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의 원내사령탑인 홍준표 원내대표가 ‘한미 FTA’의 무게에 허덕이고 있다. 청와대의 연내처리 압박과 야권의 반발, 당 내의 신중론까지 겹쳐 홍 원내대표를 짓누르고 있다. 전 대통령들의 ‘조언’도 곱게 들을 처지가 아니다. 결국 홍 원내대표는 한미 FTA 조기 비준에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에 한미 FTA에 대한 보완대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보완대책을 제출하면 ‘반대할 구실’을 누르고 야당과의 합의를 이룬 후 연내 처리를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마저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결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거대여당 원내대표에 선출되며 ‘홍반장’으로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선보였던 홍 원내대표, 그러나 이제는 ‘골칫덩이’를 안고 고심하고 있다.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연내 처리 강행하라는 청와대, 말 안 듣는 野
여야 물러설 곳 없는 팽팽한 접전, 홍준표 마지막 제안 “보완책 마련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한미 FTA 비준에 관련한 공을 민주당에 넘긴 것, 문제가 되는 사안이 있으면 보완대책을 마련해 주장하라는 것이다.
“보완책이나 마련하고 말 해”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팽팽히 맞섰다. 한나라당은 청와대와 발 맞춰 조기 비준을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선(先)대책을 요구하며 버텼다.
홍 원내대표는 나름의 타협점이자 최종 승부수를 던졌다. 민주당의 선대책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민주당이 보완대책을 마련하면 최종 대책을 협의해 비준하겠다는 것이다. 홍 원내대표는 12일 “민주당에 보완대책을 요구했다. 야당이 주장하는 대책을 받아 국가 재정적으로 가능하고 국가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는 한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홍 원내대표는 “야당이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게 선 대책마련인데, 이 명분을 없애겠다는 것”이라면서 “선 보완대책을 적극적으로 논의해 한미 FTA와 관련된 국력 소모를 하지 말자는 뜻”이라고 합의 처리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연내 비준안 처리 입장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는 “야당이 만약 보완책을 내놓지 못해 비준안처리가 늦어진다면 전적으로 야당의 책임”이라며 “결정권을 야당에 주는 것으로 이렇게 해서도 야당이 보완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공을 던지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 FTA의) 무리한 추진은 옳지 않다”면서도 “연내비준 원칙과 합의처리 원칙에는 변함없다. 미국에서 (FTA 비준을) 언제 하든지 우리는 국가로서 체결한 조약을 조속히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원내대표는 비준 시기에 대해서는 “보완대책만 마련하면 시기는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는 “야당이 보완책을 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도 보완대책을 조속한 시일 내에 내놓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없이 보완책을 주장해 온 만큼 야당에서 복안이 없다면 그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무려 1년 4개월 동안 보완대책 마련을 주장해온 정당이 아직도 보완대책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야당이 말하는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었다면 말만 쏟아낸 정당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압박카드 통할까? 말까?
정치권은 최대한 야당과 협의해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홍 원내대표의 마지막 제안이 야당에 충분한 압박카드로 작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다. 당장 야당이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13일 홍 원내대표 한미 FTA 보완대책 제시 요구에 대해 “적반하장이자 국민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이 총재는 “새로 들어설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한미 FTA에 대해 강하게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먼저 비준하는 것은 손발을 묶는 어리석은 일”이라며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신중을 기했다.
그러면서 이 총재는 “여당이 FTA로 입게 될 손실 분야에 대한 보완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야당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면서 “이는 자기들의 숙제를 국민들에게 미루는 적반하장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보완대책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마땅한 태도”라며 “국민이 여권에 보완대책을 내놓으라고 숙제를 냈는데 오히려 국민을 향해 숙제를 하라고 하는 것과 같아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직접적인 압박 대상이었던 민주당은 흔들리고 있다. 홍 원내대표가 준 ‘기회’에 민주당은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 논의를 원점으로 돌려놨다.
대안이라고 해봤자 ‘농업·의약품·영화산업 분야 등 피해산업 대책을 점검하고 금융위기 이후 달라진 경제상황을 고려해야한다’는 큰 그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구체적인 대책 방안에 대한 논의는 “지난 10일 워크숍에서 당내 특위를 만들어 논의하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다.

여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장한 ‘재협상론’이 당내에 급속히 퍼지며 당론이 분열되고 있다. 심지어 당 지도부에서도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안 중 하나가 노 전 대통령의 (재협상)안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비준 시기 논의보다 재협상해서 얻어 들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라는 말이 나오는 등 ‘대책’보다는 ‘재협상론’으로 기울고 있어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둔 여당과의 협상난항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洪 향해 사방에서 조여 오는 손
홍 원내대표의 제안에는 본인의 좁아진 정치적 입지와 청와대의 압박이 있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에서 26일까지의 미국·남미 장기간 해외순방을 하루 앞두고 박희태 대표와 홍 원내대표, 안경률 사무총장,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불러 조찬회동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 FTA 조기 비준에 대해 “연내에 처리하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국익에 부합한다”면서 당을 압박했다. 다만 처리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당에서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가 “연내비준 원칙에 변함이 없지만 야당이 선(先)보완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야당이 추가 보완대책을 마련해 오면 이를 바탕으로 여야가 합의해 처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좋은 생각”이라고 호응했다.
선(先)대책 방어막 친 야당 명분 없애고 비준안 조속히 처리한다
홍준표 압박하는 트라이앵글 靑·野 그리고 전 대통령 ‘훈수정치’
이 대통령은 한미 FTA 비준안 처리 외에도 민생개혁법안 등을 들며 “개혁을 한다면서 어설프게 법을 바꾸면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가 올 수 있다”면서 “개혁 법안을 만들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취지를 살려서 법안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홍 원내대표가 “아직도 정부가 제출해야 할 법안 중에 미제출 법안이 많다”고 보고하자 “다음 주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파우치 편으로 보내오면 해외 순방중이라도 결재해서 보내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당 지도부에 “어려운 시기일수록 당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게 되면 행여 엇박자로 비쳐질 수 있으니 당에서 한목소리가 나올 수 있도록 해 달라”면서 “(해외순방으로) 부재중에도 당·정·청이 잘 협의해 현안을 잘 대응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당부였지만 실상은 당에 대한 ‘압박’이라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재협상론 군불 지피는 ‘사이버상왕’
전 대통령들도 거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을 통해 연일 한미 FTA 재협상론을 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0일 ‘한미 FTA 비준, 과연 서둘러야 할 일일까요?’라는 글에서 “한미 간 협정을 체결한 후에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우리의 입장에서도 협정의 내용을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데 이어 ‘한미 FTA를 살리자고 한 말입니다’라는 글을 통해 자신의 재협상론을 “FTA를 죽이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제대로 살리자고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재협상을 요구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하며 “정부가 재협상에 나서게 되면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지고 정부여당은 난감해질 것이며 반대로 그것이 두려워 우리가 재협상을 거부할 경우, 미국이 비준을 하지 않으면 결국 한미 FTA는 사망하고 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미 FTA를 무산시키고 싶지도 않고 미국의 체면도 무시하기 어려워 정부는 재협상을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결국 재협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실제로는 재협상을 하면서 추가협상이니 하는 이름으로 바꿔 체면도 살리고 국민의 반발도 무마하려고 할 것”이라면서 “그러다보면 협상은 허겁지겁 얼렁뚱땅 할 수밖에 없고 제대로 따지고 챙기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재협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미 FTA를 살리기 위해서는 재협상이 불가피하더라도 제대로 협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한미 FTA 비준 논란에 대해 “미국 자동차 3사가 무너질 경우 500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 미국으로서는 사활의 문제”라며 “오바마 당선자가 자동차 문제에서 쉽게 물러날 수 없는 만큼 어떤 방식을 택하든 해결해야 나머지 문제도 풀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시 한 번 ‘FTA’ 질러!
이 같은 전 대통령들의 ‘훈수’에 홍 원대대표는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치적 중 가장 큰 치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부정하면서 정략적으로 분쟁으로 몰 가고 있다”면서 “이는 이명박 정부를 곤란하게 하겠다는 의도 외에는 없다”고 소리 높였다.
그는 “언제부터 노 전 대통령이 미국 입장을 고려하는 분이었나”고 비난하며 “자신이 한미 FTA를 체결할 때 뭐가 잘못됐는지 스스로 밝혀야 하는 것 아니냐. 잘못을 고백하고 고쳐달라고 하는 게 순서”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당·정·청의 협력을 ‘경고’할 경도로 정부와 여당이 안정되지 않은 데는 홍 원내대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지난 9월 당 내 퇴진 요구에 “나는 세력이 없다. 12년 비주류 끝에 주류가 된 줄 알았더니 여전히 나는 비주류”라고 말할 정도로 크게 당 내 ‘위치’에 타격을 입은 후 좀처럼 재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친이계 의원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여러 압박에도 불구, 홍 원내대표는 14일 “이미 노무현 행정부 당시에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부가 내부적으로 59차례에 걸쳐 피해계층에 대한 1차 FTA 대책회의를 했다. 그리고 올해 4월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2차 보완대책이 나왔다”며 “추가로 보완대책이 야당 입장으로서 있으면 참고해서 3차 보완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그렇게 정리를 하게 되면 야당이 FTA를 반대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다”고 야당을 강하게 압박하며 다시 한 번 ‘한미 FTA 비준안 처리’에 드라이브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