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말이 돌아오면서 의원들의 일정표가 빈틈없이 채워지고 있다. 예산안 처리 등 바쁜 의정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사다난했던 2008년 한해를 마무리하는 송년모임이 줄을 잇고 있는 탓이다. 여야 정치권과 청와대 할 것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잡히는 송년회 일정. 이러한 모임 중 특히 친이계, 친박계 등 특정 정치진영의 만남과 청와대 인사들의 잦은 여의도행은 정치권의 시선을 끈다. 단순히 한 해를 마감하고 친목을 다지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바야흐로 ‘송년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연말 맞아 여야 정치권 크고 작은 송년모임 활발, 청와대도 한 자리
따로 또 같이 모인 여·야 경제상황 토로 ‘한목소리’ 정치 논의는 ‘쉿!’
각종 정치모임의 연말행사가 수많은 이야기를 낳으며 연말 여의도를 시끌벅적하게 울리고 있다.
끼리끼리 “2008년이여 안녕!”
지난 2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미래연대)’의 송년회가 열렸다. 16대 국회 당시 한나라당 내 소장개혁 원내외 인사들의 모임인 ‘미래연대’의 송년회에는 미래연대 소속으로 18대 총선에 당선된 의원 17명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창립멤버였던 민주당 김부겸, 조정식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친이계(권영진 김정권 심재철 임태희 정두언 정병국 정태근)와 친박계(김성조 이성헌), 중립(남경필 원희룡) 의원들이 당과 계파를 떠나 오랜만에 ‘동창회’처럼 뭉친 자리였다.
친이계 최대모임인 ‘함께 내일로’도 지난 3일 저녁 마포 한 음식점에서 송년모임을 가졌다. 회원 57명 가운데 40여 명이 참석한 이날 모임은 말 그대도 ‘친이계의 회동’이었던 셈이다.
정의화 의원의 회갑을 겸해 이뤄져 정치적 성격보다는 정 의원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정부와 여당이 처한 현실에 대한 근심어린 말들은 끊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정의화, 안상수, 심재철, 조문환, 현경병 의원 등 10여 명은 정기국회 문제 등을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친박 진영의 송년 모임도 줄을 잇고 있다. 김무성·유기준 의원 등 탈당파 의원들이 뭉친 ‘여의포럼’은 9일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정기회동을 겸한 송년 만찬을 가졌다. 홍사덕 김무성 박종근 이해봉 김태환 이혜훈 최구식 한선교 유기준 유재중 박대해 성윤환 조원진 이한성 현기환 의원 등과 비회원인 김영선 의원이 참석했으며 박근혜 전 대표도 자리를 함께 했다.
박 전 대표는 정치적 언급을 피하면서 “어려운 한해였다. 1년이 길었다. 1년이 지난 후에도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어 좋다”고 그간의 시간들을 회고했다.
친박계 유정복 의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선진사회포럼’도 23일 망년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아직까지 회의 일정 외 뚜렷한 계획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최근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박 전 대표의 참석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한나라당 중앙위원회도 지난 3일 송년모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도 참석, 중앙위원들의 노고를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송년모임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서로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지만 ‘정치색’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13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박영준 전 청와대 비서관과 김대식 민주평통 사무처장, 장제원 의원 등 이명박 대통령의 사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의 친목모임 명우회의 망년회는 이상득 의원의 직계로 내년 4월 재선거를 노리는 한나라당 정종복 전 의원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민주당 내 진보인사들의 모임인 민주연대도 송년회를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연대 한 관계자는 “매주 화요일 집행부를 중심으로 한 조찬 회의를 가지고 있다”며 “아직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민주연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목도모 차원에서라도 모일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센 사람들이 센 발언을 하기 위해 만든 모임인 만큼 송년모임에서도 당에 대한 비판과 반성, 향후 진로에 대한 말들이 오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청와대 인사들의 여의도행도 늘고 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은 친이계 초선 의원들과 3, 4명씩 그룹을 지어 연쇄 회동을 가졌으며 지난 1일 이정현 김세연 이진복 유재중 허원제 현기환 등 친박계 의원 6명을 만난데 이어 3일 친박계 의원들과 만찬 회동, 7일 친박계 유승민·김성조 의원과 중립파인 권영세 의원, 친이계 정두언 의원과의 회동, 11일 윤상현 의원, 13일 이혜훈 의원과의 만찬 등으로 연말까지 일정수첩을 빼곡히 채웠다.
박형준 청와대 홍보기획관은 2일 여의도에서 유기준, 한선교, 현기환, 김선동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과 저녁식사 자리를 가졌다.
지난달 여당 의원들과 매일 회동을 가졌던 맹형규 정무수석은 최근에는 당 내 의원들과 삼삼오오 송년회를 겸한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친박인사들과도 친분이 깊어 그가 가는 자리는 계파를 가리지 않는다.
‘큰 소리는 피해라’
의원 개개인의 연말 일정 스케줄표도 빈 칸이 없다. 예산안 처리 등 의정으로 바쁘지만 지역구에서 잡힌 망년회와 의원들간 모임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12월 일정표는 포화상태”라며 “국회 의원모임의 경우 정기회동을 겸해 간단히 송년회를 치른다고 해도 빠질 수 없는 몇 몇 모임이나 지역구 모임만으로도 이미 빈 칸을 다 채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급박한 의정활동으로 자주 일정이 변경되고 있다”며 “최근 상황이 하수상하다보니 송년모임에 대한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일정이 정해져도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송년모임에서는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삼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경제 상황에 대한 우려와 여·야, 계파를 떠나 힘을 합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정치판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들이 ‘상관관계’에 따라 모이게 되는 만큼 ‘정치’를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