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법대로’…민사조정 남발하는 손보사
‘억울하면 법대로’…민사조정 남발하는 손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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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 피해자 두 번 울리는 보험사들
최근 보험사를 상대로 민사조정 시비에 휩싸인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분쟁을 쉽게 해결하기 위한 민사조정을 오히려 소비자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손해보험사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압박을 가하는 손해보험사들의 횡포는 과연 어디까지인지 본지가 직접 취재해봤다.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을 ‘꾀병’부린다며 보험금 지금 거부
보험사들 민사조정 신청으로 피해자를 압박하는 사례 증가


최근 교통사고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해당 보험사에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며 민사조정을 신청해 이중고를 겪고 있는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속터지는 피해자들, 억울한 심정

삼성화재 자동차보험 가입자인 방모씨(42·남)는 지난 6월 교통사고를 당했다.

방씨는 사고 후 바로 차량 수리를 맡겼지만 몸에는 별다른 증상이 느껴지지 않아 병원 방문을 미뤘다. 하지만 3일 뒤 알 수 없는 통증이 찾아온 방씨는 병원을 찾아가 진료를 받았다.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라고 판정을 받은 방씨는 차량 수리비와 입원 치료비를 삼성화재 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3일이 경과한 상태에서 입원치료 하는 것은 사고와 상관없이 보험 해택을 노린 ‘꾀병’으로 보인다며 차량 수리비 5만 원 만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방씨는 이와 같은 판정에 억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크게 반박했다. 그러자 삼성화재는 방씨를 상대로 민사조정을 신청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씨(50·남)는 4년 전 교차로에서 현대해상 자동차 보험에 가입한 가해자와의 충돌로 교통사고를 당했다.

김씨는 사고로 인한 부상으로 네 차례에 걸친 고관절 수술을 받았다. 6개월에 1회씩 총 4회의 수술을 받으며 4년 동안 치료를 받았으나 현재 맥브라이드방식으로 영구장애 판정 23%를 받은 상태다.

하지만 현대해상측은 김씨의 부상이 교통사고가 아닌 운동에 의한 것이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또 교통사고와 관계없는 김씨의 개인 의료기록을 요구하며 보험금 지급을 미뤄왔다.

결국 현대해상은 지난 6월 김씨를 상대로 민사조정신청을 법원에 등록한 상태다.

김씨는 보험사와의 다툼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법에 무지한 상태에서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에는 부담스러워 속앓이만 하고 있다.

김모씨는 “소비자이며 피해자인 나을 오히려 사기꾼으로 몰고 있다”며 “보험사는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해 정당하고 합리적인 보상을 바라는 피해자를 범죄자 혹은 사기꾼으로 만들려고 한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1월28일 보험소비자연맹의 발표에 따르면 교통사고 건수는 매년 줄고 있지만 손해보험사의 민사조정건수는 급증하고 있다.

손해보험사의 민사조정건수는 2004년부터 2005년까지 3년간 연평균 257건에서 2006년에는 1095건으로 급증했다. 2007년에는 1200% 증가된 3095건, 2008년 8월에는 이미 3500건이 넘게 접수됐다.

이 같은 민사조정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손해보험사들이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분쟁을 쉽게 해결하기 위해 만든 민사조정을 오히려 소비자를 압박해 보험금을 줄이는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소비자연맹은 이 같은 민사조정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한화손해보험이 이를 가장 많이 남발해 지난해 8월 기준 교통사고 보험금 청구 1만 건당 34건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에르고다음다이렉트 31건, 현대해상 15건, 롯데손해보험 13건, 삼성화재 11건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손보사 평균인 8건보다 높은 수치다.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손해보험사들은 교통사고 피해자가 입원 치료를 받을 경우 경미한 사고에도 꾀병을 부린다며 치료비 지급을 거부하고 민사조정을 신청하는 등 사고 피해자에게 협박을 일삼고 있다”고 밝혔다.

부상정도가 경미한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소액의 합의금을 제시한 뒤 피해자가 거부하면 곧장 민사조정을 신청해 법률 지식이나 경제력이 부족한 이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쟁이 발생했을 때 가입자들이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장치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돼 처리된 금융·보험 관련 민원은 총 1만7592건이다.

이중 손해보험의 보험금 산정과 관련된 민원 처리 건수가 2609건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접수된 민원 중 일부는 관련 법령에 따라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상정되지만 여건상 처리할 수 있는 건수는 한정돼 있다.

지난해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서 처리된 손해보험 건수는 22건에 불과한 실정이다. 그나마 2005년 8월 개정된 금융분쟁조정세칙에 따라 보험사가 먼저 소송을 제기했거나 민사조정을 신청한 뒤에는 가입자가 조정을 신청할 수도 없다.

결국 가입자들로서는 보험사들이 소송이나 민사조정을 신청할 경우 소송을 통해 승소하는 방법을 제외하고는 부당함을 제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보소연, “피해자에게 위압감 조장해 합의 유도하는 소송 금지” 주장
손보협, “법원에서 권고하는 민사조정, 적법절차 제한은 부당” 반박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손해보험사들이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법원에 출석시킴으로써 위압감을 주는 한편,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고 금융감독원 민원을 회피하고 있다”며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법에 무지한 점을 이용해 민사조정 접수 후 조정기일 전에 합의를 유도하는 등 소비자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로서는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법정 싸움에서 이기기가 몹시 어려운 데다 패소할 경우 보험사측 소송비용까지 떠안아야 돼 지레 겁을 먹고 합의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력과 정보력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손해보험사들이 교통사고 피해자들을 법원에 출석시킴으로서 위압감을 주는 동시에 보험금 지급을 지연하고 금융감독원의 민원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민사조정 신청은 소송보다 빨리 판단 결과를 받을 수 있고 비용 면에서도 저렴해 좋은 제도지만 피해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와도 보험사가 이의를 제기하면 소송으로 가야한다”며 “결국 복잡한 소송을 피하려면 피해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합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민사조정은 소송기간이 짧고 비용도 일반 소송 수수료의 1/5로 저렴한 편이다. 이는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절차가 간단한 것”이라며 “이런 점을 이용해 피해자를 압박하고 보험사가 자신들이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고 덧붙였다.

적법한 절차를 왜 제한하는가

이런 보험소비자연맹의 지적에 해당 손해보험사들은 ‘정당한 법적 절차를 제한하는 부당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민사조정 건수가 가장 많은 회사인 한화손해보험은 보험소비자연맹의 발표에 대해 “민사조정건수에 자동차 보험건수만 들어가야 하는데 보험관련 모든 소송 건수가 포함된 것 같다”며 “데이터 자체에 신빙성이 없다”며 보험소비자연맹의 자료를 부정했다.

한화손해보험 관계자는 “부당하게 보상 요구를 하는 사례를 방지하고 선의의 보험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한 절차로 민사조정을 이용하는 것 뿐”이라고 반박했다.

에르고다음다이렉트 측은 민사조정 신청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악으로 인한 부당한 보험금 청구를 막아 선량한 보험계약자를 보호하고, 과잉 보험금 지급을 억제하여 보험료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하기 위함”이라며 민사조정이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주장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보유계약 건수가 증가함에 따라 민사조정 신청 건수도 증가한 것일 뿐”이라며 “보유계약 건수에 비해 (민사조정)신청 자체는 많지 않은 편”이라 말했다.

민사조정을 신청하는 이유에 관한 질문에 이 관계자는 “보상금액과 규모에 대해 피해자와 의견대립이 발생할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객관적인 판단을 받기위해 민사조정을 신청한다”며 “보험자를 보호하기 위해 실시되는 제도가 왜 비난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손해보험협회측은 “소송은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크므로 법원에서도 소송대신 민사조정을 권장하고 있다”며 “각각의 민사조정 신청에 대한 사유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민사조정 신청 건수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정당한 법적절차를 제한하는 부당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보험소비자연맹 관계자는 “보험사가 소송 등을 악용하는 경우 이를 걸러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보완이 필요하다”며 “금융감독당국은 이런 사례가 발생되지 않도록 소송과 민사조정의 타당성 여부에 대해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송 등을 거치기 전에 반드시 금융감독원의 분쟁조정을 거치거나 분쟁조정 중에는 소송을 할 수 없도록 해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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