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의 일정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국감은 끝나지 않았다. 쌀직불금 파문 등 국감에서 일어난 ‘불씨’가 그대로 살아 ‘국정조사’로 이어지며 제2의 국감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달 10일부터 쌀 직불금 부당 수령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를 실시키로 하고 전략 수립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은폐 의혹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인 반면 민주당은 현 정권의 부당 수령자를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외에 경제 위기와 관련,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퇴, 경제팀 교체 등 책임론 공방도 국감 이후 더욱 치열해지고 있으며 ‘막말’로 물의를 빚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문제 등 일부 장관에 대한 경질론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20일 동안 진행된 국정감사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정치권에는 국감의 그림자가 아직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쌀직불금 논란은 이제 시작
국감에서 불거져 이봉화 보건복지부차관의 사퇴로 이어진 쌀 소득보전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는 진화는커녕 날로 그 위력을 더해가고 있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며 11월10일부터 12월5일까지 국정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여야는 국정조사 합의문에서 “제도상의 허점과 허술한 관리로 인해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했던 쌀 직불금의 집행 실태와 책임 소재를 규명하겠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칼끝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의 은폐 의혹에 화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4일 감사원이 공개한 ‘쌀소득보전 직접지불제 운용실태’ 감사결과에 따르면 2006년 본인 또는 가족이 쌀소득보전직불금을 수령한 영농 외 직업 종사자는 총 17만3497명이었다. 이중 공무원 3만9971명, 공기업 임직원 6213명,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2143명, 금융계 종사자 8442명, 언론계 종사자 463명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감사결과가 참여정부 때인 지난해 3~5월 실시된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 7월26일 전윤철 감사원장을 비롯해 6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이 감사 결과의 비공개를 결정했고 약 1년3개월 동안 은폐됐었다.
국감 넘어 국감, 국감 후 여야 ‘정쟁의 덫’…쌀직불금 국정조사·연말개각설
한, 감사원 은폐 의혹 넘어 참여정부 정조준…민, 사회지도층 도덕성 초점
지난해 7월은 참여정부가 한미 FTA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를 받으려 하던 때였으며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 은폐의혹 뿐 아니라 당시 정부가 대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 공무원들의 쌀직불금 부당수령 문제를 일부러 은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참여정부의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지난해 감사원이 감사를 종료하고도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것이 모든 의혹의 출발점”이라며 “대선을 앞두고 농심을 자극해 표심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정권 차원에서 쌀 직불금 파동을 덮었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주장했다.
여권 일각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일며 여야간 갈등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노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 2.0’을 통해 “이번 사안이 내가 나갈 사안인가”라면서도 “국회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출석 요구를 하면 못 나갈 이유는 없다”고 정면대응함에 따라 정치권이 증인 채택 논란은 주춤한 상태다.
노 전 대통령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니 오라고 하면 가야한다”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어 지난해 6월 감사원 감사결과 보고 은폐 의혹에 대해 “쌀 직불제의 제도적 문제점과 대책에 관해 보고를 받은 것이지 부당수령자 비리문제에 관한 보고를 받은 일이 없다”며 “은폐할 만한 일을 보고 받지 않았다. 은폐할 이유도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민, 성긴 그물 던진다
민주당은 이번 국조의 초점을 사회지도층의 ‘도덕성’에 맞춘다는 전략이다. 정세균 대표는 “사이비 농사꾼들 때문에 진짜 농민들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며 “농업과 농민들을 위해 최소한의 도움이라 할 수 있는 직불금을 중간에서 부당하게 가로챈 유력인사들, 고위공직자들, 자산가들은 정말 대오각성하고 책임져야 한다. 모든 명단을 명명백백하게 공개해 철저히 책임을 추궁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도 “이번 사태의 핵심은 농사짓지 않는 사람들이, 게다가 고위공직자를 포함한 공무원들이나 전문직업인들 또 고소득자들이 농민의 피와 땀의 대가를 빼앗아간, 그리고 국민의 세금을 갈취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정치권은 민주당의 대응이 ‘고소영·강부자 정권’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부당수령자명단 공개는 부정수령 의혹이 나타난 여권에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비도덕성에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

민주당은 또한 “제도개선을 통해 유사한 일도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은 국정조사를 적극 추진하는 등의 노력과 제도개선을 위해 필요한 입법조치 등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발판을 닦았다.
여야가 서로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번 쌀직불금 국조의 파문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감사원 간부들의 자진 사퇴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쌀직불금 수령 실태 1차 전수 조사의 결과가 국정조사 특위에 넘겨져 정치인·고위 공직자·언론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의 명단이 공개되면 부당수령자에 대한 도덕성 문제는 물론 법적인 처리문제, 사회 계층간 갈등까지 그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벼랑에 선 위기의 장관들
국정감사 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몇몇 장관들에 대한 사퇴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
국감 전반을 흐른 ‘경제위기론’으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코너에 몰린 상태다. 국회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세계적 금융위기 상황에서 유독 우리나라가 흔들리고 있는 이유를 물으며 강 장관을 매섭게 몰아쳤다.
여권 지도부는 경제팀을 존속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야권은 강 장관의 사퇴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지난날 27일 국내 은행 외화 차입 지급보증안에 대해 “조건없이 처리해야 한다”면서 “이 안이 처리되면 강만수 장관은 자리에서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지금까지 경제팀이 시장이나 국민에게 불신을 받은 점을 인식해야 한다”면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얻어 경제난국을 헤쳐나갈 팀이 들어오지 않으면 이명박 정권은 매우 힘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747 공약 등 경제정책의 완전한 실패와 경제 위기를 들먹이며 “이명박 대통령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국정과 내각의 전면 쇄신을 단행해야 한다”고 ‘내각쇄신론’을 들고 나왔다.
여야 ‘盧 증인’ 신경전…“직불금, 은폐할 일 보고받지도 은폐한 일도 없다”
위기의 장관들…막말 유인촌 사퇴 압박, ‘경제부총리’ 꿈꾼 강만수 전전긍긍
막말파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사퇴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 장관은 지난달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감에서 자신을 촬영하는 기자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사진 찍지마, XX. 성질이 뻗쳐서 정말…”이라고 거친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파문이 확산되자 이틀 뒤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유 장관은 “국정감사 정회 직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격적 모독이라고 느낄 수 있는 발언을 듣고 모욕감에 화가 난 상태에서 이를 참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부적절한 언행을 보였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공직자가 취재진에게 적절하지 않은 언행을 보인데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예고없이 민주당을 찾아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에게 “상황을 해명하러 왔다”며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는데 내가 과했던 것 같다. 이해해 달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야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이회창 총재는 유 장관에 대해 “장관이 국회에서 쌍욕을 한 것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런 품격을 가진 사람을 장관으로 두어서는 안된다. 이명박 정권의 장관으로는 맞을지 몰라도 국민의 장관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 정권의 장관들이 참 큰 일”이라며 “임명 초기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중간에 옷을 벗고 나간 장관도 많은데 최근의 일을 보면 한두 사람 그만둬서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