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 정씨, 자신 거주하는 고시원 불 지르고 사람들 뛰쳐나오길 기다려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살기가 싫다” 투숙자 13명 흉기로 수차례 찔러
고시원 방값·핸드폰 요금 못 낼 정도로 최근 금전적 압박 받아 스트레스
발견된 정씨 노트 “난 태어나서는 안 됐다. 다 죽여 버리겠다” 신변 비관

또다시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는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다.
자신이 거주하는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투숙자들에게 흉기를 마구 휘둘러 6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범인 정모(31)씨.
그는 경찰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그래서 살기가 싫었다”고 말해, 지난 8월 발생한 강릉 여공무원 살해 사건의 용의자와 같은 대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앞서 발생한 강릉 사건과 마찬가지로 정씨 역시 생활고로 금전적 압박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20일 서울 강남 논현동의 D 고시원에서 사회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는 흉기난동·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사건발생 당일에 범인인 정씨를 검거, 경찰조사와 함께 지난 23일 현장검증까지 마친 상태다.
또 경찰은 정씨에 대해 정신감정을 의뢰하기로 결정해 정씨는 공주정신치료감호소로 옮겨져 한달여에 걸친 정신감정을 받은 뒤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월요일 아침의 참극
사건이 발생한 20일 오전 8시15분 고시원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이날의 참사는 정씨가 고시원 3층 자신의 방 침대에 불을 지르면서 시작됐다.
그는 이미 준비해 온 휘발유를 침대에 뿌린 뒤 불을 붙였고, 순식간에 불과 연기가 고시원을 뒤덮었다.
고시원은 4층 건물의 3, 4층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투숙자들은 갑작스런 불에 놀라 “불이야”를 외치며 앞다퉈 밖으로 나가기 위해 복도로 뛰어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날은 월요일 아침으로 이 고시원에 사는 69명의 투숙자 대부분은 인근 영동시장과 식당에서 일하는 중국동포여서 새벽 근무를 마친 뒤 모두 불이 난 시각까지도 잠이 들어 있던 상태였다.
잠에서 깨어날 세도 없이 불과 연기에 놀란 이들 투숙자들은 방을 뛰쳐나왔고, 정씨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들을 향해 잔혹하게 흉기를 휘둘렀다.
정씨는 3층에 이어 4층으로도 올라가 흉기를 휘둘렀고 그의 무차별 공격에 투숙자 13명이 흉기에 찔려 이 중 6명이 안타깝게도 사망하고 말았다.
경찰에 따르면 사망자 중 1명은 정씨의 흉기와 불길을 피하려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결국 정씨는 4층 창고에 숨어 있다가 고시원 총무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검거됐고, 이날의 사건은 무고한 희생자 6명을 낳으며 마무리됐다.
범행 3년 전부터 계획
체포 당시 정씨는 검은 전투복 차림에 검은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또 몸에 가스총과 흉기 3점을 소지하고 있어 계획된 범행임을 보여줬다.
정씨는 경찰에서 “세상이 나를 무시한다. 그래서 살기가 싫었다”고 진술해 그가 불특정 다수를 노리고 범행을 저질렀음을 보여줬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2002년 서울에 상경한 뒤 특정한 직업 없이 식당 배달, 주차요원 등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엔 휴대전화 요금, 고시원 월세 17만원도 내지 못할 만큼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아왔으며, 향군법 위반으로 인한 벌금 150만원까지 밀려있던 상태였다.
또 민방위와 예비군 훈련을 건너뛰어 향군법과 병역법 위반으로 수배 중인 상태여서 심리적인 압박감도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씨는 과거 중학교 재학 시절에 한 차례 자살을 시도한 바 있었으며, 그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씩 극심한 두통에 시달려왔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정씨의 진술에 따르면 사건 당일도 그는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미 정씨는 범행도구를 지난 2004~2005년 동대문 등에서 구입해 놓고 오랫동안 범행을 준비해왔다.
또 22일 정씨의 고시원 방안에서 발견된 그의 노트에도 정씨가 이미 범행을 오래전에 계획했음을 보여줬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노트 4권 중 3권은 심하게 불에 타서 복원이 불가능하고, 1권은 비교적 덜 타서 복원이 가능했다.
경찰이 확보한 노트에는 정씨의 배달원 업무 내용과 근처 건물들의 약도 등이 적혀 있었으며, 특히 “세상 살고 싶지 않다. 나는 태어나서는 안 됐다. 존재 이유가 없다. 다 죽여버리겠다. 사장들 걸리면 다 죽을 줄 알아라. 이제는 마무리 할 때가 됐다”는 등 정씨가 신변을 비관하고 범행을 각오하는 메모가 많이 담겨져 있었다.
‘사회적 외톨이’가 문제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은 없는 것일까.
많은 범죄전문가들은 이 부분을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 특성상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떠한 방법으로 범죄를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검거가 된 범죄자들도 그 동기와 목적이 없기 때문에 그 행동패턴이나 성격 등을 분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박형민 박사는 “사회적 복지 제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을 충고했다. 그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자’들은 대부분 지킬 가족도 집도 돈도 사회적 지휘도 없다. 이들에게 지켜야 될 그 무엇이 있으면 이런 범죄들은 줄어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일본의 ‘묻지마 범죄’ 연구 결과, 이들 범죄자들 대부분은 사회로부터 소외된 ‘은둔형 외톨이’로 드러났다. 이번에 발생한 강남 논현동 고시원 흉기난동·방화 사건 범인 정씨도 홀로 서울에 상경해 가족도 없이 외롭게 지내는 사회적 외톨이였다.
박 박사는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현대 사회는 이웃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갖지 않는 사회가 됐다”면서 “이런 소외되거나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친구가 되어주고 조언을 주기만 해도 범죄를 예방을 할 수 있다”며 우리부터가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