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이라는 배가 표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배를 흔들고 있으며 파도를 잠재울 야당의 바람도 민주당에게는 버거운 시련일 뿐이다. 밖에서는 선명한 야당성을 강조한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가 민주당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고 내부에서는 민주연대 등 개혁세력들의 한 목소리로 지도부를 질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제1야당으로써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실책으로 인한 반대급부를 노렸던 전략은 접고 있다. 당을 지탱하고 있는 ‘신뢰성’에 구멍이 뚫리다보니 서서히 차올라 민주당을 잠식하고 있는 물을 퍼내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고장 난 곳을 깨끗이 수리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마다 상처가 벌어지고 선원이 배에서 뛰려내려 종국에는 침몰하는 수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음이 사방에서 들려온다.
10% 지지율의 ‘함정’ 빠진 민주당…싸워도 얼러도 지지율은 추락 중
‘뉴민주당 플랜’ 중추역할 김민석 최고위원 검찰행으로 생채기·후유증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민주당이 같이 추락하고 있다. 이 중 상황이 가장 급한 곳은 정권을 잡고 있는 이명박 정부도 거대여당의 파워를 지닌 한나라당도 아니다. 대안야당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는 민주당이다.
이도 저도 다 잃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몇 개월째 10%대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따르면 민주당의 정당 지지도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14.0%를 보인 데 이어 13.5%(4월), 17.2%(5월), 15.5%(6월), 17.1%(7월), 16.7%(8월) 등으로 계속 10% 대에 머무르고 있다.
또 다른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의 지난 15일과 16일 조사 결과도 민주당 지지율을 19.1%로 기록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지난 광우병 사태 이후 10%대로 추락했다 서서히 회복, 30% 전후의 지지를 보이고 있으며 한나라당은 이보다 높은 35%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는 것과는 큰 차이다.
83석의 소수야당이지만 국회 내 가능한 역할이 적지 않은 ‘무시할 수 없는’ 제1야당임에도 민주당은 거대여당이 된 한나라당 앞에 수적 열세를 절실히 통감하며 당에 드리워진 대선참패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 원인은 명확하다.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라는 ‘카드’에 맞설 유력 대선후보가 보이지 않다는 점,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의 한계, 정권교체 이후에도 야당다운 선명한 정체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 내외 인사들은 물론 전문가들의 진단도 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홀로 42.6%의 지지율을 보였다. 박 전 대표를 포함한 전체 한나라당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은 무려 58.4%나 됐다. 그러나 민주당은 뚜렷하게 내세울 인물도 없을뿐더러 정동영 전 장관(10.3%)을 포함한 후보군의 전체의 지지율이 21.2%에 불과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지지율 하락과 ‘스타 기근’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민주당 플랜’을 기획했다. 정세균 대표는 “대표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어떻게든 상황 돌파하고 트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당의 진로와 좌표설정 작업을 맡을 ‘뉴민주당비전위원회’와 2010년 지방선거를 겨냥, 숨은 지역 인재들을 찾아서 영입하고 키우는 ‘2010인재양성위원회’를 가동하고 당 내 인재들을 경쟁시키고 지원해 ‘스타 정치인’을 키우는 ‘스타 프로젝트’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당 내 브레인이자 ‘판 메이커’인 김민석 최고위원의 구속으로 초반부터 적잖은 생채기가 났다. 김 최고위원을 감싸 안기 위해 당력을 소비해야 했으나 결국 그를 법정으로 보냈으며 그의 구속으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은 것. 김 최고위원은 ‘스타 프로젝트’에 속할 유력 정치인으로 꼽히던 차라 아쉬움이 더 크다.
호남 안방 언제나 벗어날까
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정당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딜레마다. 민주당은 ‘전국정당’을 표방하면서도 어려움에 처할 때면 ‘호남’이라는 포근한 땅을 잊지 못했고 결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호남정당’이라는 비판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층 분석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한나라당은 호남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고르게 3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호남 지역에서만 30% 이상의 지지율을 보였으며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20% 이하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
그러나 민주당의 텃밭이자 강세지역인 호남의 인구비율은 전체 유권자 중 10% 가량 밖에 되지 못해 전국정당으로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민주당의 ‘호남집중’은 특히 민주당이 수세에 처하는 상황이 됐을 때 강해진다. ‘위기의 민주당을 구해줄 곳은 호남 뿐’이라는 종속 인식이 표면화되는 것. 이는 곧 ‘호남정당’이라는 인식을 부추기고 호남을 벗어나 전국정당으로 나아가려는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되풀이’는 민주당의 한계와 위기를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로 이어진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와 관련 전반적인 민심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수도권 지역과 ‘민주당의 불모지’로 꼽히는 영남지역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 10.29 보궐선거에서는 ‘텃밭’인 전남 여수에서마저 패하는 등 ‘호남’이 영원히 민주당의 안식처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대안을 찾는 발걸음을 빠르게 하고 있다.
대안야당 VS 선명야당
정체성은 현재 민주당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다. 정세균 체제의 등장 후 당 내에서는 끊임없이 당 지도부의 리더십과 정체성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 내외에 크고 작은 정치단체들은 출범과 함께 이러한 부분을 꼬집어왔다.
60세 이상 15명의 의원이 참여한 ‘민주시니어’ 모임에서는 “민주당이 결사반대하는 것이 많은데, 목숨이 그렇게 많으냐고 한다. 결사반대만 매일 하지 말고 우선순위를 정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을 시니어 모임에서 해달라고 하더라”(홍재형 의원), “민주당 지지도 떨어지는데 무조건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제일 많고, 참신한 스타 정치인이 없다고 한다. 특히 경제위기이기 때문에 불합리한 반대를 하면 국민들이 높게 평가를 안 한다”(박상천 의원)는 주문이 나왔다.
‘공격적’이기만한 민주당의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민주당은 흡사 ‘야성’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는 지지자들의 바람과는 동 떨어진 것이기도 하다.
돌고 돌아 제자리 ‘호남정당’…지역당 한계, DJ의 그늘 벗어나지 못해
당 내 대안야당, 선명야당으로 분열, 당 밖 “민주당 야성 없다” 질타
실제 민주당의 지지율과 관련한 한 설문에서 많은 이들은 민주당의 지지율 부진의 이유로 ‘무조건적인 비판(29.5%)’을 꼽았다. 당이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 정당으로 나아가려 노력하고 있다고 자평하는 것과는 달리 유권자들은 ‘대안없는 반대’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도부의 리더십 부재(24.9%)’, ‘스타 정치인 부재(12.1%)’ 등을 민주당 지지율 부진의 이유로 꼽았다. 특히 지도부의 리더십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크게 지적됐다.
반면 ‘선명한 야당’을 들고 나온 당 내 진보·개혁 세력의 모임인 민주연대는 “집단 무기력증과 좌절감만이 당 안팎을 뒤덮고 있다”고 당을 진단하면서 “현안에 대해 분명한 색깔을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 것은 당의 정체성을 모르는데서 비롯된 명백한 오류였다”고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당 안팎의 정체성 논란에 대해 정 대표는 “강한 야당이 되려면 대안이 있어야 하고, 대안이 없는 야당을 강한 야당이라고 아무도 생각 안 할 것이다. 선명하지 않은 야당도 강한 야당은 아니다”라면서 “대안야당, 강한야당, 선명야당은 배척이 아니고 같은 것”이라고 ‘대안야당’과 ‘선명야당’의 대립각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어 “당내에서 입장이 다른 경우도 있고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지만 잘 수렴하고 반영해서 당의 총의를 모아 역량있고 믿을 수 있는 일관성 있는 정책정당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돌파구는 ‘진검 승부’
민주당은 고립된 상황을 벗어날 돌파책으로 시민사회 단체와 민주노동당 등 야당의 연합전선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감세법안을 막지 못함으로써 이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 등 40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민주당도 참여를 추진 중인 민생민주국민회의(준)이 성명서를 통해 “민주당이 부자감세 법안에 무기력하게 합의해 주는 지금과 같은 태도를 계속 취한다면 국민들로부터 ‘야당’으로서 더더욱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것.
쟁점법안 처리를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는 ‘진검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여당의 공세를 막지 못할 경우 연대는 고사하고 지도부의 입지가 약해진 상태에서 후폭풍을 크게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연일 대여 투쟁을 독려하고 있으며 “모든 노력을 다해서 막겠다”고 이를 앙다물었다. 원 원내대표도 “장렬히 전사하겠다”고 각오를 되새기고 있다.
한편, 강기정 비서실장은 “협조할 것은 조건 없이 협조하되 싸울 것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정 대표의 원칙은 확고하다”며 “내년 1월 뉴민주당 플랜 완성을 거쳐 4월 재·보선 전후로 그간 노력이 축적돼 지지율도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