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내에서 원내대표 조기교체론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과 주요 법안 처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2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나라당은 예산안 처리 등 꽉 막힌 주요 법안 처리를 위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야당의 반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야간 대화가 틀어진 것도 여러번, 마지막까지 ‘대화’가 불가능하다면 거대여당의 파워를 보이는 강경 드라이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여권에서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이는 홍준표 원내대표가 유일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사령탑이라는 위치도 그렇지만 거침없는 성격과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모습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 주요 법안 처리 사활 건 한나라당 ‘돌파구’ 찾기
홍준표 여야 협상 난항 계속되면 강행처리 후 조기사퇴 가능성
청와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 각종 법안 처리에 사활을 걸었다. 거대여당이지만 야당을 배려, ‘대화’와 ‘협력’을 놓치지 않겠다는 게 기본방침이지만 시일이 늦어지면서 ‘원내대표 조기교체론’같은 강경 대책도 튀어나오고 있다.
先진격 後장수교체
원내대표 조기교체론은 홍준표 원내대표가 산적한 법안을 거대여당의 파워를 활용, 거침없이 처리한 후 원내대표 자리에서 조기 사퇴, 책임을 지는 모양새를 갖춘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여당이 처한 급박한 상황을 짐작케 한다. 홍 원내대표는 그동안 여야간 대화를 강조해왔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판하면서도 원혜영 원내대표와는 “말이 통한다”며 야당과 합의점을 찾아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기조가 달라졌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예산안, 민생법안 등 상임위에 회부돼 있는 법안이 수백건이 넘는데도 상임위원장들은 상임위를 안 열고 그냥 방치하고 있다”면서 “상임위원장 및 간사들은 오늘부터 토요일, 일요일에도 상임위를 열어라”고 지시했다.
이어 “야당이 안 나오면 한나라당 의원들끼리라도 해라”면서 “참을 만큼 참았고 견딜 만큼 견뎠으니 이제는 행동을 해줘야 할 때로 상임위원장과 간사들이 이미지 관리를 해서 되겠느냐”고 소리 높였다.
지난 5일에는 “늦게 들어와서 전부 흔들려고 하는 식으로 국회를 끌고 가면 처음부터 성실히 임한 사람들이 대접을 못 받게 돼서 안된다”면서 “민주당의 협조가 없어도 국회가 가능 하다는 것 보여 줘야한다. 지난 7개월 동안 참아왔는데…. 민주당 없어도 국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줘야 떼 안쓴다. (계속 받아주면) 앞으로 4년 동안 어떡할거냐”고 쌓아뒀던 불만을 터뜨렸다.

박희태 대표도 새해 예산안 및 감세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원내대표 회담이 결렬되자 “이제 남은 길은 돌파밖에 없다. 그 일만이 우리에게 절대 과반수를 준 국민의 뜻이고, 이 어려운 경제 위기를 극복해 달라는 국민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여태까지 우리는 많은 인내심을 갖고 대화에 대화를 거듭 시도했고, 타협에 타협 노력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길이 없다. 대화도 막히고 타협도 막혔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홍반장 ‘입’ 막아라?
원내대표 조기교체론은 홍 원내대표의 ‘기질’과도 연관이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참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거침없는 홍반장’의 발언에 최근 더욱 힘이 실리면서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
홍 원내대표는 당과 청와대를 넘나들며 거침없는 발언을 쏘아대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실무당정협의에서 발표를 하루 앞두고 있던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의 지방균형발전대책 최종안에 대해 “새로운 게 없다. 재탕, 삼탕의 대책이 수두룩하다”, “새 것(정책)을 새 것처럼 만들지 못했다. 이렇게 단어만 쭉 나열해놓은 것을 국민들이 납득하겠나. 이러니까 대통령이 ‘일하고도 욕먹는다’고 말하지 않나. 다시 조정하라”고 쏘아붙여 지방균형발전대책 발표를 1주일 연기시켰다.
9일에는 지난 3일 관훈토론에서 “4대강 수질 개선사업이 운하가 되느냐 안 되느냐는 경북 북부에서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게 되면 대운하가 되는 것이다. 사업을 다 해놓고 대다수 사람들이 연결하자고 하면 말자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해 한반도대운하 재추진을 시사한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을 겨냥했다.
홍 원내대표는 “박병원 경제수석이 해선 안 될 엉뚱한 말을 했다. 그러면 안 된다. 대통령께서도 운하는 안 한다고 이미 천명을 했다”면서 “대운하는 폐기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도 그의 ‘화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홍 원내대표는 6일 이상득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당 의원들의 성향이 표시된 ‘개혁입법추진 난항 실태-정무위원회의 경우’ 문건으로 파문을 일으키자 단번에 “기분 나쁘다”고 일갈했다.
그는 “28년 공직생활하면서 늘 감시감독을 받아왔는데 여당이 됐어도 감시를 받으니 기분 나쁘다”며 숨길 수 없는 ‘공격성’을 드러냈다.
또한 8일 국정원법 개정에 관한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던 중 “국정원법 개정은 헌법 개정 만큼 어려울 것”이라며 수차례에 걸쳐 국정원 직원들이 수사권을 포기한 것에 대해 “바보 같은 간부들이 자기 권한을 포기했다” “멍청한 놈들”이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洪 “법안처리 실패하면 원내대표직 내놓겠다” MB “처리하고…”
홍준표 후 원내대표 기용 ‘친박 역할론’ “내각 싫으면 당이라도”
파격적인 언행뿐 아니라 청와대와의 엇박자도 문제다. ‘여권 재배치’를 거듭 강조해 온 그는 지난 9일에도 “출범 당시엔 많은 사람들이 총선에 나가 내각이나 청와대에 참석할 수 없었지만 이제 총선도 끝나고 1년이 돼 인재풀도 많이 생겼다. 청와대나 내각, 모든 정부기관과 주요기관에 적절한 인재 재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덕분에 전날인 8일 청와대의 “조직개편이나 내각 개편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성 보도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 조직개편은 현재로서는 검토되거나 논의된 바가 없다”는 발표가 무색해졌다.
홍 원내대표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지난 9월 정족수 부족으로 추경안 통과에 실패한 뒤 그는 당 내 비판에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또한 지난달 27일 청와대 조찬회동에서 “정기국회에서 법안 처리에 실패하면 원내대표직을 내놓겠다”고 말했고 이 대통령은 “처리하고 그만둬야지 그 전에 관둬서야 되겠느냐”고 답했다.
몸값만큼 ‘역할’ 커지는 친박
한나라당의 원내대표 교체론은 친박계의 ‘역할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은 이미 원박(源朴 원래 친박계) 본박(本朴 본래 친박계) 월박(越朴 친이계 혹은 중립에서 친박계로 넘어감) 복박(復朴 친박계로 복귀) 주이야박(晝李夜朴 낮은 친이계 밤은 친박계)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친박계에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주요 법안처리에서 친박계의 손을 빌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는 일은 없을 정도다.
경제위기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 ‘의석’이 수두룩하게 쏟아질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외치기엔 위험부담이 크다.
때문에 친박계와 손을 잡고 이번엔 친박 진영이 후임 원내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 “개각을 할 경우 일부 부처 장관들은 박근혜 전 대표로부터 추천받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박계 입각이 구체화되고 있지만 친박계는 “박 전 대표의 성품으로 보면 입각할 인사를 추천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가 언제 자리 부탁한 적이 있느냐”고 되묻는 등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는 것도 ‘원내대표 교체론’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이러한 카드는 친이계에서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원내대표가 현실화되면 이 대통령은 안정된 국정동력을 얻을 수 있게 되고 당은 내년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친박계가 더해진 힘을 낼 수 있다는 것. 대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남아있는 만큼 우선은 같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친박계에서 원내대표를 맡을 경우 김무성 의원이 첫손에 꼽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친박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석 원내부총무를 맡았을 당시 여야를 넘나드는 협상력이 높았다는 평가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지난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이명박 대통령이 친박 몫으로 장관 임명까지 고려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무성 의원이 지난 8일 서울 시내 한 호텔 식당에서 오찬 회동을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맹 수석과 김 의원은 회동에서 최근 정국 현안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으며 특히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간 화해와 신뢰회복을 심도있게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