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전까지 아르바이트로 생계유지하는 ‘한국형 프리터’ 증가
인턴, 비정규직 양산보다 취업 재교육 등 재도적인 개선 필요
계속되는 취업난에 취업을 미루거나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프리터(freeter)족’이라 부르는데 프리터란 일본에서 생겨난 신조어로 프리(free)와 아르바이터(arbeiter)의 합성어로 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만 일하고 쉽게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청년실업이 증가하고 있는 요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형 프리터족을 만나 그들의 하루를 밀착취재 했다.
A씨(26·여)는 작년 8월경, 갑작스레 다니던 직장이 문을 닫게 되며 직장을 잃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생활을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다시 직장을 알아보던 A씨는 다른 전문직으로 이직을 원했으나 취업의 문은 그리 넓지 않았다.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마냥 놀수는 없었던 A씨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다.
돈과 꿈을 쫓는 프리터들
A씨의 하루는 아침 8시, 그가 아르바이트 중인 커피전문점 오픈 준비로 시작된다.
아침과 오후 반나절을 커피전문점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나면 어느덧 오후 3시. 그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후 4시부터는 동네 문화센터에서 ‘장식미술’ 수업을 듣고 있다.
그는 “평소 생활미술, 장식미술에 관심이 있었지만 졸업 후 바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프리터가 된 후 시간에 여유가 생겨 지금은 문화센터에서 장식미술 강습을 받고 있다”고 현재 생활에 만족해했다.
수업은 실습 위주로 도안을 그리고 색칠하며 작품을 완성해 간다. 5시간의 긴 수업이 끝나면 시간은 어느덧 밤 9시다.
A씨는 프리터로 생활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금전적인 면”이라 말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받는 정규 수입은 60만원 정도이다. 서류 대행이나 기타 부수적인 아르바이트로 10~20만원 정도의 수입이 더 생기기는 하지만 한 달 수강료로 40만원을 지출하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수입이)부족하긴 하지만 불만은 없다. 사치를 줄이고 불평을 줄이며 꿈에 투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그럭저럭 생활이 유지되지만 30대까지 프리터 생활을 유지한다면 불안할 것 같다”며 불안감을 비추기도 했다.
A씨는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에는 서류교정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는 친구의 소개로 틈틈이 서류 작성·교정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단기간에 많은 양의 서류를 봐야하지만 “(장식미술)수업 재료비가 많이 들어서 아르바이트 하나 가지고는 재료비를 충당하기도 벅차다”고 말했다.
A씨는 “장식미술 강사 자격증을 발급 받아 ‘포크아트 강사’가 되는게 꿈”이라며 “부모님이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수강료와 재료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프리터 생활이지만 점점 지쳐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취업교육프로그램 지원 필요
또 다른 프리터 B씨(28·남)는 4년제 대학 졸업 후 약 1년 정도 프리터로 생활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는 “군 제대 후 진로를 바꿔 취업하고 싶었으나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B씨는 “남들보다 화려한 스펙도 없고, 직장을 고르는 눈은 높아져서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며 “인력난과 취업난 모두 어렵다고 하지만 정작 업체도 구직자도 서로 더 높은 이상향을 찾다보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같다”며 현 취업난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표현했다.
B씨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하루를 시작한다. 평소 아침잠이 많고 밤에는 쌩쌩한 올빼미형 인간인 B씨는 이 시간이 되어야 생기가 넘친다.
그는 현재 대학시절 즐겨 다니던 PC방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높은 시급을 받지는 못하지만 새벽시간이라 손님도 별로 없고 좋아하는 게임도 틈틈이 즐길 수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아르바이트도 없다”고 말했다.
아침 6시, PC방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B씨는 택배회사의 물류센터에서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는 “(운송)물량이 많을 때는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힘들지만 PC방에서의 일은 움직임이 적기 때문에 이 일을 하며 돈도 벌고 운동도 할 수 있는 1석2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B씨는 “직장을 구하지 않고 프리터 생활을 하는 나를 주변에서 무능력하게 평가 한다”며 “프리터 생활이 쉽지만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수입의 절반을 유학자금으로 모으고 있다. B씨는 “당장은 어렵지만 유학 후 반듯한 직장에 취직하고 싶은 마음에 유학을 결심했다”며 “부모님도 친구들도 ‘도피성 유학이 아니냐, 빨리 취업하라’고 성화다. 하고 싶다고 다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1년 정도 유학생활을 하며 미래를 구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A씨와 B씨 모두 ‘불안정한 삶’에 대한 걱정이 가장 컸다.
일본의 경우 높은 임금 덕분에 프리터 생활만으로 생계가 유지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시간당 평균 임금 4000원으로는 생계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프리터 생활만으로 완전한 경제적 독립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전언이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 이것 또한 그들에게는 고민거리다.
국내에서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도 프리타족의 증가는 사회적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프리타족의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위해 영국은 ‘뉴딜 프로그램’, 독일은 ‘점프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 의욕을 가진 청년들에게 취업 연수와 알선, 재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도 프리터족이 일정 기간 기업이나 기술전문학교 등에서 취업 연수를 받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전국백수연대(이하 전백연) 주덕환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이 선택해서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당장 생활비는 없는데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돈벌이를 하는 것”이라 말했다.
주 대표는 “프리터족이 증가하면 소비층이 줄어들어 내수가 안 좋아지고, 일본처럼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들이 늘어 저출산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세금을 내는 인구도 적어져 정부 재정 악화를 불러 올 수도 있다.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정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