잡아내기, 조는 사람 지적하며 국감장 ‘기세잡기’ 신경전
톡톡 튀는 이색행보, 의욕 넘치는 ‘호랑이굴 들어가기’로 시선집중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사이버 밀수 실태를 강조하기 위해 직접 인터넷에서 반입금지물품 구입을 신청했다. 통관 과정에서 이 물품이 제대로 걸러지는지의 여부를 확인, 국감에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여야 ‘국감 스캔들’ 주의령
기껏 잡은 ‘기회’도 ‘스캔들’ 한번이면 와르르 무너진다. 지난 17대 국회 가을 국감에서 지방으로 현지 국감에 나선 의원들이 피감기관으로부터 향응·접대를 제공받아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때문에 국감 중반을 넘기면서 여야를 막론하고 ‘스캔들 주의령’이 떨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정감사에 임하는 한나라당의 자세’라는 제목의 경고문을 상임위별 소속의원들에게 발송했다. 홍 원내대표는 또 “해외시찰 등 국감 업무 이외의 별도 행사를 원천 금지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민주당도 ▲평일골프 금지 및 국감기간 주말골프 금지 ▲해외시찰 금지 ▲피감기관의 모든 접대 금지 등 ‘국감 기간 중 의원 행동수칙’을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