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수석비사관 회의에서 일부 출판사가 ‘좌편향’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일부를 수정하라는 권고를 거부하고 있는 데 대해 정진곤 교육과학수석에게 “수정을 거부하고 있는 출판사의 입장은 뭔가”라고 물었다.
정 수석이 “특정 출판사는 ‘교과서를 모두 수정할 경우 전교조가 교과서 불매운동에 나설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도대체 정부가 어떻게 대처하기에 전교조만 두렵고, 정부나 다른 단체들은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고 격양된 반응을 보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8일 앞서 한차례 ‘수정 권고’에 이어 다시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 일부를 수정하라는 지시를 금성출판사 등 각 출판사에 보냈고 금성출판사는 교과부 지시에 따라 근현대사 교과서를 전면 수정키로 했다.
금성출판사 김인호 대표는 이에 대해 “나는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며 “이 문제로 더 이상 교과서 논란이 지속되면 회사경영이 정말 수습하기 어려운 국면까지 될 것 같아서 이 사안을 빨리 종결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러나 교과서 저자들은 출판사측의 결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를 집필한 김한종 교수(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등 6명은 “필자 이름이 명시된 책의 내용을 발행자가 임의로 바꾸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과 관련된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는 교과부”라며 “앞으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부당한 수정이나 채택 개입과 관련된 행위가 중단되지 않으면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논란이 가열되자 청와대는 해명에 났다.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대통령 발언의 취지가 왜곡됐다”면서 “발언의 내용이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고, 윤색이나 첨가 등으로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두렵지 않느냐’는 발언은 전교조만 두려워하지 말고 다양한 여론을 들어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는 것. 윤 대변인은 “정부는 좌편향 교과서를 우편향으로 만들자는 게 아니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라며 “단어 하나하나 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 집필 교수들을 지지, 다음 아고라에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수를 지지한다”며 서명운동을 시작하는가 하면 역사 관련 단체들도 성명서를 내고 “교과부는 집필자의 자율을 무시하는 수정 지시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출판사 사태’는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금성출판사의 한국근현대사 교과서를 채택한 서울시내 124개 고교 가운데 근현대사 교과서 수정 주문에 동참한 고교를 중심으로 37개 고교가 다른 교과서로 주문을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시교육청이 교과서 변경 결과 보고시한을 당초 예정보다 10일 늦춰 학교에 ‘교과서 수정’ 압박을 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