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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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정세균 ‘비공개 회동’

▲ “두 손 꼭 잡고”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비밀회동이 정가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비공개로 만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여당과 제1야당의 수뇌가 배석자없이 한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추측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의 수사와 관련, 민주당의 고민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빅딜’의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회동 사실이 알려지자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물밑거래’로 비쳐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고 민주당은 ‘김민석 사태’에 편법을 사용하려 했다는 의혹 섞인 시선에 ‘말’을 흘린 한나라당에 뿔을 내고 있다. 밀실에서 이뤄진 양 당 대표의 회동, 어떤 말들이 오간 것일까.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배석자 없이 1시간동안 밀실 회동
한 “밀실대화 아니라 마음의 대화” 민 “고자질, 정치 도의 어겼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비밀회동’으로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다.

시작은 비밀스러웠으나…

지난달 17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박희태 대표와 정세균 대표가 만났다. 박 대표의 제안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은 철저히 비공개로 이뤄졌다. 배석자는 없었으며 양 당 대표는 1시간 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는 내년도 예산안과 각종 법안 처리,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의 거취 등 현안이 화제에 올랐다. 종부세 문제와 관련, 박 대표는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해 현행 과세기준 6억원을 유지할 수도 있다고 밝혔으며 정 대표는 한미 FTA 처리에 대해 당론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음을 이야기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비밀로 하자던 이 회동 사실은 곧 언론에 알려졌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이 법원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영장 집행 불응 방침을 철회, 24일간의 영등포 당사 농성을 접은 11월23일 민감한 내용을 담은 인터뷰와 함께 전해진 것.
한 언론의 여권 관계자와의 전화 인터뷰를 인용, “박 대표가 지난주 초 정 대표와 회동을 갖고 정기국회 예산 처리와 관련한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 대표가 김 최고위원 문제와 관련해 우려를 전달했고, 박 대표가 청와대 등에 불구속 수사를 요청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터뷰의 내용대로라면 ‘밀실회동’은 ‘거래’를 위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한나라당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각종 정치 현안 처리에 ‘도움’을 요청한 것이며 그 대가로 민주당이 고민하고 있던 ‘숙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을 수 있다는 것. 비밀회동을 통해 정치적 타협점을 찾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양 당은 당장 이를 해명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박 대표가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를 찾은 것과 마찬가지로 정기국회에서 협조를 구하기 위해 정 대표를 만났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윤상현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을 통해 “박 대표와 정 대표가 국회운영과 경제상황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걱정하는 자리였다”며 “구체적 주제 없이 여러 현안을 논의했을 뿐 합의를 본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은 특히 “여야 대표로서 밀실 대화가 아니라 마음의 대화를 하는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비공개로 만나자더니…”

민주당은 한층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이 비공개 회동을 제의해놓고 그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흘렸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한나라당 관계자가 고자질을 했다. 정치 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나라당이 정 대표에게 비공개 면담을 요청해 놓고 공개를 했다. 바야흐로 여의도 윤중로는 3류 정치가 판치는 비열한 거리로 변해버린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최 대변인은 “여야가 충돌하고 갈등했을 때 누가 만나서 신뢰를 갖고 어떻게 정국을 풀 수 있단 말이냐”며 “이제 한나라당 사전에 ‘신뢰’라는 단어는 지워버려야 한다. 국민에게 불신주고 경제에 불신 주더니 이제 정치마저도 책임여당 답지 않게 불신의 시대를 개막해버렸다”고 비난했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여권 관계자’를 찾아내 처벌하라는 ‘큰소리’까지 낸 최 대변인의 목소리에는 정 대표가 직접 그를 불러 신신당부한 내용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화들짝’ 놀라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음에도 두 당은 타 당의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총재를 만난 것과 같은 만남이었다는 한나라당의 말에도 불구하고 ‘소외됐다고 느낀’ 자유선진당의 날카로운 공세에 놓였다.
선진당 이명규 대변인은 “이게 사실이라면 여당 대표와 제1야당 대표가 만나 막중한 국정현안을 놓고 법과 원칙을 벗어난 밀실흥정을 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양 당을 싸잡아 비판하면서 “양당대표가 비밀 만찬회동을 한 진의가 무엇이고, 또 구체적인 논의내용이 무엇이었는지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김 최고위원에 대해 논의했다는 기사보도를 거론하며 “실정법의 위반혐의로 검찰조사를 요구받고도 불응하고 있는 특정 정치인의 신상문제와 중차대한 국정현안을 서로 흥정하려 했다면, 그것은 지나친 직권남용이자, 국민에 대한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신당 신장식 대변인은 ‘박희태-정세균 비밀회동, 동업자 정치의 부활’이라는 제목의 브리핑에서 박 대표와 정 대표의 회동을 언급하며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지만 낯설지는 않다. 낮에는 싸우고 저녁에는 폭탄주를 돌리던 동업자 정치의 부활”이라고 꼬집었다.

‘도와 달라’ 만난 자리?

박 대표와 정 대표의 회동을 두고 정가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이 일고 있다. 각 당의 ‘해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이들은 ‘답답함’이 둘을 만나게 했다고 말한다.
‘거대여당’이지만 제대로 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는 한나라당을 이끄는 박 대표에게 내년도 예산안과 법안 처리 등 당면 현안에 대한 처리문제는 절실했다는 것. 특히 박 대표는 원외 인사로 ‘발언력’이 약해 ‘내부 추스르기’보다는 외부와의 ‘화해’를 통해 당을 이끌어갈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실제 박 대표는 각 지역을 방문하고 당심과 민심을 추스르는 일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비밀 붙이려던 회동사실 흘러나오자 ‘물밑거래’로 비칠까 ‘전전긍긍’
‘김민석 사태’ 처리 앞둔 미묘한 시점…“정세균, 김민석 걱정하더라”


좌충우돌하는 ‘거대야당’에 브레이크를 걸고는 있지만 고민이 적지 않은 정 대표의 사연도 더해진다. 정 대표는 지지율 정체와 김민석 사태 등으로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 처해있다. 특히 당력을 총동원한 김민석 사태의 원활한 처리가 없이는 당의 수장 자리가 위태롭다. 김 최고위원에 대한 압박은 심해지고 있지만 그를 막아섰던 당 지도부가 선뜻 ‘포기’를 외친다면 믿고 따라와 줄 이들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이해관계’가 일치한 두 대표는 회동으로 각자 처한 상황을 벗어나 보려 했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추측이다.
박 대표는 지난달 23일 정 대표와의 비밀회동에 대해 “정치는 전부 표면에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란 인간적인 관계를 기초로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만남을 통해 서로 간의 고민과 어려움을 공감했다”고 여러 추측에 선을 그었다.

뜨거운 감자 ‘김민석’

김 최고위원의 거취와 관련, 한나라당은 “박 대표가 청와대에 불구속 수사를 요청했다는 얘기가 나도는데 이는 있을 수도 없고 있지도 않다”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민주당도 “어처구니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마치 우리가 김 최고위원 문제를 부탁하는 양 이렇게 흘린 것은 양심의 문제”라며 “자기들이 먼저 그것도 비공개로 보자고 해서 봐줬더니 신사 정세균에게 완전히 비열한 짓(dirty play)을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 최고위원 문제는 구속이 부당하다는 얘기를 했을 뿐인데, (선처를) 부탁한 것처럼 비치게 됐다”고 말했다.

▲ “내가 거래대상?” 박희태 대표와 정세균 대표의 ‘빅딜설’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의 수사가 ‘거래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러나 양 당의 해명에도 불구, 회동 시기나 이후 김 최고위원의 ‘변화’로 비춰볼 때 회동에서 김 최고위원에 대한 ‘말’이 오갔을 수 있다는 의혹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정 대표는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 최고위원 문제에 대해 ‘불구속 수사’ 방침을 정하고 여러 통로를 통해 김 최고위원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여권에 요청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청에도 검찰이 “법대로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자 마지막 ‘수’를 쓴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회동 후 11월24일 강경했던 투쟁 의지를 보여 왔던 김 최고위원이 농성을 접고 서울중앙지법의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것도 ‘뒷거래 의혹’을 키웠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이 일부 사실이라 하더라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완강한 거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밀실야합’의 전형적인 장면이라 양측 모두 타격이 극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경우 손해가 더 막심하다. 이러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공당이 비리 혐의자를 감쌌다는 비판이 당 지지율의 만성적 부진과 맞물려 정 대표 등 지도부의 리더십에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야권에서는 이미 “제1야당 민주당의 입지가 참으로 궁색해졌다”면서 “민주당 의원들이 아무리 핏대를 세워 정부를 비판한다한들, 국민들은 그 비판의 진정성을 먼저 의심하게 됐다. 오늘 저녁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두 정치 동업자들이 어디서 또 국민을 말아먹고, 술잔을 말아먹고 있을 지부터 궁금해진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두 대표의 술잔에는 또 무슨 이야기들이 담겨있을까. 의구심은 끝을 모르고 번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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