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씨, “암 고지했다. 녹취자료 들어보면 알 것” 자료공개 요청
동양생명, “음성녹취 겸용 청약서에 암 고지 사실 없다” 주장
TM 보험 가입자, 전화 통화내용 녹취자료가 보험 ‘청약서’
녹취자료 분실에 개인정보유출되면 소비자 2차 피해 우려

지씨 “암 고지 했다” Vs 동양생명 “고지하지 않았다”
최근 보험사들은 전화를 이용한 보험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때문에 저렴한 보험료와 다 보장을 강조하며 전화할 것을 홍보하는 TV 광고들이 줄을 잇고 있다. 또 보험사들은 전화를 이용한 보험가입자들을 위해 전용 보험 상품까지 출시하며 가입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화 보험가입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해 업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수호천사가 지켜준다는 생명보험회사인 동양생명이다.
보험료 지급을 요청하는 소비자와 ‘병력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보험료 지급을 거부하고 법정소송까지 불사하고 있는 동양생명의 팽팽한 신경전을 들여다봤다.
지난 2004년 12월, 경북 울산에 사는 회사원 지현정(36·여·가명)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의 주인공은 동양생명의 보험을 판매하는 상담원이었다. 그는 지씨에게 동양생명의 건강보험 상품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고, 지씨는 상품이 괜찮은 것 같아 가입을 승낙했다.
암, 괜찮다고 할 땐 언제고!
그러던 지난 2008년 6월, 지씨는 얼굴에 검은 점이 의심스러워 병원진료를 받았다. 그런데 진료결과 얼굴에 생긴 검은 점은 피부암의 일종인 안면부 악성 흑색종이었다. 지씨는 바로 수술을 통해 종물을 제거 받았다.
그 후 7월경 지씨는 암치료에 따른 보험금을 청구하기 위해 동양생명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동양생명은 지씨가 “과거 임파선암을 알리지 않았음이 확인됐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보험가입 당시 병력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씨가 이를 속이고 가입을 했다는 것이 동양생명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지씨는 “보험 가입 당시 상담원에게 건강상태에 대해 알리며 지난 1998년에 임파선암을 진단 받고 완치된 지 2년 정도 됐다고 말했고, 상담원은 위암이 아니면 가입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어 그는 “교통사고로 치료한 적이 있는 것도 말하자 상담원은 질병이 아니라 그것도 괜찮다고 답변했다”며 “대화를 하며 지난 5년 이내의 건강에 관해 묻는 부분에서도 암에 대해 언급을 했고, 임파선염이 아니라 분명 암이라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지씨는 “상담원이 암 병력을 얘기해도 가입이 된다고 해서 ‘여기는 가입이 되는가 보구나’하며 가입을 승낙했던 것”이라며 “병력을 속였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지씨와 같이 전화로 보험을 가입한 경우에는 통화내용을 녹음한 녹취자료가 청약서와 마찬가지인데, 동양생명은 지씨가 녹취내용 확인을 요구하자, “녹취자료를 분실했다”며 가입 당시 녹취내용을 확인시켜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씨는 “동양생명에게 분명 암이라는 부분을 설명했고 녹취내용을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담당자는 녹취내용을 찾아보겠다고 해놓고선 그날 저녁 바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까지 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더욱이 동양생명은 지씨를 상대로 지난 12월 초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화가난 지씨도 현재 동양생명을 상대로 보험료 청구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녹취자료 분실, 문책 받아야”
지씨의 사례를 상담한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동양생명의 행동은 “전화 보험가입자 녹취파일을 회사가 분실하고, 상담원의 잘못을 소비자에게 책임전가하고 있다”며 “보험금지급을 거부하고 오히려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것은 황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통신판매(전화·우편·컴퓨터 등의 통신매체를 이용한 보험상품판매)를 하는 경우 보험업법상 가입할 때 통화했던 내용을 반드시 녹음하고, 계약서 가입 항목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이때는 회사측에 유리한 부분이 없도록 통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녹취하게 되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리고 계약자가 녹취내용을 확인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들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며 “이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동양생명은 청약서나 다름없는 녹취자료를 소홀히 관리한 책임이 있다”고 꼬집었다.
그의 지적대로 보험업감독규정에 따르면 통신판매종사자는 보험계약의 청약이 있는 경우 보험계약자의 동의를 얻어 청약내용 및 보험료납입 약정내용 등을 음성 녹음하는 등 그 증거자료를 확보·유지해 한다.

하지만 동양생명은 이런 규정조차 지키지 못하고 전화 보험 청약의 가장 중요한 녹취자료를 분실하고, 고객의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의 분실여부도 고객이 녹취자료 확인을 요구하고 나서야 알았다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팀 관계자도 “이런 경우 회사측은 반드시 녹취자료를 구비할 의무가 있다”며 “만약 녹취자료 분실이 사실이라면 병력 고지의무 입증 책임은 사업자에게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최근 전화를 통한 보험계약이 늘고 있어 녹취자료는 서면만큼 중요하다”며 “사람의 목숨과 재산권이 달린 것이니 만큼 보관 책임을 가지고 있는 사업자가 분실을 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소송을 진행하면 100% 사업자 책임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만약 지씨의 개인정보가 담긴 자료가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분실되고 누군가에 의해 도용되면 소비자에게 2차적 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지씨 이외에 다른 누군가의 녹취자료도 분실됐을지 대대적인 조사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녹취자료 여부, 진실게임
이번 사건에 대해 동양생명 관계자는 지난 12월31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지씨가 처음부터 임파선암이라고 고지하지 않고 ‘임파선염으로 약물치료’라고 암 병력을 고의적으로 숨겨 보험가입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암이라고 말했다면 보험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씨의 경우 전화로 보험을 가입하면서 통화와 함께 상담원이 임의 청약서를 작성했고, 비록 녹취자료는 분실됐지만 이 청약서에 암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봐서 지씨가 청약 당시 암 병력을 고의로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관계자는 “상담원이 지씨와 통화 당시 청약서를 작성했고, 이 청약서는 이후 QA팀에서 1차적으로 녹취자료와 함께 확인하여 보험가입 승인 여부를 판단한다”며 “QA팀에서 확인한 자료는 2차적으로 언더라이팅 조직에서 최종 승낙하기 때문에 회사측의 실수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원이 영업이익을 위해 암 여부 등을 축소해서 기재할 수 있지않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관계자는 이어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소비자가 소송을 제기할 경우 소송비용을 모두 내야하는 부담도 있고, 보다 빠르게 양측의 잘잘못을 따져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녹취자료 분실에 대한 책임을 묻자 “녹취자료를 보관상 부주의해 없어진 것은 사실”이라며 “담당자에게 분실에 따른 문책사유는 있다”면서도 처벌은 소송이 마무리된 후에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씨와 같이 녹취된 고객정보 파일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적으로 유출되고, 이에 따른 개인정보 도용과 같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파일자료가 삭제된 것 일 수도 있다”며 “녹취자료 백업본이 있을 수도 있어 담당자가 지방에 있는 보관소에 가서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을 번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