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총리 개헌 발언, 설설(設設) 끓고 있는 개헌 논의
이해찬 국무총리가 3일 관훈클럽에서 정치권 일각에서 거론되는 개헌논의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며 4년 중임제를 포함한 개헌 추진에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총리는 또 “올해 개헌 논의는 이르다”면서 논의시기를 내년 하반기로 미루기는 했지만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병폐를 노골적으로 언급하며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리의 이러한 ‘개헌논의 발언’이 정치권에 민감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여야가 4월 임시국회에서 개헌 문제를 안건으로 다루는 등 ‘개헌론’이 향후 본격적으로 점화될 가능성에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이 실효 되더라도 개헌당시의 현임 대통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헌법128조 2항이 개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점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개헌 논의’의 불씨가 점화되자 헌법을 학술적으로 연구, 개헌에 대비하려는 국회의원 연국단체가 최근 결성됐다.
이 총리, "대통령 5년 단임제 적절치 않다"
이 총리는 3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내년 상반기 지방자치선거가 끝나고 하반기에 가면 각 당이 대통령 선거 준비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며 "2006년 하반기에 논의해도 시간이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또 "정부가 3년차에 들어가는 올해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개헌논의로 끝나는게 아니라 정치권 전체가 대선 분위기로 가는 상황이므로 국가적으로 이르다고 본다"며 "국가의 중요한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해 연내 개헌 논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현재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대통령)5년 단임제는 우리가 병폐를 많이 겪었고,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면서 "4년 연임제로 하거나 다른 형태로 바뀌는게 타당하다고 본다"고 개헌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시사했다.
이와 함께 행정복합도시에 관련해 복합도시가 건설되면서 서울은 대통령 정부, 충남은 총리 정부가 될 것이란 비판이 있다는 지적에 이 총리는 “행정의 비효율이 어느 정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무회의를 월요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도시 건설효과에 대해서는 "지역균형발전에는 획기적 전기가 왔으나 이동인구가 5만명 수준이어서 수도권 과밀해소에 대해서는 상당히 더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전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8조5000억원으로 법에 명시돼 있고 이 정도면 적절하리라 생각되며 한도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또 과천청사 활용방안에 대해 ▴국제적 연구개발(R&D)센터를 유치 ▴서울 소재대학 이전, ▴인근 지역을 포함한 개발계획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성남·판교에 대해서도 첨단물류유통센터로 발전시키자는 제안들이 있다"고 소개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에 대해 “옛날 기준 적용시 그 당시에는 이런 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됐으나 현대 사회의 기준으로 보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라며 “경제 불씨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양해해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17대 대선 출마 의향과 관련해선 "총리가 대선에 기웃거리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다 그 연장선성에서 하는 일로 오해받아 정부를 이끌어갈 수 없다"며 국정운영에 전념할 뜻을 피력했다.
이 총리, ‘개헌’ 불씨로 타오르는 설(設)
이 총리의 ‘개헌’ 논의 절차와 의견을 피력한 것은 최근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개헌론을 사전에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 논의가 공론화 될 경우 정국이 결국 차기 대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 차기 대권주자들이 개헌 논의를 확신시키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정책집행(政策執行)에 일관성이 없어질 수 있는 문제점과 함께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국정과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올해 개헌 논의가 시작되면 정치권 전체가 대선 분위기로 갈 수 있다”는 이 총리의 이같은 지적은 노 대통령을 비롯한 이 총리 처지에서는 정국이 가능한 한 대권 분위기로 넘어 가지 않고 국정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 총리가 사전에 개헌 논의 시점을 2006년 하반기로 제시한 것도 개헌론이 확산되면 이슈로 선점하겠다는 의도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문제점을 이미 지적했고 4년 연임제를 제시한 적도 있다.
이 같이 노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인기를 회복하면 개헌을 통한 재선 도전 이라는 카드를 남겨두고 있다. 개헌당시의 현임 대통령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헌법128조 2항과 함께 실현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노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하면 정국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이익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 총리는 "개헌안 내용은 복잡한 것은 아니며 국민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이 총리의 개헌 언급은 다목적인 의미가 담겨 정치적인 포석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날 이 총리의 발언 중 여야의 시각으로 볼 때 개헌 논의 시점을 '내년 하반기'로 명시했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7일과 지난 2일 김덕룡 원내대표,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제안한 개헌론에 대한 여권 핵심부의 공식 답변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와 박세일 정책위의장,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열린우리당 정세균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부가 일제히 개헌 논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서는 등 여야 간에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부분이다.
남 수석부대표는 지난달 27일 “4월 헌법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며 “올해가 개헌 논의의 적기다”라고 말했고, 정세균 원내대표도 최근 “연말이든 내년이든 개헌 논의가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4월 임시국회에서 원론적이나마 여야 간에 개헌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여야는 각론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4년 중임 대통령제' 방식에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는 분위기다.
이처럼 정치권이 개헌론에 집착을 보이는 것은 대선과 총선,정계개편 등 역학관계를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으로 풀이 된다.
개헌에 대해 여권에서는 정·부통령제를 도입,대통령·부통령 후보를 영남과 호남,혹은 호남과 충청 출신구도 등으로 배합하면 필승할 수 있다는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특히 4년 중임제의 경우 개헌 대상에 현직 대통령을 포함시킬 경우 노무현 대통령에 게 연임의 기회가 열릴 수도 있다는 것.
한나라당으로서도 '전국정당화'의 카드로 정·부통령제를 구상해 볼만하다.
하지만 개헌 문제는 내년 지방선거 결과,차기 대권주자들의 이해 관계,정치적 역학구도,정계개편 등 정치권의 복잡한 사정과 맞물 려 있어 실현되기까지 적잖은 난항이 예상된다.
또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총리의 개헌논의 발언은 전략적으로 짜여진 발언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우선, 여당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 위해 이 총리가 총대를 메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치권은 현 시점을 이미 권력누수 현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국정은 분권형으로 권력이 분산됐고, 차기 대선을 겨냥한 각종 여론조사는 벌써부터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또 정치권에서 어느 정도 개헌 논의가 싹트고 있어 이를 여권이 먼저 선점하자는 의도일 것이라는 풀이다. 특히 지금의 총리는 사실상 행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무형 수장인 만큼 이슈 선점을 통한 강공책을 마련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또한 정황상 내년 6월로 예정된 지자체 선거 이후 곧바로 대선으로 들어가게 되는 만큼 대선 구도를 겨냥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예컨대 이 총리가 대선 구도에 대한 이슈를 선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당이 야당보다 먼저 형세를 갖추고 전투를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 총리는 대권에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어찌 됐든 본인의 이미지 구축에도 나쁠 것이 없다는 전략적 접근이 포함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논의가 점화되자 헌법을 학술적으로 연구, 개헌에 대비하려는 국회의원 연구단체가 최근 결성됐다.
여야 의원 17명이 참여한 ‘국회 선진헌법연구회’에는 한나라당 강재섭 의원을 비롯해 자민련 이인제 의원과 국회 법사위원장인 최연희 위원장이 참여했고, 이상득·이상배·김형오·맹형규 의원 등 중진과 김태환·주호영·최경환 의원 등 지역 초선의원도 일부 가세했다.
‘국회 선진헌법연구회(대표의원 김재원)’는 개헌논의의 정치적 거품을 빼고 의원들의 선진 헌법에 대한 연구나 토론, 정책개발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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