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추운 계절만큼이나 ‘꽁꽁’ 얼어붙고 있는 요즘, 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추돌이 되는 기업들은 대중소를 막론하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협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분위기가 끈끈히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사뭇 다른 행태을 보인 기업이 있어 이를 바라보는 세간의 눈초리가 매섭다. 이 기업은 바로 국내 굴지의 그룹인 H그룹의 자회사인 W사.

W사는 국내 굴지의 그룹인 H그룹의 자회사로서 자동차 부품과 공작기계 등 기계 제조를 영위하는 종합부품제조업체이다. 이런 W사와 협력업체로 계약을 체결한 중소기업은 (주)벤츄리씨엔씨(이하 벤츄리). 벤츄리는 PMP와 내비게이션 등을 개발·기획디자인하는 중소기업이다.
벤츄리 이규항 대표는 본지와 지난 1월12일 오후 2시경 서울 구로디지털 단지 내 사무실에서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상세히 설명하며 억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W사와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운을 뗀 뒤 “이제와 일방적 계약 중단 통보를 하면 우리와 같은 중소기업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들은 연쇄 부도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 중소기업 대표의 사연인 즉, 지난해 1월 초 W사측에서 먼저 벤츄리가 기획디자인한 PMP제품을 보고 연락해왔다고 한다. 이후 이 대표는 W사측 실무진들과 면담을 가졌다. 그런데 당초 W사는 벤츄리의 PMP제품에 관심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당시 벤츄리가 보유한 내비게이션 제품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W사는 벤츄리와 몇 차례에 더 협상을 거쳐 결국 7인치 내비게이션(모델명 : WNO-V710) 납품공급계약 체결을 지난해 3월 중순께 맺게 됐다.
이 대표는 당시 W사측과 맺은 서류를 제시했다. 확약서를 비롯한 납품대금 지급에 대한 약정서, 제품견적서 등 그동안 W사측과 오갔던 서류 일체를 내밀었다.
이 대표는 “W사는 우리와 내비게이션 공급계약을 체결한 후 각종 변경사항을 요구해왔고 우리는 여기에 최대한 맞추기에 위해 노력했었다”며 “하지만 W사는 지난해 4월24일 1차 납품기일이 도래했음에도 불구, 내부사정으로 인하여 7월달로 연기 해줄 것으로 요청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이후 W사는 5월경 다시 1차 모델과는 별개로 2차 모델 개발을 진행해 줄 것을 제시했다”며 “W사가 제시한 내용은 1차 모델 총1만대 17억8천원 상당 규모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큰 50억원대 규모여서 납품연기에 대해서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하지만 정작 연기 기일이 도래했지만 W사측에서는 ‘모르쇠’로 나왔다고 한다. 이 대표는 “당시 (내가)W사측 실무진을 항의 방문한 날짜도 뚜렷하게 기억한다”며 “7월12일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항의 방문한 이 대표를 맞은 W사측 자재부 A과장은 “(벤츄리에)발주를 준 적도 없고 (나는)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뗐다고 한다. A과장은 이같은 말과 함께 옆에 있던 서류뭉치를 이 대표에게 보여주면서 “이 많은 소송 중에 하나 더 추가하면 그 뿐”이라며 “법대로 해라”는 식으로 나왔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이 대표는 W사와 맺은 서약서·확약서 등의 서류를 내밀자 그때서야 A과장은 상사인 위성사업부 개발팀 B차장을 불러왔다. 상황을 전해들은 B차장은 이 대표에게 “무조건 진행할테니 해보자”며 격앙된 이 대표의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런데 B차장은 “이미 내비게이션 시장에서 벤츄리가 개발한 1차 모델은 구 모델이 된 터라 현재 개발 중인 2차 모델과 더불어 3차 모델 개발을 진행해 줄 것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대표는 울며겨자먹기로 그동안 진행해왔던 1차 모델의 납품계획을 접고 2·3차 모델 개발에 역점을 두고 진행했다. 그러던 중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사건이 끝내 터지고야 말았다.
지난해 12월4일 W사측은 위성사업부장 ‘싸인’이 들어간 한 장의 공문(?)을 팩스로 보내왔다. 이 공문은 다름아닌 ‘내비게이션 개발 중단 통보’였던 것이다.
W사의 일방적 계약 중단 통보
개발 중단의 이유인 즉, 첫째 높은 제조단가로 인해 가격경쟁력 없음. 둘째 차별화된 제품의 개발이 어려움. 셋째 양질의 양산 및 납기 준수를 신뢰하기 어려움 등이 기재돼 있었다.
이 대표는 “이 공문을 집어든 순간 넋이 나갈 정도였다”며 “개발 중단 사유 중 어느 한가지라도 수긍할 만 게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고선 사무실 한 구석에 쌓여있는 박스더미를 가리키며 “저기 쌓여있는 박스들이 모두 W사에게 납품하기 위해 만든 부품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부품들 모두를 벤츄리 혼자서 만들 수 없었다”며 “W사만 바라보고 우리와 계약을 맺은 영세 하청업체들은 W사의 횡포로 줄줄이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외국기업과 맺은 제품공급계약서를 보여줬다.
이 대표는 “W사측과 일을 진행해오면서 (주)모토모 등 외국기업 몇군데와 차량용블랙박스 공급계약을 했다”며 “이미 착수금을 받았는데 이 돈은 2차 모델 개발을 하느라 모두 써 버렸고 이도 모자라 수억원대의 빚을 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번 벤츄리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 (주)네비우스 김진완 이사는 “그동안 W사와 벤츄리 실무진간에 수차례 협상이 오갔고 이후 거기에 따른 개발 비용, 인력비, 시간 소요 등 유무형적 손실이 막심하다”며 “W사와 같은 대기업은 계약 파기를 한다고하더라도 별 손해 볼 것도 없겠지만 우리같은 생계형업체들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줄도산하는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핏대를 세웠다.

“W사의 일방적 파기로 우리뿐만 아니라 하청업체들까지 줄도산하게 됐다” 토로…위아 상대로 수억원대 손배 제기
W사측 반박
“계약 자체가 없었다”…“내비게이션 사업이 800억 적자 상황에서 협력업체를 선별하는 차원” 반박
계약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벤츄리씨엔씨 이규항 대표의 주장에 대해 W사측은 어떨까. 당시 벤츄리와 협상을 진행시켜온 W사측 실무진들과 본지는 수차례 전화인터뷰를 했다.
A과장을 비롯한 B차장, C부장 등은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한냥 똑같은 답변을 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한마디로 ‘벤츄리와 계약 자체가 없었다’는 것.
먼저 위성사업부 C부장은 “벤츄리 이 대표가 제시한 서약서 및 확약서 등은 벤츄리를 협력업체로 등록하기 위한 구비서류에 불과하다”며 “정식 계약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위성사업부 개발팀 B차장은 “이 대표가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벤츄리 측에서 먼저 납품기일을 못 맞췄고, 해당 제품 개발 역시 우리가 요구하는 것에 부합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자재부 A과장은 “(C부장, B차장 등)윗분들이 얘기한 것이 모두 사실”이라며 “(나는)더 이상 말해 줄 것이 없다”고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이처럼 본지는 W사측 실무진과 수차례 취재한 끝에 위성사업부 개발팀 B차장으로부터 의미심장한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B차장은 “W사의 내비게이션 사업이 800억원대의 적자를 보고 있다”며 “경기 불황과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제품과 기술력을 보유한 협력업체들을 선별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실 업계에서는 벤츄리의 경우 외에도 W사가 중소 협력업체들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부당한 횡포를 부리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W사와 협력업체로 있었던 H사 관계자는 “W사가 부당한 횡포로 중소기업을 죽이고 있다”며 “(W사는)중소기업들로부터 소송 당한 게 한 두건이 아닐 정도”라고 귀뜸했다.
물론 이에 대해 W사측은 “내부 사정이므로 말해 줄 수 없다”고 딱 잡아뗐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앞서 B차장의 진술과도 일맥상통하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W사는 그동안 내비게이션 사업이 수백억원대의 적자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적자 상태를 끌어안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 이를 떨쳐버리기 위해 중소 협력업체들에게 막가파식 계약파기를 단행하게 된 것이란 시각이다.
대기업 횡포 근절돼야
현재 벤츄리 이규항 대표는 W사로부터 중단 통보를 받은 후 이내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고 W사의 부당함을 공정위를 비롯한 중소기업협회 등 각종 정부기관 및 시민단체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부도 위기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거래 은행에는 빌린 대출금 상환 기일을 연기 요청하는 동시에 중소기업진흥공단으로부터 지원금 요청도 해놓은 상태이다.
아울러 W사를 상대로 지난 1월19일 5억8천여만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기했다. 아울러 민사에 이어 그동안 W사가 보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막대한 피해를 입은 만큼 ‘사기죄’여부를 검토해 형사 소송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번 소송을 담당하는 박형섭 변호사는 “W사측에서 벤츄리와 정식 계약을 체결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진행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엄연히 이로 인하여 벤츄리가 일정부분 손해를 입은 것은 사실이므로 민사부분에서는 승소할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또 형사부분은 차후 검토 후에 사기죄 여부가 성립하는 지 면밀히 검토 후 제기할 계획이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소송 진행에 대해 이 대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W사측과 소송이 시작되면 지든 이기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이런 와중에 회사는 문을 닫게 될 것이란 것.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벤츄리의 사정을 전해들은 해당 금융기관이나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원에 대해 긍정적 검토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15일 벤츄리의 지원요청에 의해 실사를 나왔던 중소기업진흥공단 관계자는 “W사측과의 그동안 있었던 일들은 평가하는 있어 어느 정도 정상 참작할 것이며 무엇보다 벤츄리란 회사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해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W사측과 벤츄리간 공방의 진위여부가 뚜렷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대기업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횡포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