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한파 속 국내 기업들의 몸부림이 처절한 가운데 이들 기업의 선도적 역할을 하는 10대 재벌그룹의 행보는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쇄신작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특히 10대 그룹에서는 최근 2·3세 경영권 승계가 가속화되면서 이들을 주축으로 한 맞춤형 인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대적인 숙청 바람이 불고, 이로 인해 못내 옷을 벗어야만 하는 이들도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그룹에서는 이에 대해서 ‘불가피하다’는 반응이다. 쉽게 말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건 당연하다”는 식이다.
이에 본지가 10대 재벌그룹의 후계 구도를 중심으로 한 인사 개혁을 2탄에 걸쳐 집중 진단해 봤다.
10대 재벌그룹 2·3세 이은 4세 경영권 승계 박차…황태자들 초고속 승진
황태자 라인 구축 강화 속 형제간 알력 다툼…그룹 내부 ‘줄서기’ 한창
[GS그룹] 오너 경영체제 강화
지난해 GS그룹은 상당한 홍역을 치렀다. 국내 사상최고로 기록될 고객정보유출사건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실패 등으로 허창수 회장의 경영 능력마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GS는 올해를 재정비를 통한 도약의 해로 삼았다. 특히 ‘오너경영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다.
GS는 오래전부터 이 체제의 틀을 다지기 위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장남이 에너지사업 핵심부서에 배치된데 이어 그룹지주사에는 허창수 GS 회장의 사촌동생이 전격 영입되는 등 두 허 회장의 직방계 혈족들이 경영일선에 전면 배치되고 있다.
최근 인사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눈에 띈다. GS건설에 허창수 회장의 셋째 동생인 허명수 국내 총괄담당 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로써 GS는 2세들의 경영권 승계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GS그룹은 지주회사인 홀딩스를 비롯,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그룹총수인 허 회장을 제외하곤 허씨 오너형제들이 황금비율로 분할소유하고 있다.
[금호아시나아그룹] 사촌경영?… 'NO'
지난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를 통해 몸집불리기에 성공하며 재계 순위를 몇단계 끌어올렸지만 곧바로 ‘승자의 저주’에 걸려 곤욕을 치렀다. 처음에는 재계 일각에서 유동성 위기설로만 나돌기 시작하더니 끝내 자금난이 드러났다. 그래도 M&A의 달인답게 박삼구 회장은 계열사 등의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나섰고 ‘승자의 저주’에서 차츰씩 풀려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금호아시아나의 후계구도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는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에 이어, 장남인 고 박성용 회장, 차남인 고 박정구 회장, 삼남인 박삼구 회장 등 형제들이 경영권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차기 경영권을 박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이어받을 수 있을지가 큰 관심거리이다. 그러나 그룹 분위기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연말 인사에서 박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전략경영본부 상무보가 ‘보’를 떼고 상무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박 상무는 지난 2005년 금호타이어 부장으로 입사한 후 1년 뒤인 2006년 상무보로 승진했었다. 다국적 컨설팅업체인 AT커뮤니케이션에서 일했던 그는 상무보로 오른 지 2년만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금호아시아나가 형제경영에 이어 3세대 사촌경영 수순을 밟는 것처럼 비춰졌지만 박 회장의 장남 박세창 상무의 초고속 승진을 놓고 봤을 때 꼭 그런 수순으로 갈 것이란 속단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박 상무는 최근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의 주식 4만1천8백10주(0.07%)를 매입해 그동안 큰 변화가 없었던 3세들의 지분 구도에도 차이가 나타나고 있다.
이를 종합 분석해 업계 일각에서는 박 상무의 승진과 지분 매입으로 그가 그룹 경영을 떠맡게 되리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한진그룹] 황태자의 쌍발 장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영원한 재계 라이벌 한진그룹은 조용하면서도 발 빠른 후계구도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양호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상무의 경영 수업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조 상무는 ‘CEO필수코스’로 여겨지는 여객사업본부로 자리를 옮긴 뒤 4개월만에 본부장으로 올라섰다. 조 상무는 지난 2004년 10월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으로 입사한 이후 2006년 12월 상무보로 임원 배지를 단 데 이어 2007년 상무 B로 승진했고, 지난해 상무 A 여객사업본부장이 됐다. 또 조 상무는 지난해 3월 그룹 물류회사인 ㈜한진의 등기이사로 선임되고 나서, 그 해 10월에는 신세계에서 인수한 한진드림익스프레스의 등기이사가 되는 등 그룹 내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때문에 그룹 내에서는 조 상무의 위상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고 한다.
재계에서는 이와 관련해 “조 회장이 아들인 조원태 상무에게 무게 있는 자리를 맡김으로서 체계적인 경영수업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아무리 장자 승계 원칙을 따르는 한진그룹이지만 ‘변수’란 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 상무의 누나인 조현아 대한항공 기내식 사업본부장과 동생인 조현민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팀장도 그룹 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형제간 지분율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어찌됐든 조 상무가 형제들에 비해 좀 더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앞으로 한진그룹은 조 상무 중심의 체질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그룹] 어린 태자, 경영 참여 ‘곧!’
한화그룹은 최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국내 M&A사장 최대어로 기록될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한편의 역전드라마를 방불케하며 인수에 성공했다. 하지만 인수 대금 부족으로 인하여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으로부터 계약 해제를 당했다. 이로 인해 김승연 회장은 이 충격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잠시 일본으로 건너가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기고 했다.
현재 한화는 이번 매각 무산의 책임이 산업은행에게 있다며 일방적 양해각서 해제에 대해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김 회장의 장남인 동관(26)씨는 차곡차곡 회사 주식을 매입하고 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김 회장이 장남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물론 동관씨가 아직 어린 나이를 감안해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동관씨가 그룹 경영에 참여할 날도 거의 멀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또한 동관씨 외에도 김 회장의 자랑인 둘째 동원(24)씨와 셋째 동선(19)군도 향후 후계 구도에 중심에 서 있다. 미국 유학 중인 동원씨는 한때 보복폭행 사건으로 아버지 김 회장을 곤혹스럽게 만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편, 한화는 이번 정기인사를 통해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이는 대우조선 인수가 무산된 후 그룹을 재정비해 신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더욱이 한화는 앞으로 필요할 경우 수시로 임원 인사를 단행하는 등 탄력적인 운영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 4세들의 ‘소리 없는 총성’
‘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리던 두산그룹은 최근 그룹의 모태격인 ‘주류부문’을 롯데에게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 점이 있다면 두산가 4세들의 등장이다. 더욱이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두산주류 매각이 박용만 회장의 책임론과 더불어 두산가 형제의 난의 연장선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두산은 오랫동안 형제들 간 경영권 공방을 벌여왔다. 이제는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주축으로 한 체제가 어느 정도 정립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불과 1~2년 전까지 만해도 형제간 피 튀기는 알력다툼이 존재했었던 게 사실이다.
현재 박용만 회장이 그룹의 총괄경영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룹 내에서는 두산 3·4세들이 각 주력계열사에 포진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바로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이다.
앞서 박용만 회장이 부회장으로 있을 당시 때부터 이 둘 간의 ‘소리 없는 총성’에 대해 말들이 많았다. 당시 재계에서는 이 둘이 어떻게 공조하느냐에 따라 두산의 미래를 점치기까지 했다. 물론 지금도 이같은 얘기는 공공연하게 재계 안팎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때문에 두산 내부에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줄서기’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는 후문이다.