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를 만든 세 여인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있기까지는 세 명의 여인이 있었다. 첫 번째는 그에게 자신감, 추진력, 경계 허물기 같은 품성과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준 그의 어머니다. 스탠리 앤 던햄은 미국 절반의 지역에서 흑백 간 결혼이 금지됐던 시절 백인 여성이면서 케냐 출신 흑인 남성과 결혼해 오바마를 낳았으며 이후 싱글맘으로 그를 키웠다.
그녀는 아프리카·남아시아를 돌며 연구와 봉사활동에 매진한 박사학위를 받은 저명한 인류학자이자 빈곤층을 위한 소액대출 운동을 한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앤은 트인 사고와 행동하는 지성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오바마에게 자연스레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법을 알려줬다.
외할머니인 매들린 던햄은 헌신적인 애정 줬다. 매들린은 딸이 혼혈아를 낳자 외손자의 양육을 위해 하와이은행에서 비서 일을 시작했으며 이후 그녀는 대학 졸업장도 없이 여성으로서는 처음 이 은행 부행장에까지 올랐다.
‘새 옷을 사지 않고 차를 바꾸는 것을 미룬’ 백인 외할머니의 노력으로 오바마는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오바마는 지난 8월 전당대회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오늘 밤은 외할머니를 위한 밤이기도 하다”는 말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오바마의 인생에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그녀는 선거 유세 기간 중 타계했다. 오바마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유세도중 이날 타계한 외할머니 매들린 던햄을 언급하면서 “할머니는 전 미국의 조용한 영웅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름이 신문에 실리지는 않지만 그들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열심히 살고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여인은 그를 향해 ‘충분히 검지 않다’고 비판하는 이들을 향해 정면승부를 건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가 될 부인 미셸 로빈슨 오바마다. 시카고의 노동자 거주지역에서 나고 자란 전형적인 미국의 도시 흑인인 미셸은 오바마의 인생의 동반자이자 그가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해 아내 미셸에게 물어본다”고 말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최측근 참모다.
미셸은 프린스턴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로 앤이 오바마에게 심은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게 도운 ‘현실론자’다. 그녀는 오바마의 대선 출마에도 달가워하지 않았으며 성공 가능성을 꼼꼼히 확인한 뒤에야 그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람몰이를 할 때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국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해 ‘애국심 논란’에 휩싸였으며 6월 초 오바마가 경선승리를 선언하던 무대에서 주먹을 마주치는 ‘피스트 범프(fist bump)’를 해 ‘테러리스트의 주먹질’이라는 비꼼을 당했다. 또 보수언론으로부터 “불만에 찬 흑인 여성” “오바마의 고통스러운 반쪽”이라고 공격받았다.
그러나 미셸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의 전사자·부상자 가족들을 만났으며 여성 노동자들을 방문하는 등 틈새를 공략해 나갔다. 그의 능력은 갈수록 빛을 더해 청중 동원 능력으로 돌아왔으며 8월말 전당대회에서는 뛰어난 화술과 세련된 매너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오바마의 수석전략가인 데이비드 액슬로드로부터 “정치인이 아닌 미셸은 선거운동에 익숙해지는 기간을 거치면서 스스로 많은 것을 배워 피스트 범프나 ‘애국심 발언’ 같은 것을 피하라는 조언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치를 좋아하지 않는 미셸은 평소 “엄마로서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도 두 딸을 위해 일주일에 이틀만 선거운동을 하고 둘째 날 밤은 반드시 집에서 딸들과 지내겠다는 약속을 지킬 정도로 자녀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로 알려졌다.
오바마의 참모들은 그가 정치 일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변호사로서 쌓아온 경험과 능력을 아는 이들은 그가 여성과 교육, 의료보험 개혁 문제 등의 부분에서는 ‘행동하는 퍼스트 레이디’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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