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노라며 38년을 사는 동안 180번이나 나랏법을 어기고 세 차례나 옥살이를 한 사람.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에게 ‘어머니’로 불리는 사람.
이제 여든이 된 그 ‘어머니’, 이소선이 자신의 이름 앞에 붙어 다니던 거창한 수식어를 걷어 내고 독자 앞에 섰다. 정확하게는 그와 독자를 이어줄 작가 앞에 자신의 인생을 풀어놓았다.
1986년 서울의 한 대학을 다니다 1989년부터 쫓기는 몸이 되어 창원으로 내려가 공장을 다녔고 1994년 국가보안법위반 등으로 구속됐으며 교도소 안에서 지은 시들로 1997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고 시인이 된 이, 오도엽이 그 ‘징검다리’다.
2005년 불혹의 나이를 코앞에 두고 15년 공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농민과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에 뛰어든 그는 우연히 찾아간 전태일기념사업회에서 이소선을 만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이소선 구술 기록 작업을 시작했다.
“일이 년이나 살겠어, 이게 마지막이지."
이소선의 한 마디에 그는 이소선 몰래 녹음기를 켜놓고 밤부터 새벽까지 이야기를 했다. 아니, 이소선은 이야기를 하고 그는 졸았다. 졸고 있으면, “너 지금 자냐?”하며 깨우면 눈을 떴다가 “아뇨”하며 다시 졸았다.
그렇게 600일 동안 먹고 자며 들은 이야기는 올해로 여든을 맞은 이소선의 지나온 세월에 대한 기억이자 그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대로 담겨 있다. 투박하고 때로는 거칠기도 하지만 너무나 인간적인, 그래서 밉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한 이소선이 우리에게 주는 응원이자 선물이다.
전태일의 어머니, 수많은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일대기
600일 밤낮 풀어놓은 삶의 기억,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낼모레가 여든인데… 생각하니까 내가 못한 것도 있지만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할 사람도 많은 거야. 못난 사람이 이제껏 살았으니 얼마나 옆에 고마운 사람이 많겠냐. 그래서 지금까지 나를 아껴 준 사람한테 고맙다는 말을 쓸라면 쓰라고 했지. 소설처럼 지어내지 말고. 아무튼 모든 사람들 고맙습니다. 내 말은 이것뿐입니다.” -이소선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소선만의 기억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전한 오도엽의 기억이 씨줄과 날줄로 교차되면서 투박하지만 진솔하고, 뜨겁지만 넘치지 않는 한 인생이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을 풀어내는 동안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앓아눕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한숨으로 하염없이 밤을 지새우다 새벽녘에는 희망을 꿈꾸기도 하면서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는 한 줄 한 줄 완성돼왔다.
“누군가 내게 이소선이 어떤 분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보다도 독특한 자신의 향기를 가진 사람, 그러나 향기를 내뿜는 순간 자신은 스멀스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과 어우러질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어떤 기억을 말하든 이야기의 중심은 자신이 아니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높일 필요를 의식조차 못 하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천성인지 살면서 체득한 것인지, 아무튼 이소선은 그러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껏 살면서 했던 실천과 선택은 늘 주변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에 성실하게 응답하고자 한 것, 그뿐이었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역할은 바로 이게 아닐까 생각한다.” -오도엽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오도엽 저 / 후마니타스 /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